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것은 질문밖에 없다” 이 말은 손석희 성신여대(문화정보학) 교수가 시사저널이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여론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로 선정되면서 한 말이다. ‘6자회담을 다녀와서’라는 주제의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는 순간 이 말이 뇌중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기자 스스로 각국의 취재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나’하는 자책의 일환이리라. 그러나 좀 더 그 책망의 영역을 넓혀 한국 기자단 전반에 이번 6자회담 취재의 역동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자문케 하고 싶다. 물론 6자회담의 취재경험도 전무할 뿐 아니라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초보운전자에 불과한 수준인 필자의 이러한 제안은 베테랑 선배 기자들이 보기엔 여간 잔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 취재단의 안이(!)했던 취재 시스템을 힐난의 수위로 끌고 가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베이징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아쉬움을 몇 자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기자단의 프레스 센터는 6자회담 회담장인 조어대(댜오위타이) 근처의 한 호텔에 마련됐다. 문제는 프레스센터의 위치가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와 대니얼 글레이져 BDA 실무회의 수석대표의 숙소와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한국 프레스센터는 미국 대표들의 숙소인 궈지쥐러부(國際俱樂部)뿐만 아니라 천영우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숙소와도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출퇴근 시간에 겹치면 1~2시간은 족히 걸리고도 남는다. 한마디로 한국 기자단 숙소(와 프레스센터) 취재원들과의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담장인 조어대와는 15분 거리에 있었다고는 하나 이번 5차 2단계 6자회담의 핵심 이슈가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묶인 금융제재 해제문제와도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북·미간의 회동이 최대 관심사였던 만큼 취재의 중심은 미국 숙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 주는 떡‘만’ 잘 받아먹는 한국기자들 아니나 다를까 한국취재진들은 지난 16일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수석대표의 숙소에서 아침 저녁으로 뻗치기(취재원이 나타날 곳에 미리 도착해 서너시간을 무턱대고 기다리는 일)할 풀 취재단 리스트부터 정했다. 물론 천영우 우리측 수석대표를 6일간 아침 저녁으로 뻗치기 할 순번도 2명씩 정해졌고, 혹시 발생할 지 모르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돌발풀단’도 한 팀당 4명씩 3팀이 구성됐다.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온 것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기자단의 이 취재시스템이 꽤 치밀하게 짜여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일이 지나면서 기자들은 자신의 풀 순서가 아닌 경우에는 줄곧 프레스센터에만 머물러 있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예를 들어 이른 새벽 힐 수석대표가 숙소에서 나오면서 중요한 발언을 했을 경우, 현장에 있던 풀 취재단이 기자단 간사에게 전화로 중요 내용을 불러주면 한국 기자들 대부분은 프레스 센터 안에서 받아 적는 게 고작이었다. 한마디로 주는 떡 잘 받아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외교부 당국자들은 ‘지금 북미 양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 수석대표가 미 대사관에 들어갔다’ ‘북미 양자회담이 오전에 3시간동안 진행됐다’ 등등 회담의 진행상황을 수시로 던져주었다. 물론 프레스센터에서 미측 수석대표 숙소는 멀었다. 그러나 각국 고위 인사들의 행보를 하나하나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것이 아무리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풀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외 취재원들에게 제대로 질문 한번 하지 않는(혹은 못한) 것이 취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성어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6자회담 취재차 베이징까지 건너와 6자회담장 및 기자회견장 한번 직접 보지 못한(혹은 않은) 기자는 비단 한 두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 뻗치기, 그 쓸쓸하고 춥고 외로운 시간들 그렇다면 이쯤에서 뻗치기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뻗치다’라는 말이 힘들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으로도 쓰이고 있다는 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크리스토퍼 힐이나 BDA 실무회의 수석대표와 같은 취재원이 언제 공항에 도착할 지, 숙소에 도착할 지, 회담장에 나타날 지는 무당이 아닌 이상 손쉽게 예상할 수 없다. 따라서 공항도착 시간 기본 2~3시간 전부터 공항출구 밖에서 발을 동동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다. 수십명의 중국과 일본 등의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풀 취재단이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내는 고생끝에 취재원의 목소리 하나 발언 하나 어렵게 따낸 것을 한국 기자들은 따뜻한 프레스 센터에서 거저 얻어먹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연합뉴스>의 경우 통신사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에 그나마 8명 가량의 기자들이 베이징 6자회담을 직접 취재했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의 NHK의 경우 총 70여명의 기자들이 베이징으로 날아왔다는 사실을 접할 때면 벌어진 입을 다물기가 어려울 정도. 일본의 한 매체에서도 70명이 취재에 나섰건만, 한국 기자들은 외교통상부 출입기자와 특파원까지 합해도 70여명이 될까말까였다. 물론 양 국가간의 규모차이, 혹은 관심분야의 차이 등으로 물리적인 수치 비교가 다소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다. 또 방송기자의 경우 방송시간도 지켜야 하고, 신문기자의 경우 마감시간을 지켜가며 취재해야 하는 제한도 있다. 하지만 백번을 양보해도, 자신이 풀 순서가 아닐 때는 기자회견장에 앉아 풀단이 전해주는 소식만을 기다릴 뿐 직접 취재현장에서 발로 뛰지 않았다는 비난은 결코 면할 수 없으리라. 실제로 밤 늦은 시간 취재원들의 뻗치기를 감당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기자단 숙소로 되돌아 와보면 자정이 넘어가기 일쑤다. 그 시간 프레스센터는 고작 2~3명의 기자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기자들은 술 한 잔하러 갔거나 혹은 따뜻한 호텔방으로 올라가 편히 쉬고 있을 뿐이다. 이번 6자회담에서 한국은 (슬프지만) 들러리 수준에 불과했다는 표현도 가능할 듯 싶다. 따라서 우리측 외교부 당국자들의 브리핑이나 배경설명보다는 북한과 미국의 당국자들에게서 더 고급 소식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그 취재원들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게 기자라는 직함에 좀 더 맞는 자세가 아닌가. 똑같은 취재현장에서 좀 더 색다른 질문 하나하나가 모여 좀 더 의미있는 답변이 나왔을 것이고, 그것으로 한국에 있는 독자 혹은 시청자들은 보다 질 좋은 뉴스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자(記者)라는 명칭에는 분명 기록한다는 뜻의 ‘기’자가 쓰이지만 ‘기록할 기’의 한자에는 분명히 말씀언(言) 변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언론학도 시절,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린 교수님의 가르침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나를 포함한) 한국 기자들이 공동취재단 pool만 너무 의지하다, 바보 fool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중국 베이징 최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