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6.03.16 10:30:50
72시간, 3일 동안 멈추지 않는 극장이 관객을 만난다.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은 오는 26~29일 더줌아트센터에서 [창작트랙 180°] ‘극장의 다음: 다가올 낯선 감각들’ 최종발표회를 진행한다. 이번 발표회는 [창작트랙 180°]의 참여 예술가로 선정된 카입(Kayip·이우준)이 지난 180일간 진행해 온 창작 연구 프로젝트의 과정과 단편을 선보이는 자리다.
[창작트랙 180°]는 2024년부터 국립극단이 진행해 온 공연예술 연구 개발 사업으로 참여 예술가를 선정하여 180일간 창작 과정을 함께 한다. 최종 결과물로서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하거나 무대화를 위해 펼치는 창작개발 사업들과는 달리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오롯이 창작 과정에 집중한다는 데에 프로젝트의 취지가 있다. 국립극단은 참여 예술가들이 공연예술의 창작과 연구 개발을 충분히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활동비와 공간 제공 등 프로젝트 실현에 있어 필요한 부분을 제공한다.
특히 기존 연극의 창작 형식과 내용에서 벗어나 연극, 극장, 예술가, 관객 등 공연을 이루는 기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신선한 시도로 공연예술계에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창작트랙 180°]는 시작됐다. 국립극단은 이러한 사업 목표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극언어를 개발하고 공연미학을 확장해 연극 생태계의 다양화와 포괄성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는 고정되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시도로 예술적 성장의 자양분을 축적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창작트랙 180°]의 참여 예술가로 함께해 온 카입은 180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협력 예술가 4인과 함께 <파빌리온 72>라는 제목의 최종발표회를 선보인다. 카입은 공연과 영화, 미술 등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계에 몸담아 온 23년 차 정상의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사운드디자이너이다. 협력 예술가로는 김상훈 연출가, 백종관 영화감독, 오로민경 사운드아티스트, 황수현 안무가가 함께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역설적으로 카입은 자신이 이뤄 온 예술적 성취와 작업을 비틀어 본다. ‘연극에서 소리가 정말로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대항해 봄으로써 ‘무조건적인 소리 헤게모니를 전복’하고자 하는데 프로젝트의 출발점을 뒀다. 과정이 진행되면서 청각적 요소 이외에도 당연하게 여겨 온 극장적 감각과 관습을 다시 돌아보고, 그 사유의 결과로 ‘미래의 극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동’하는지에 대한 상상과 가능성의 발견이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는 점차 확장됐다.
프로젝트의 최종발표회 <파빌리온 72>에서는 7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이어진다. 72시간 동안 멈추지 않는 극장에서는 다층적 층위에 쌓이거나 지나가는 몇백여 개의 단위 소리들이 청각과 촉각, 진동의 질감을 동반하여 관객의 신경을 덮친다. 때로는 예술가들의 단편적인 몸짓과 안무, 극적인 서사 연기가 그 위로 펼쳐지기도 한다. 카입은 이 과정에서 음악과 음향, 청각적 요소를 비롯해 연극과 공연예술에 무의식, 또는 무조건적으로 자리를 차지해 온 감각적 기능들에 대한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인 고민을 풀어놓는다.
카입은 “72시간은 재난 현장에서 인간의 신체가 버텨낼 수 있는 생존의 임계점이자, 생리학과 심리학에서는 외부의 자극과 정보가 차단되었을 때 인간의 기존 인지 체계가 무너지는 지점이다”라며, 이어 “72시간의 러닝타임은 높은 확률로 공연의 기승전결을 정리하고 자극을 이해하여 받아들이는 관객의 통상적인 인지 패턴을 무너뜨릴 것이다. 즉 극장의 통제가 실패하고 필연적으로 피로와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 이때의 예측 불가능함과 어긋남이 오늘의 극장이 가진 고정된 틀을 깨고 기존 극장의 질서를 낯설게 재편할 것”이라고 프로젝트의 종착지를 설명했다.
한편 카입은 작곡가 겸 사운드디자이너, 설치미술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입증해 온 예술가다. 영국 버밍엄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왕립음악대학 석사 과정에서 현대음악 작곡을 공부했다. 취미로 음악을 하던 대학 시절에 영화 <공공의 적>(2002) 사운드트랙을 작업하면서 주목받은 이후 국내외 유명 뮤지션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아티스트로의 길을 시작한 카입은, 현재는 공연, 전시, 미디어아트, 다원 등 장르를 불문하고 카입만의 사운드로 관객의 또 다른 안내자가 되고 있다.
카입의 [창작트랙 180°] ‘극장의 다음: 다가올 낯선 감각들’ 최종발표회 <파빌리온 72>는 국립극단 홈페이지에서 사전 온라인 신청 또는 현장 접수로 관람할 수 있다. 자유로운 입퇴장이 가능하고, 관객이 소리를 내거나 대화를 나누고, 또는 돌아다니고 눕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작업을 해도 제지하지 않는다. <파빌리온 72>의 극장 안에서 모든 관객의 행동은 자유롭다. 무료로 진행되며 관심 있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