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사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과 생존권을 위협받는 현실이 수면 위로 오른 지 오래다. 월 100만원 임금에 언제 ‘부품’처럼 버려질 수 있는 불안은 비단 ‘이랜드 비정규직 아줌마’들만 처한 상황은 아니다. ■저임금 중노동에 허덕이는 시간강사 ‘지식사회의 첨병’이라 불릴만한 대학 시간강사들이 놓인 처지도 여느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게 없다.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발표한 ‘전국 4년제대학 시간강사 실태분석(2006)’을 보면, 시간강사들은 한 달 2인가구 최저생계비 700,849원보다는 많지만 3인가구 최저생계비 939,840원보다 적은 급여를 받았다. 시간강사 대부분이 30대 이상이고 3/4이 기혼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소득이다.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에서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2006년 기준으로, 시간강사들은 평균 시간당 4만원의 강의료를 받았다. 지난해 국공립대학에서 가장 많은 강의료를 지급했던 경북대의 강의료 4만 6천원에 1주일 평균 11시간을 계산해보면, 시간강사들의 연봉은 많아야 1518만원에 불과하다. 이런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들의 이러한 임금차별은 정당할까? <교수신문>이 전국 164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전국 대학교수 직급별 연봉현황(2005)’에 따르면, 국공립대 전임강사의 평균 연봉이 4562만원, 사립대의 경우 4020만원과 비교하면 거의 4배에 달하는 차이다. 하지만 전임강사보다 비전임교원이 오히려 더 많은 강의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주호 의원에 따르면, 국공립대의 경우 비전임교원이 51.7%, 사립대에선 52%를 비전임교원들이 담당했다. 대학 시간강사들은 명예교수, 겸임교수 등 다른 비전임교원들 가운데서도 국공립(37.1%), 사립(34.6%)순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강의를 맡고 있었다. 게다가 시간강사들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던 비정규직법 가운데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도 제외 대상이다.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간강사들은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없는 셈이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김동애 전 교수는 “대학이 전체 강의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를 착취하면 이는 강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고 비판했지만, 교육 분야에서도 공공성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현재 대학분위기 속에 이 같은 주장은 묻히고 만다. 한국비정규직 교수노조는 “지식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금의 시기에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며 “사회 정의의 차원이든, 불안정노동 철폐의 일환이든, 대학경쟁력 강화의 방편이든 긍정적 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시간강사 왜 생겼나 그렇다면 대학 시간강사들은 어쩌다 이런 저임금과 고용불안이라는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된 걸까? 사실 대한민국 건국 초에는 대학강사나 교수는 차이가 없었다. 1949년 교육법 제73조는 교원을 ‘학생을 직접 지도·교육하는 자’로 규정하고, 같은 법 제 75조에는 ‘대학 교원으로 총학장, 교수, 부교수, 강사, 조교를 둔다’고 나와 있다. 대학강사도 교원이며 교육공무원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비판적 지식인에 대한 통제로 대학강사들은 교원의 지위를 잃고 만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 ‘국·공립대학 및 전문대학 강사료 지급규정’을 만들어 시간강사들의 시간당 강의료 지급 근거를 마련한다. 다음해 ‘교육공무원법’ 27조를 개정해 강사를 교육공무원에 두긴 했지만 총장이나 학장이 임명하는 강사를 전임강사로 국한한다. 결국 1977년 12월 31일 ‘교육법’ 제75조에서는 교원에 포함됐던 강사를 전임강사로 바꾸어 시간강사들은 교원의 지위를 잃고 만다. 홍영경 성공회대 영어학 강사는 강사를 ‘전임강사’로 범위를 좁힌 이유에 대해 “전임강사 제도는 지식인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지식인 탄압수단’으로 이용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임강사와 시간강사를 구분해 당시 군부정권에 저항하는 학자들의 신분을 불안하게 만들어 지식인을 옥죄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셈이다. 1980년대 집권한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대학과 대학생의 수를 대폭 늘렸다. 이 과정에서 전임교원을 별로 충원하지 않아도 대학을 운영할 수 있게 만들어 ‘오늘날 부실 대학의 초석을 다졌다’는 쓴 소리를 듣고 있다. 사립대학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대학강사 채용을 선호했고, 그 결과 1990년대 중반부터는 대학교육의 절반을 대학강사들에 의존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도 이같은 상황은 계속된다. 문민정부는 1997년 12월 ‘교육법’을 폐지하고 ‘고등교육법’을 만들었는데 14조 2항은 교원을 전임강사로까지만 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법 17조에서 ‘시간강사가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는 별도의 규정을 두었지만 이들의 역할과 자격에 대한 세세한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 정부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 시간강사 문제 해소대책’을 대통령에 보고하면서, 시간강사를 ‘특수한 교과목 운영, 담당 교수 휴직 및 해외파견 등으로 인한 공백을 보충하기 위한 존재’라고 규정했다. 이전부터 ‘교양과목’등 ‘전혀 특수하지 않은 상당수의 교과목’을 대학강사들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교육부는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참여정부도 12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학문 후속세대 양성대책 및 비정규직대학교수 대책 강구’를 내걸었지만 약간의 강의료 인상과 국공립대 강사들에 대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데 그쳤다. 대학강사들은 이제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정규직 전환 기회를 주지 않는 비정규직법이 남아 있는 한 저임금과 고용불안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영원한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부당한 차별을 없애는 길…교원을 교원으로 인정하는 것 현행 ‘고등교육법’에서는 겸임교원, 명예교수, 시간강사 등의 지위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미루고 있는데(제17조), ‘고등교육법시행령(제7조 3호)’은 ‘시간강사’를 ‘교육과정의 운영상 필요한 자’로만 규정하고 있다. 현재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개정법을 발의한 상태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임순광 한국비정규직 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경북대 분회장)은 “교원이 정규직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의 처우를 보장할 것인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고 권한은 어느 정도 부여하며 어떻게 뽑을 것인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서 다루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전임교원들이 지금보다 약 2배의 강의 시수를 초과강의료 취득을 위해 계속 담당한다면 이미 대학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런 곳에서 대학 경쟁력 강화나 지식 교육 운운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