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된다면, 클라리넷을 배우는 아들과 협연하고 싶습니다.” 23년 2개월이란 긴 시간을 검사라는 공직에 있다 약 2달 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 변호사로서 새 삶을 시작한 김제식 변호사(50). 서울대 법대 출신인 김제식 변호사는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5년 1월 28일 부산지방검찰청 초임검사로 검찰에 입문한 뒤, 전국을 돌며 각지 각급 검찰청에서 평검사, 부장검사, 검찰연구관, 차장검사와 지청장, 사법연수원 교수로 근무했고, 법무부 검찰국 검사와 법무실 과장을 지냈다. 김 변호사에게는 약 1년 전부터 ‘색소폰 부는 검사’라는 특이한 수식이 붙었다. 그가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말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에 부임하면서부터다. “메마르고 단조로운 공직생활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자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루고 싶던 차였습니다. 때마침 지인이 우리나라 재즈 음악계의 거장인 최광철 씨를 소개해 본격적으로 색소폰을 배우게 됐구요. 취미로 클라리넷을 배우던 아들과도 더 가까워질 좋은 계기라고 생각했죠.” 김 변호사는 지난해 색소폰을 배운지 4개월 만에 4곡을 녹음해 가까운 지인에게 나누어 주고, 5개월째에는 추가 4곡을, 여섯 달째에 6곡을 녹음해 ‘선구자’ ‘Yesterday’ ‘존재의 이유’ ‘My Way’ 등 14곡의 색소폰 연주를 수록한 음반도 제작할 정도로 능숙한 색소폰 실력을 자랑한다. 비록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엄연히 앨범을 낸 뮤지션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 것은 우연히 한 기자가 당시 지청장이던 김 변호사의 연주를 듣고 찾아와서부터다. 김 변호사로부터 연주 CD를 받은 기자는 이 같은 내용을 기사화했고 ‘연합뉴스’에 보도됐다. 이후 ‘부산일보’ 등 일간지에도 보도되며 유명세를 떨쳤다. “특별히 소질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악보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데 제법 음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는 시간에 비해서는 쉽게 익숙해졌으니까요. 제 앨범을 듣고 몇몇 사람이 묻더군요. 자기들도 가능한지, 혹시 (제 연주가) 가르치는 선생이 대신 연주한 것이 아니냐며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지난해 송년모임에서 직원들 앞에서 색소폰을 연주한 일을 회상하며, “처음엔 청사를 카바레로 만들 생각이냐며 농담을 던지던 부하 검사와 직원들도 어느새 체면 불사하고 최신 댄스곡에 맞춰 율동을 선보일 정도였어요”라면서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디웠다. 색소폰을 사랑하는 김제식 변호사에게 일과 색소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23년 2개월의 검찰 생활을 마무리하고 변호사로 전업하셨는데, ‘검사 출신’이라 검사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아실 줄 압니다. 검사와 변호사는 대립되는 입장인데, 변호사로 전업한 후의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검사 윤리강령에는 ‘검사는 공익 대표자로서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제1조)고 규정되어 있고, 변호사법에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중략) 사회질서의 유지에 (중략) 노력하여야 한다’(제1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사명으로 함에는 검사와 변호사가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23년 넘게 甲(갑)의 입장인 검사로 재직하다, 乙(을)의 입장인 변호사 일을 시작한지 2개월이 조금 넘습니다. 얼마 안 됐지만, 같은 사안을 두고 검사와 변호사의 시각이 너무나 차이가 난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 차이를 솔직히 인정하게 될 것이고, 乙의 입장인 변호사로서도 적응해 나가리라 믿고 있습니다.” 검찰의 좌우명과 변호사의 좌우명으로 어떤 말씀을 들려 주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말에 경청하자”는 것이 검찰 재직시의 제 좌우명이었습니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경청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편견과 고집을 없애고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하지요. 말하기를 절제해야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거든요. 또, 경청할 때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면 들을 수 있고, 교만하면 들을 수 없기 때문이죠. 검찰에 있을 때, 후배 검사들에게도 늘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진술을 경청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검사가 속을 수도 있지만, “얼마나 멋있게 속아 주느냐”도 훌륭한 검사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어떤 검찰 선배가 말했죠. 검사가 비록 속는 한이 있더라도 당사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배려를 검사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변호사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을 호소하려고 저를 찾아오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그들과 공감하며 겸손한 자세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옛날 서당에서는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들을 청(聽)은 귀(耳)를 주인(王)으로 해서 진지한 눈(十目)으로 바라보며 한마음(一心)으로 듣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도 나이 60에 이순(耳順), 즉 귀를 열고 순하게 잘 들었다고 했습니다. 의뢰인의 마음을 사야 하는 변호사로서도 가장 중요한 첫 번째가 ‘경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노력 중이고, 사무실 직원들에게도 ‘경청’을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검찰에 몸담으면서 아쉽고 후회스러운 때가 많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이 후회스러웠는지 듣고 싶습니다. “ 23년 전에 부산지방검찰청 초임검사로 검찰에 입문한 뒤, 저에게 주어진 일을 즐기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반면, 그만큼 아내와 아이들에게 배려를 못한 점이 가장 후회스럽군요. 한때 운이 좋아선지, 1991년부터 1992년에 걸쳐 1년 간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에서 연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집사람과 아이들을 작은 승용차에 태우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지낸 시절이 있습니다. 정말 좋았죠. 이후로는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 가족과 함께 해본 적이 없고, 검찰 인사 때마다 집을 얻거나 짐을 싸는 일은 거의 집사람 몫이었습니다. 1년이나 2년에 한 번 꼴로 매우 잦았죠. 아내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제 대신 가정을 지켜 준 사람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시간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가족들에 대한 배려에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
1년도 채 안 돼 색소폰 연주 앨범을 내셨다니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색소폰에 얽힌 일화를 소개해 주십시오. “하루는 해운대에서 신경외과 병원을 하는 의사선생님이 자신의 색소폰 연주 CD를 보내 왔고, 저는 제 연주 CD를 보냈습니다. 그 후로도 서로 친분을 쌓고 있는데,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니, 그 분이 제게 사건선임을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또, 금년 1월 초에는 KBS1 부산 라디오에서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인터뷰 내용을 들은 택시 기사가 출근하는 검사를 태우고 오면서 지청장의 색소폰 연주 소식을 들었다며 아는 척을 하더랍니다. 허허.” 색소폰 부는 검사 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즐거워하는 제 모습을 보고 집사람이나 아이들도 아주 좋아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들 녀석과 협연도 하고 싶군요. 집사람은 노래방에서 연습할 때 노래방 키를 찾아 주기도 하고 오가며 운전도 하고 저의 완벽한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2집 음반을 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셨는데, 무대에 서실 계획은 있는지요? “현재는 ‘아침이슬’ ‘plein soleil’ ‘Laura’ 등 가요, 가곡, 팝송 등 30여 곡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1집 때보다 실력이 좋아지고, 시간이 맞으면 2집 음반도 낼 계획입니다. 하지만, 아직 무대에 설 계획은 없습니다. 실력도 안 되구요. 허허.” 끝으로, ‘신입 변호사’로서 앞으로 변호에 임하는 각오를 들려 주십시오. “당분간은 겸손한 마음으로 의뢰인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며 의뢰인의 희망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초임 변호사로서 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을 내 색소폰 연습도 할 생각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