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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영탁 (아산병원 아카데미 원장) 우리는 흔히 음악·미술 등의 예술 작품들을 접할 때 우선 장르별로 구분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클래식인지 대중음악인지, 서양화인지 동양화(한국화)인지, 구상(具象)인지 비구상(非具象)인지 등으로.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무의식적인 선입견은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감상을 처음부터 제한적인 것으로 만들곤 한다. 서성근을 한국화가로, 사실적인 작가로 인식하면서도 그 채색의 화려함에, 그림 전체에 흐르는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에 선뜻 어느 카테고리에 단순히 구분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서성근은 그러한 예술 형식의 분류나 인위적인 사고에의 얽매임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형식에의 얽매임을 싫어함은 그것이 자신이 작품을 통해 사랑하고 동경하는 자연을 표현함에 있어 이어지는 얽매임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십여 년 전 서성근의 개인전에서 처음 느꼈던 나의 감정은 흥분과 부끄러움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흥분이었고, 많은 아름다움들이 눈길만 잠시 돌려도 언제나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각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는 우리가 늘 스쳐도 알지 못하는 풀꽃의 내음을, 토담 위 들새들의 속삭임을, 개구리들의 몸짓에서 발산되는 봄의 생명력을 먹과 붓으로 우리들에게 말하고, 듣고, 느끼게 한다. 서성근은 화선지와 먹을 사용하는 전통적 동양화의 수묵(水墨)적인 바탕에서 그만의 독특하고 화려한 석채(石彩)의 채색 기법으로 무슨 느낌이라고 꼭 표현할 수 없는 신비적인 화상(華想)을 화폭에 담아 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물체에는 고유의 형체나 색(色)이 없다. 동일한 사물도 바라보는 각도나 거리에 따라 모양은 달라지며, 색도 그에 반사되어 나오는 빛의 각도와 양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사물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주체는 우리의 망막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양과 색을 아름다움으로 인지하는 인간의 감성(感性)이다. 우리 도시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감성의 색맹(色盲)들이 되어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순수한 감정으로 인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의 닫혔던 가슴속의 순수한 창을 열어 새삼 느낄 수 있는 모습과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새의 깃털 하나, 들꽃 이파리 하나의 터치에 기울이는 진지함이나 겸허함은 그가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고 경외(敬畏)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 전시에서 작가의 그림은 이전의 작품들에서보다 더욱 간결하고 단순화된 이미지로 자연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래서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인식과 추구가 더욱 담백해지고 강렬해진 인상이다. 서성근의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고정관념으로 바라보고 정의(正義)하는 매너리즘에서 잠시 벗어나, 순수한 감성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자연을 가슴으로 만끽하는 행운을 갖는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희망이 그 어느 곳보다 소중한 명원 공간에서 새들이 주는 평온함을, 붉은 꽃이 주는 환희를, 하늘로 향한 빛에서 생명의 태동을 느끼며 생(生)에 대한 조그만 소망을 풀어 본다. 그리고 봄날의 다정한 연인처럼, 자연 - 그 순수함의 사랑에 깊이 빠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