김예은⁄ 2025.12.17 17:16:53
2026년 글로벌 경제는 팬데믹 이후 지속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하락) 국면을 지나 리플레이션(물가 반등 속 경기 부양) 시대로 본격 전환될 전망이다.
2025년에는 경기 상승과 물가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는 디스인플레이션 환경이 금융시장에 우호적으로 작용해 주식과 채권 등 주요 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함께 상승하는 ‘에브리싱 랠리’가 펼쳐졌다. 하지만 2026년에는 물가가 다시 상승 조짐을 보이고 금리 인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리플레이션 국면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주식과 채권 간 선호도도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증권사 연구원들은 2025년이 전반적 자산 가격 상승의 해였다면, 2026년은 물가 반등과 금리 인하 종료 국면이 맞물리며 자산 간, 산업 간 성과 격차가 분명히 벌어지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자산 배분의 핵심 변화는 채권에서 주식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데 있다. KB증권은 물가 반등 조짐이 나타나고 내년 하반기 금리 인하 사이클이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채권보다 주식의 상대적 매력이 더 부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채권 비중은 점진적으로 축소하거나 최소한 현 수준을 유지하되, 그 과정에서 확보되는 유동성은 성장성이 검증된 주식 자산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전체 포트폴리오 내 우선순위 역시 주식이 가장 앞서고, 그 다음이 채권, 대체자산은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구도가 제시된다.
‘소수의 경제’로 기우는 미국
물가 반등과 연준 변수 상존
특히 미국에서는 2026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2025년 2.8%보다 높은 수치다. 통화 완화로 인한 유동성 확대와 농산물, 전기, 의료 비용 상승 등이 이러한 물가 상승의 배경이다. KB증권 권희진 연구원은 “내년 CPI 상승률이 평균 3.2%로 높을 전망”이라며 “긴축 우려로 조정국면 진입 시 경기 둔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연방준비제도(Fed)가 경기 전반을 고려해 필요 이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중장기적인 물가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이에 KB증권은 “물가가 예상 경로를 상회하거나, 신임 연준 의장이 중립금리 이하의 과도한 인하를 주장할 경우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리스크로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차기 연준 의장 인선을 앞두고 정책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 경제는 소수 대기업과 기술 기업들이 성장을 주도하는 ‘소수의 경제’ 구조가 심화될 전망이다. 대형 기술 기업들은 풍부한 자금력으로 대규모 투자와 주주 환원을 이어가지만 전통 산업과 중소기업들은 불리한 금융 여건에 직면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 권 연구원은 “약해지는 노동시장은 불평등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노동시장이 약해질 때 취약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고용 지표는 경기 침체기에 버금가는 둔화와 실업률 상승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증권 박준우 연구원은 “11월 고용 지표에서 침체기 수준의 고용 둔화와 실업률 상승(4.56%)이 확인되었으며, 고용 부진이 실업률 상승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버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과거 닷컴 버블과는 달리 현재 금융 환경과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이 견고해 급격한 붕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11월 AI 버블론 제기 당시보다는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AI 버블론이 금융시장 내 상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국내시장, AI·반도체는 질주·내수는 정체
K자형 양극화 속에서 금융 불안이 실물로 번질 가능성 촉각
한국 경제는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른 압력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나증권 김두언 연구원은 “중국은 더 이상 고성장·고금리 국가가 아니며 일본은 더 이상 마이너스 금리 국가가 아니다”라며 “10년 국채 시장에서 일본 금리가 중국 금리를 넘어섰고, 단기 국채 시장에서도 곧 역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두 국가의 상반된 통화정책 사이에 놓여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김 연구원은 “달러-원 환율 1400원이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특히 국내 경제는 소비심리와 내수 기업 업황, 유동성과 실물경제, 교역량과 성장률 사이에서 괴리가 확대되며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고용이 일부 회복되고 있으나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으로 소비 개선 폭은 제한적이며, 내수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시장에서는 부동산과 증시에서 레버리지 투자가 급증하면서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금융불안 지수가 상승하며 자산시장 변동성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교역량과 성장률의 괴리가 확대되면서 수출 경기에도 하방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금융 불균형 심화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및 금리 인하 주저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주식시장 내 신용융자 잔고가 크게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금융 위험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KB증권 류진이 연구원은 “부동산 안정 이후 금융불균형의 새로운 위험 요소로 주식시장 레버리지 투자가 부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 연구원은 또한 “하반기에는 미국 인플레이션 우려 재점화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거시건전성대책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제한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동성 확대는 단기적으로 ‘부의 효과’를 통해 경제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금융 불안이 재점화되면 소비 모멘텀 저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통화정책 측면에서 국내에서도 산업별·계층별 회복 속도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K자형 양극화’ 심화가 과제로 부각된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산업이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내수와 전통 산업이 하방 압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K자의 윗부분에 위치한 AI·반도체 산업은 AI 혁명이라는 장기적 구조 변화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 정부의 정책 자금과 제도 지원이 첨단 산업에 집중되고, HBM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메모리 중심의 수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실적 가시성도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과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한 원활한 금융 접근성까지 더해지며, 거시경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익 성장과 밸류에이션 확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증권 한동희 연구원은 “거시경제를 이기는 메모리” 업황이 현실화될 경우, 이들 산업은 금리와 환율 변동을 넘어 한국 증시 전반을 견인하는 핵심 축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하강하는 K자의 아랫부분에 위치한 내수 및 전통 산업은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고령화에 따른 소비 여력 약화로 내수 모멘텀이 제한되는 가운데, 글로벌 교역 둔화와 관세 부담은 수출 산업 전반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높은 부채 비율과 취약한 금융 여건을 안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아, 금리 수준이 높게 유지되거나 금융 환경이 경색될 경우 타격이 집중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구간에서는 경기 회복 속도가 더딜 뿐 아니라 일부 산업과 기업은 역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자 관점에서는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과 재무 건전성을 면밀히 점검하지 않을 경우, 유동성 리스크가 실물 위기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키움증권 김유미 연구원은 “K자형 성장 패턴이 구조적 리스크로 남아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과 금융 불균형 관리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상당 기간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유진투자증권 김지나 연구원은 “한은이 시장금리 하향에 대한 의지가 적으며, 대출금리와 연동되는 시장금리가 낮아지면서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유미 연구원은 또 “경제 구조가 반도체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어 한은이 긴축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어렵고, 반도체 업황이 예상과 달리 둔화될 경우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의 해
반도체·방산·조선은 상단으로, 채권은 완충재로
이에 따라 주식 자산 내에서도 접근 방식은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2026년 증시는 ‘K자형 상승’ 국면에 따라 모든 종목이 함께 오르기보다는 실적과 산업 구조가 뒷받침되는 섹터만 상단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특히 HBM과 서버용 DRAM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업종과 방산, 조선 등이 대표적인 수혜 산업으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은 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슈퍼사이클이 이어질 전망이지만 기술 경쟁 심화와 공급망 문제, AI 투자 둔화에 따른 버블 우려도 상존한다. SK증권은 "내년이 거시경제를 이기는 메모리 장세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며, 매크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실적 가시성이 높은 반도체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했다. KB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HBM3E 비중 확대를 통해 AI 서버 시장 내 점유율을 회복할 것"이라며, "특히 범용 DRAM 시장의 타이트한 수급 상황은 삼성전자의 풍부한 생산 캐파(Capacity)를 더욱 돋보이게 할 요소"라고 분석했다. SK증권 한동희 연구원은 "메모리 산업은 이제 '선증설-후수주'가 아닌 '선수주-후증설'의 구조로 완전히 변모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대형 고객사들과 맺는 장기공급계약(LTA)의 규모와 조건이 2026년 수익성 극대화의 핵심 지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단기 조정 가능성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기업의 실적(수익성)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AI 투자 사이클 둔화와 함께 버블론이 재점화될 수 있다”면서도,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기보다는 구조적 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한 바이 앤 홀드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방산 부문은 글로벌 방위비 증가에 따른 수요 폭발과 함께 주요 수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납기 지연 문제 등의 리스크가 존재한다. 글로벌 방위비 지출 증가에 힘입어 유럽과 중동 등 신규 시장에서 K-방산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는 점은 산업의 구조적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주요 수출 대상국의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계약 취소나 지연 위험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또한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의 생산 역량 제한으로 인한 공급 병목 현상도 반사이익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납기와 공급망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조선업은 LNG선 발주 재개와 친환경 수요 증가에 힘입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신조선가 정체와 법률적 난항, 경쟁 심화가 수익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SK증권 이한결 연구원은 “미국 조선업 재건 협력 프로젝트는 현재 구체적 추진 이전에 법률적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LNG선 발주 재개와 특수선 성장 가속화가 긍정적이나 글로벌 군함 시장 경쟁 심화와 건조 능력 확보의 어려움이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반면 채권 자산에 대한 기대치는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금리 인하 기대는 이미 상당 부분 시장에 선반영됐고, 2026년에는 물가 반등에 따른 리플레이션 리스크가 상존한다. 이 경우 채권 가격에서 의미 있는 자본차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채권의 역할은 수익 창출 수단이라기보다, 주식 시장 변동성을 완충하는 방어 장치이자 향후 주식 조정 국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현금 확보 수단으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유진투자증권 김지나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금융 안정을 이유로 시장금리 하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금리가 크게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채권 비중을 과도하게 늘리는 전략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만기가 짧은 단기채 위주로 유동성을 유지하거나, 금리 반등 국면에서 이자 수익을 확보하는 보수적 접근이 적절하다는 조언이다.
한편, 이 같은 전략 역시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한 조정이 필요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KB증권의 전망치인 3.2%를 넘어 3.5%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연준의 금리 인하 중단 가능성이 부각되며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한국은행이 금융 안정을 이유로 매파적 동결 기조를 장기간 유지할 경우, 국내 내수 비중이 높은 업종에 대한 비중 축소도 검토해야 한다.
이처럼 2026년은 AI 산업을 비롯한 특정 산업의 구조적 성장이라는 기회와 인플레이션 재점화, 금융 불균형 심화, 재정 건전성 약화라는 위험이 동시에 공존하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K자형 양극화와 금융 불균형을 동시에 관리하며 금융 안정과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거시경제의 변동성에 휘둘리기보다 구조적 성장 내러티브가 명확한 산업에 집중하되 개별 섹터가 가진 기술 경쟁, 납기, 지정학적 리스크를 면밀히 분석해 선별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할 전망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