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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유랑시장 새 터전에 정착

탈 많던 서울 풍물시장, 최고의 관광명소 향한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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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호 박성훈⁄ 2008.05.06 15:31:09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서울 동대문 운동장 풍물시장이 신설동 청계천변으로 이전해 4월 26일 공식 개장식을 가졌다. 옛날 숭인여중이 자리하던 터에 지어진 새 풍물시장에는 옛 동대문 운동 장터에서 장사해 온 상인들의 점포 894개가 입주를 마쳤다. 이로써 풍물시장의 상인들은 청계천 복원사업에 밀려 동대문 운동장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데 이어 두 번째 이사를 마쳤다. 서울 풍물시장은 과거의 ‘황학동 도깨비시장’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상인들이 내놓은 물건들이 워낙 낡고 오래된 물건들이라 도깨비 물건처럼 보인다고 해서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과거 일제 강점기부터 청계천변에 자리했던 벼룩시장 형태의 이 시장은 서민들이 거주와 생계유지를 위해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그 후 50년대 초 6·25 전쟁이 끝나고 고물상들이 다시 모여 장사를 시작했고, 하나의 상권을 형성하게 됐다. 이것이 서울 풍물시장의 시작이다. 풍물시장의 상인들은 서울시의 도시환경 조성 사업에 따라 보금자리를 옮겨 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계천 복개공사로 흩어졌던 시장 노점들은 공사완료 후 삼일아파트를 중심으로 모여들어 2004년까지 청계천 6가부터 8가까지 도로를 점거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 3기 민선시장 시절 도시경관사업의 일환으로 청계천 복원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이곳의 노점상들을 동대문 축구장이 있던 자리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강제 철거 등으로 노점상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도로를 불법 점거했던 노점상들은 동대문 운동장으로 이주해 합법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약 4년 간 정착해 생계를 꾸려오던 노점상들이 지금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를 동대문 운동장 부지에 짓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따라 과거의 청계천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에 조성된 풍물시장을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 무담보 저리로 자금을 지원해 경영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하고, 마케팅 전문가를 배치해 풍물시장을 홍보하고 관광상품화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이젠 붙박이로 정착하고 싶다” “이제 그만 옮겨 다녔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한 곳에 정착해서 장사하고 싶다.” 그 동안 역사의 흐름에 따라, 행정 당국의 방침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닌 상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한마디이다. 풍물시장에 입주해 다시 장사를 시작한 대부분의 상인들은 황학동 도깨비 시장 시절부터 용달차를 끌고 다니며, 혹은 좌판을 펴고 접으며 노점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신설동의 새 보금자리에 자리 잡기까지 겪어야 했던 지난 4년 간의 애환이 뇌리에 박혀 있다. 상인들은 이제 한 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구청의 단속에 항상 불안했던 그들은 앞으로 새 풍물시장 안에서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시장 건물에서 마무리 공사로 아직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점포 안 콘크리트 바닥을 쓸며,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듬으면서 매장을 갖춰 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안경점을 연 명기동 씨는 지난 동대문 운동장 시절과 청계천변 시절을 회상하며 “행정 당국의 방침에 따라 축구공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만 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시민들이 부디 이곳을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가게를 차렸다는 한 상인은 “30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뒤 호떡 장사를 시작으로 안 해본 일이 없다”며 “지난 며칠 동안 점포를 꾸미느라 어깨에서 파스를 뗄 날이 없었지만, 번듯한 내 가게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쁘다”고 밝게 웃었다. 그들은 풍물시장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 주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 시절 확언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약속을 기억한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노점 생활을 할 때는 구청 단속을 피하느라 바빴고,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시절부터 이곳을 세계적인 풍물시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정부와 서울시를 믿고 이젠 정착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게는 좁고 물건은 많은 터라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이라고는 엉덩이를 겨우 붙일 정도로 좁은 공간 밖에 없었으나, 풍물시장 특유의 진기한 물건들은 행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곰방대와 도자기 등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소품들부터 각종 의류와 장난감까지 다양한 물품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철거과정서 상인들 부상, 불법 정황도… 그러나 이주를 추진하는 과정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이주하는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상인들과 서울시 사이의 갈등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채 동대문 운동장의 철거가 강행되었다고 상인들은 주장한다. 서울시는 애초 4월 중순쯤에 새 풍물시장을 개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4월 7일 신설동 시장 건물을 완공하고 10일까지는 상인들을 전부 이주시키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동대문 풍물시장 사수 공동대책위원회’를 위시한 풍물시장 상인 측은 장소가 협소하고 부수시설이 미비한데다 상권까지 불리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주를 거부하고 나섰다. 시장의 개장일정과 디자인플라자 착공일정에 다급해진 서울시는 철거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노숙인들을 포함한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강제로 상인들을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폭력이 개입돼 풍물시장 상인 9명이 부상을 입고, 이 가운데 3명이 중상을 당하는 등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상인 중 한 명은 눈을 벽돌로 맞아 눈 주위가 함몰돼 장애인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또한, 풍물시장을 강제로 철거하는 과정에서 노숙자들이 불법으로 동원된 정황마저 발견되고 있다. 당시 서울시는 한 철거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서울역·용산역과 영등포역 등지의 노숙인 350여 명을 철거에 동원했다고 한다. 철거에 투입된 노숙인들은 작업 전 철거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더러, 안전모도 지급받지 못하고 작업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현행 경비업법 시행규칙에는 용역을 고용할 경우 28시간의 사전 안전교육을 시켜야 하고, 건물·토지 등 부동산 및 동산에 대한 소유권·운영권·관리권·점유권 등 법적 권리에 대한 이해대립이 있어 다툼이 있는 장소에 투입할 경우에는 24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오점 딛고 세계적 명소 되길 서울시에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서민들에게 좋은 삶의 터전을 제공했다는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나, 그 과정에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이 이용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탄이 불가피하다. “보다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사용됐다면 과거로부터 서민과 발걸음을 함께 해온 서울 풍물시장의 역사에 좋은 단면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풍물시장의 상인들은 지금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고 있다. 시장이 많은 시민의 발길을 잡아 끌기 위해선 업종이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고,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 전문점처럼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매장도 필요하다는 건설적인 주문도 나오는 등 기대감은 충만하다. 새 역사를 써 나갈 풍물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나갈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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