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이래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에 성공한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후 임기말을 해외 정상외교로 마무리할 움직임이다. 이는 대선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때 정상외교정책은 또 다른 노 대통령의 정치의 꼼수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범여권의 대선후보 통합에 나서는 등 올 대선정국에 적극적으로 개입, 15년 집권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즉 노 대통령은 해외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내에서 대선정국을 주도, 정권창출에 나선다는 것이다. 임기말 노 대통령의 이같은 정상외교 드라이브는 ‘나한테 절대 권력누수는 없다’를 보여주려는 전략으로 그는 역대 대통령이 대선시기에 탈당을 하고 선거중립내각을 구성하는 등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하는 꼴을 절대 보여주기 않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실제로 역대 정부에서 다자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만남이 아니라, 상대국가를 방문해 이뤄진 마지막 한미정상회담은 임기를 1년 이상 앞두고 열렸다. 노태우 대통령의 마지막 한미정상회담은 1992년 1월(‘시니어’ 부시 대통령 방한)이었고, 김영삼 대통령 1996년 4월(클린턴 대통령 방한), 김대중 대통령 2002년 2월(부시 대통령 방한)이었다. 올들어 “임기말까지 국정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수 차례 다짐했던 노 대통령의 의지가 정상외교분야에서도 실천되고 있다. ■盧와 DJ 국공합작(?) 통한 정권연장 오는 28∼30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만으로도 ‘메가톤급 이벤트’이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9, 10월까지 한반도 외교안보지형을 새로 쓸 수 있는 일련의 정상외교 일정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후 9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과 미국·중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4자정상회담이 열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경우 38선의 철책이 헐리는 중대한 변화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도 폭파 또는 총격사건이 아닌 화해의 북풍으로 대선 풍류를 이끌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선후보들은 盧와 DJ의 국공합작(?)에 대해 그냥 무조건 반대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것으로 보여 강온전략을 구사하면서 대선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제 1차 남북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북핵해결을 위한 6자회담 프로세스가 진행중이고, 관련 당사자국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회담에 추동력이 실리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지난 6월말 BDA(방코 델타 아시아) 문제해결을 계기로 6자회담이 재가동되면서 북핵논의가 비핵화 2단계 조치인 불능화 논의로 접어들었고, 2·13 합의에 입각한 워킹그룹회의가 개최되는 등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창조적인 노력들이 집약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반도 주변정세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단지 ‘8월28∼30일 평양’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만 시선을 머물게 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새로운 단계로 논의를 한단계 레벨업시키는 ‘미래진행형’ 회담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盧,‘대선주자, 너희들은 짖어라. 난 해외서’ 노 대통령은 9월초 시드니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9월말 유엔총회를 무대로 한 다자정상외교, 그리고 9월말∼10월초로 예상되는 한미정상회담 등 굵직굵직한 정상외교 일정들을 진행한다. 상황의 진전에 따라서는 이들 정상외교의 끝자락에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이 `대미를 장식할 수도 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임기말의 숨가쁜 정상외교 일정이다. 한미정상회담의 경우 지난달 2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올해 가을 미국 방문’을 공식 초청함으로써 가시화됐다. 시점은 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9월말∼10월초에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특히 한국에서 처음 탄생한 유엔사무총장이 직접 주도하는 유엔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노 대통령으로서 참 기쁜 일이다. 또 참여정부 임기 만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이라는 점은 주목된다. 당초 지난해 9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개최 당시 일부에서는 “참여정부 마지막 한미정상회담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었지만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남북정상회담을 출발로 이어지는 연쇄 정상외교에 임하는 노 대통령의 자세와 구상은 오는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큰 틀에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계기로 광복절 경축사 구상은 다시 가다듬어지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 의의만이 아니라 큰 틀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과 남북 간 본격적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실질적으로 열어나가기 위한 비전과 의지 등이 강조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대선주자, 잘못하면 노의 덫에 걸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적 번영, 한반도 평화 3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될 방향에 대한 제안을 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을 바탕으로 보다 구체화되고 집약된 한반도 평화 비전은 가을 유엔총회 연설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열리는 가을 한미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업그레이드시켜 북미수교를 간절히 희망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가 노 대통령을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북·미 간접 정상회담’이라는 측면도 있다. 한미정상의 결단 여하에 따라 한반도 안보지형의 지각변동을 초래할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은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김정일 위원장과 한국전 종료를 선언하는 문서에 공동서명할 용의가 있다”는 획기적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앞서 9월초 시드니 APEC 정상회의에서도 별도의 부시 대통령과의 양자 회동이 있을 수 있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다.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 영향을 지니고 있는 북·미·중 3개국 정상을 연쇄적으로 만나는 셈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어쩌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논의는 현 정부가 끝나는 내년 1, 2월까지도 핵심 이슈로 거론되고 숨가쁘게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 같은 연쇄 정상외교의 첫 출발점인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전날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안건을 심의·의결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자리에서였다. 한건주의나 화려한 이벤트성 외교를 지양하고, 형식보다는 내실을 채우는 쪽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돼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말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김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