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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간판이 문제라면 간판을 없애면 그뿐

병원간판의 표기문제로 불거진 전문의와 비전문의간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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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호 ⁄ 2008.01.21 18:16:12

최근 피부비뇨기과처럼 피부과도 아니면서 마치 피부와 비뇨기 양쪽 전문의 자격을 모두 갖춘 병원인 양 버젓이 ‘피부’라는 간판을 달고 성업 중인 병원이 많다고 한다. ‘얼짱, 동안’ 의 외모열풍 속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피부에 관심이 많은 추세다 보니 피부과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피부과 아닌 일부 의원들이 ‘피부과’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를 문제 삼아 대한피부과의사회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건강한 피부관리를 위해서는 환자들이 피부과 전문병원과 비전문병원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며 병원 간판을 제대로 봐 주기를 언론을 통해 호소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전문의들 또한 할 말이 많다. ■ 병원간판법은 하위법이 상위법 이기는 하극상 한 의학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6년의 의과 대학 과정을 마친 후 ‘의사고시’에 합격하면 의사면허가 나온다고 한다. 의사면허에는 ‘당신은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의사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법적으로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에게는 개원을 할 자격과 26개의 진료과목을 모두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 하위법인 시행규칙에서 전문의와 비전문의를 구분한다는 명목으로 간판 표기에 차별을 두는 현실은 모순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비전문의보다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 것이 환자에게는 더 안전하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전문의가 비전문의보다 더 잘 진료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법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의사면허가 있는 의사는 모두 환자를 진료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하여, 의사면허가 있으면 환자를 진료하고 병명을 판단하는데 정말 무리가 없는 것인지 Y대학병원의 성형외과 전문의 과정 레지던트 3년차 K씨에게 물어보았더니 ‘문제없다’는 답이 나왔다. 그는 이어서 “사회주의 국가에는 ‘전문의’라는 개념이 없다. 한국에서는 전문의 과정을 밟는 의사가 90%에 육박하나, 의료 선진국인 미국에서조차 60~70%에 불과하다” 며 “전문의 과정은 대학병원에서 주로 ‘연구’를 위한 것, 즉 심화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부과, 성형외과, 내과 등 인체를 분야별로 나누는 것은 편의상일 뿐”이라며 “그렇다면, 손등을 베였을 때, 과연 무슨 과를 가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인체는 매우 복잡하여 하나의 질병이 생기면, 그 영역을 정하기가 참 애매하다. 만일, 감기에 걸렸다면, 무슨 과를 가야하는가? 내과일 수도, 외과일 수도, 이비인후과 일 수도 있다. 이에 “의사면허가 있으면 모든 과목을 진료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모든 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는 “국내의 의료체계 시스템은 1차, 2차, 3차로 나뉘어진다. 1차는 동네병원으로 의사면허가 있는 의사를 말하는데, 1차 진료 의사가 보기에 환자의 증세가 심각하거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환자에게 2차, 3차 의료기관에 가도록 권유한다. 이는 전문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라며 “전문의는 능력 이상의 어려운 수술인데도 자신이 가진 기술을 믿고 하려 드는 경향이 강한 반면, 비전문의는 능력 밖의 수술이라 판단되면 더 좋은 장비와 시스템이 마련된 병원으로 환자를 빨리 옮겨 사고를 줄인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시골에는 의사에 해당하는 보건소장이 혼자 모든 진료를 다 한다. 이는 전문의들의 논리로 볼 때 ‘비전문의들은 모든 질병에 대해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인데, 그럼 보건소장은 26개의 전문의 자격증을 모두 갖고 있는가, 전문의 자격증을 다 갖고 있지 않은 보건소장은 돌팔이라는 말인가”라며 “이는 기득권 싸움일 뿐이다. 즉 의사들 간의 밥그릇 전쟁일 뿐 환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덧붙였다. ■ 전문의 - 병원간판법 국민 보건을 위한 일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대한민국의 선진의료기술을 중국에 전파하는 사업을 하는 의료 관계자 S씨는 “기본적으로 의사들은 특정과의 전문의와 비전문의를 떠나 모든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사실이 인정한다. 또한 26개의 진료과목을 간판에 모두 달 수 있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전문의와 비전문의의 구분은 있어야 환자들이 좀 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의대 6년간의 교육과정은 인체의 총체적인 공부를 하는 기간으로, 이는 수박 겉핥기식 공부에 불과하다. 전문의들이 그들보다 4년이나 더 병원에서 공부하고 의료기술을 익힌 사람들인데, 이 4년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기간이다. 전문의가 되려면 4년간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을 쌓기 위해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전문의라는 개념이 있느냐”는 질문에 “원래는 없었지만, 중국도 차츰 그 필요성을 느껴 조만간 실행할 계획이다”고 답했다. 실제로 매년 국내의 학자들이 세계에서 우수한 의학논문을 발표하고 대한민국이 선진의료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전문의’과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끝으로 그는 “병원간판법은 국민들에게 전문의와 비전문의를 구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이를 부정하는 일은 알릴 기회마저 왜곡시키는 집단 이기주의적인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 환자 - 간판이 어떻다는 걸 알 리 없다 한 구역에서 같은 과의 비전문의와 전문의가 나란히 개원을 한 곳이 많은데, 오히려 비전문의 병원 쪽이 더 친절하고 서비스 면에서도 우수해 전문의 병원 보다 더 잘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간판을 보고 전문의, 비전문의를 가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다”며 “구분해서 볼 수 있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면 전문의 병원만 갈 것 인가”라는 질문에는 “몸에 이상한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전문의, 비전문의 구분 없이 서비스가 좋은 병원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병원간판으로라도 자신들이 전문의인 사실을 환자들이 알기를 원하는 전문의측, 모든 진료는 다 할 수 있게 법으로 정해 놓고 왜 간판에서 차별대우하느냐며 전문의와 대등하길 바라는 비전문의측. 두 쪽의 입장은 사실 환자들과는 무관하다. 설사 간판으로 전문의, 비전문의를 구분할 수 있다 해도 환자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서비스가 좋고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다는 이유로 신뢰가 안 가는 의사를 일부러 찾아갈 리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의 알 권리는 주되, 그 다음은 의사들의 몫이다. “하위법이 상위법을 이기는 하극상”이라며 법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전문의가 비전문의보다 의료기술이 뛰어나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법에 없다”며 법을 내세운다면 이 또한 모순이 아닐까? 개인차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전문의 과정을 밟은 의사는 4년 동안 혹독하고 긴 수련을 받지 않는가. “성형외과 교육과정에 쌍꺼풀 수술, 코 수술 등의 미용에 관련된 수술교육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원래 대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이지만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의사라면 공부하면 다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Y대학병원의 성형외과 전문의 과정 레지던트 3년차 K씨에게 물어보았더니 “레지던트 과정 중 하루에도 해야 하는 수술이 굉장히 많다. 당연히 미용수술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간판이 없는 가게임에도 불구, 전국의 손님을 찾아오게 만드는 음식점이 TV를 통해 보도된 적이 있다. 간판도 없는데다 실제 위치한 곳도 외졌으며, 가게의 분위기도 허름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가게 안은 언제나 손님으로 만원을 이룬다. “어째서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먹어보면 안다”는 대답으로 일관한다. 전문의와 비전문의의 실력을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이 판단을 환자들에게 맡겨봄이 어떠할까. 실력으로 전문의 못지 않다고 자신한다면 간판이 같던 다르던, 아니 아예 간판이 없던 간에 찾아오는 환자를 잡는 것은 결국은 병원의 몫이다. 머지않아 ‘간판 없는 병원’을 TV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이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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