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성분명처방’을 둘러싸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인 국립의료원 앞에서 지난 20일부터 의사들이 1인 시위를 한 데 이어 31일 대한의사협회는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마련을 위한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병원급 의료원을 제외한 의료기관에서 의사들의 ‘파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당장 환자들의 불편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성분명처방’을 놓고 불거진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 의사들이 진료까지 거부하며 반대하는 이유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처방전을 발행할 때 제약회사 제품명을 쓰지 않고 약의 성분명만 적는 것을 말한다. 즉 의사가 처방전에 약 이름이 아닌 ‘아스피린’이나 ‘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성분만 적는 것을 뜻한다. 이러면 실제로 약을 고르는 사람이 의사에서 약사로 바뀐다. 정부는 이런 제도 변화를 통해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체 의료비 가운데 약값으로 쓰는 돈이 전체의 30%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의사들이 값싼 복제약(제너릭)을 쓰지 않고 오리지널 약을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성분명처방은 환자가 특정회사 제품이 없어 다른 약국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고, 고가약 대신 효과가 동등한 약을 구입할 수 있어 부담도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은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국민건강을 팔아먹겠다는 처사’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주수호 대한의협 회장은 지난 20일 국립의료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면서, “약효가 동등하다고 인정받은 의약품이더라도 각각의 의약품이 가지는 유효성분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호간 대체조제를 할 경우 심각한 약화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동안 수 차례 성분명처방의 문제점을 제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의사들의 정당한 주장을 무시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고가약 대신 ‘효과가 동등하다’는 복제약(제너릭)에 대한 안정성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는 전혀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는 “영국·포루투갈과 같은 나라가 ‘INN(International nonproprietary names) Prescribing’를 통해 복제약의 사용을 활성하기 위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복제약의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수호 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분명처방은 권고사항이지 강제사항이 아니다”며 “현장에서 성실히 진료에만 매진하고 싶지만 국민건강을 해치는 악법이 이대로 강행된다면 앞으로도 의사들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그는 “현재 생동성시험이 엉터리로 관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분명처방을 시행해 약효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이 투여된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며,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 제약회사 리베이트 둘러싼‘이권다툼’이 아니라면… 복지부는 국립의료원을 통해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실시하면서 대표적인 효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의 절감을 내세우고 있다. 의약품의 선택권을 넓혀 동일 성분의 값싼 의약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는 것.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약값이 비쌌던 이유를 ‘잘못된 약가 산정기준과 오리지널 약의 처방을 의사들이 선호하는 처방행태’로 꼽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아래 경실련)은 “제네릭(복제약)이 출시된 이후에도 건강보험에선 여전히 오리지널 약의 약가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의사들도 오리지널 약의 처방을 선호하거나 리베이트가 많은 약을 처방하는 등의 처방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성분명처방 도입이 제약회사의 리베이트가 의사에서 약사로 옮겨가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정부가 주장하는 효과대로 국민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그동안 공공연한 이야기로 나돌던 제약회사들의 의사들에 대한 로비가 의사에서 약사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경실련은 이를 위해 “약가 산정기준을 복제약이 출시된 오리지널 약의 약가를 복제약 수준으로 인하하는 등의 합리적으로 약값을 조정해야 한다”며 “같은 성분일 경우 보험 적용되는 값싼 약을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