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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線과 美와 理致에 의한 具象에 있어서의 現代性 追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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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호 ⁄ 2007.12.10 15:43:24

화가는 대체적으로 두 부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처음부터 수업기의 아카데믹한 화풍을 평생 변함없이 고수하는 화가이고, 또 하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체험하고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고 애쓰는 화가이다. 그 중에서 후자에 속하는 화가들이 미술사적으로 타의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프론티어 정신에 의해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인류문화를 새롭게 창달하는데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 어렵다고 말한다.

이태길은 후자에 해당되는 화가로서 자신만의 세계 구축을 위해 10여 년간 각고한 끝에 조심스럽게 <축제>하는 주제를 가지고 발표했다. 그리고 2006년, 세 번째 전람회를 준비하고 있는 이 때에 이러한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에 걸친 <축제>연작을 발표하는 이태길의 고뇌와 역경은 바로 승자가 겪어야 할 당연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승자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라고 말하는 그의 앞에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이태길 회화에 있어서 중요한 관점이 되고 있는 것은 선과 색의 독창성이다.

선으로 나타낼 수 있는 미는 첫째, 선과 점이다. 다음으로, 두 색 또는 그 농담으로 빚는 물체와 명암의 미, 그리고 선 또는 점의 교향, 곡선, 직선, 병행, 교차, 난차(亂叉)에 의해 물상의 장식적 미와 정신적 영역을 표현하는 충분한 요소들이다. 화면에 있어서 선을 담당하는 사물의 윤곽, 색의 구분과 그 외에 발생하는 일체의 선이 흑과 백, 이를테면 바탕색과 다른 또 하나의 색에 의한 두 색의 영역을 구성하는 선으로써 윤곽선에 의해 명암의 상태, 모델링, 선을 부셔버린 농담의 색 등을 확연하게 형성 짓는 선인 것이다. 10년의 각고란 이러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향후 3년간 발표해 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것은 융의 말과 같이 새로운 세계가 보이면서도 뚜렷하게 ‘이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는 가운데 우주공간과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아무런 명암이나 모델링도 없이 물체가 윤곽선만으로 그려지는 것도 있다. 거기에는 명암에 의해 일어나는 미감, 모델링의 미감은 없지만 미적 효과와 정신적 감명에 이르는 손색없는 것들이 오히려 단일화된 직접적인 미감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그것은 다양한 미적 요소들을 버리면서도 미감이나 생명감을 타당하게 나타내는 실상의 정수(精髓)를 단순한 선묘로 나타내는 함축의 예술이다. 이러한 선의 강조는 형태에 색이 가해질 수 있지만 형태의 근본은 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일체의 색채적 요소를 제외하고도 형태는 엄밀히 존재한다. 색이 있어도, 없어도 형태는 형태인 것이 변함이 없다. 거기에 선이 남는다면 형태의 골자는 선이다. 바로 이태길 회화에서 형태를 존재시키는 선, 미술은 조형의 예술이라는 확고부동한 지론에 의한 구성력을 보이고 있다. 색채도 형태에 포함되어 선과 색에 의해 발휘되는 미의 내용이 풍부하다. 색채의 매력은 물론 심대(甚大)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술은 될 수 없다. 형태를 생각하지 않아도 색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미술과 관계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윤곽선은 가장 근복적으로 중대한 역할이며 심오한 것을 표현한다. 특히 유심적(唯心的) 영역에 대해서는 마음을 가장 잘 전하는 수법으로 선을 제일로 한다. 이태길의 선의 강조는 여기에서 착안된 정의인 것이다.

미술가의 「내재된 미」는 첫째 표현을 위해 선을 요구한다. 온갖 추상적인 선이 그래서 존재한다. 소묘적 요소는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도 취할 수 없는 일체의 무수한 추상적 선이라고도 말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다른 소묘적 요소도 추상적으로 그 존재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가 미와 그 법칙에 의해 유기적으로 조립되어 구상적 미와 추상적 미를 동시에 잉태하는 실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의 미에 대해 무감각한 미술가는 맛없는 소금과 같다. 미술이 없는 미술가이다. 게다가 이 맛없는 소금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자연주의적인 생각으로부터 미보다 사실을 존경하는 근대적인 경향에 있어서는, 선은 다만 물질의 윤곽으로서 보는 선이다. 그러나 미로서의 선은 현실을 지상(至上)으로 하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던 협의적 생각을 버리고 이태길 회화를 빌어 이제 다시 선의 미를 생각해 볼 때이다. <박명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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