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一 海 Homepage : www.kimilhae.com e-mail : kimilhae@hotmail.com ·개인 초대전 25회 (파리, 도쿄, 서울, 대구 등) ·2006 김일해 작품전 (우덕 갤러리) ·2006 아트 컴퍼니 아트 쇼 (인사아트센터) ·2005 빛나는 한국의 화가전 (인사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5 Nature+Accident=Image전 (뉴욕 한국문화원) ·2005 뉴욕 아트페어 (뉴욕 컨벤션센터) ·2005 상하이 아트페어 (상하이 무역센터) ·2005 시드니 아트페어 (시드니 아트센터) ·2004 오사카 아트페어 (오사카 아트센터) ·1995-2006 남북평화미술전 (도쿄, 오사카, 삿포로, 나고야 등) ·2003 마니프 특별상 수상 작가전 (서울, 예술의전당) ·2003 한국의 Nude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2002 Paris-Seoul전 (프랑스 파리 아트센터) ·2002 서울미술대전 초대작가전 (서울시립미술관) ·2002 Best Star & Best Artist전 (인사 가나화랑) ·2001 국제판화예술제 (서울, 예술의전당) ·2000 한국의 정예작가전 (도쿄 아트센터)
자신을 객관시할 수 있다면 득도의 경지다. 자신의 실체를 스스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두부터 거창한 말을 꺼내고 있는 것이 글 쓰는 자 스스로 가소롭기도 하지만, 여기에 한 멋진 남자를 소개하려다 보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화가 김일해가 그 주인공인데, 근대 인물사에 보기 드물게 남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나이다. 그는 폭력도 알고, 풍류도 즐길 줄 아는 물같이 스며들고 바람같이 날아 다니는 호걸 중의 쾌걸이다.
1993년 처음으로 남미로 가는 항공로가 열렸을 때, 남미 일주여행을 김일해와 같이 하며 룸메이트 고락을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의 사람됨을 알고 말았다. 김일해의 위트와 유머는 지친 여정을 언제나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같은 방을 쓰면서도 예술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했지만, 나는 그가 대학을 마치던 무렵부터 지금까지의 작품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동료 화가를 얘기한다는 것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중의 하나다. 김일해의 인간성이나 작품에 대해서는 국내의 일류 문필가들이 좋은 글을 많이 썼기 때문에 무딘 내 시각으로는 빈틈이 안 보여서 접어두기로 한다. 그러나 한마디로 김일해의 회화적 업적은 70년 우리 화단사에 한국적인 아카데미즘의 한 정형을 이룩한 화가로 말하고 싶다.
그는 인상파를 모체로 하여 아주 짧은 시간에 인상파를 뛰어넘은 이 땅이 배출한 걸출한 화가다. 김일해는 지금 한국 회화사의 한 정점에 서 있는 젊은 대가다. 그가 어느 부자 나라에서만 태어났어도 지금 억만장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그림이 회화의 모체성을 강건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남미의 화가 보테르가 1991년 늦가을 상제리제 거리에서 뚱뚱한 코믹 아트로 세계적인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이 땅의 젊은 화가 김일해도 파리의 “미로무닐” 화랑에서 프랑스 국영TV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대단히 비중있는 전시회를 동시에 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개인적인 행운인 동시에 이 땅의 사람들이 함께 세계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안타깝게도 스타를 만들 줄 모른다. 안목이 없고 민도가 낮아서도 아니다. 묘한 국민성 때문에 눈앞의 승부에는 미쳐 나가면서도 천 년을 빛내는 문화의 투자에는 눈이 멀어 있다. 그래도 뛰어난 인재가 돌출하면 가만히 방관만 해도 좋으련만, 시기, 모함하고, 귀양 보내지 않으면 아예 그 순을 잘라 버렸던 게 지난날 우리들의 슬픈 역사였다. 그러한 악습이 아직도 독버섯처럼 깔려 있는 이런 삭막한 풍토에서 양심있고 침묵하는 진정한 인재가 어떻게 제대로 자랄 수 있겠는가?
스타는 대중이 만든다. 예술가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김일해는 지금 작은 상자 속에 갇혀서 있다. 그 자신이 “카쿤”을 만든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서운 함정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는 공간 속에서 통속적인 즐거움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대여, 그대의 집을 지금 당장 부셔 버려라. 그리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라. PARIS가 썩었다고 침을 뱉으며 타히티로 떠난 폴 고갱의 예술혼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스스로 고절 속에 갇히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을 볼 수가 있겠는가. 그대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못질을 해 버려라. 그대에게 쏟아지는 달콤한 대중들의 찬사에 속지 말라. 그대의 재능마져 부셔 버려라. 다 버릴 수 있는 자만이 다 가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들은 감히 그곳에 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대에게 희망을 거노니, 그대는 이 땅에 진정한 예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한국의 능금이 왜 그리도 붉고 속살이 깊으며 그 맛이 세계의 일품인지를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김일해씨, 나는 지금 즐거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분좋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땅의 젊은 작가 김일해가 세계의 거장이 되는 날을, 그 흔해 빠진 영어 한마디 않고도 당당하게 세계를 일주하는 그대의 배포와 자존심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대 이름처럼 바다는 우리를 설레게 하고 꿈꾸게 하는 영원한 고향이 아닙니까? 바다는 바람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풍파를 즐깁니다. 건투를 보냅니다.” <글 ·경주 갤러리 「시루」에서 이 석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