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단어들 중에 여자들이 듣기에 거슬리는 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언어는 그 사회가 가진 의식과 사고의 표출수단이라는 점에서 의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언어를 알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언어 중 남성과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일부 성차별적 요소가 있는 단어들이 잔존해 있다는 조사결과를 볼 때, 우리 사회의 문화나 의식 속에는 성차별적 요소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월경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폐경’이라는 단어는 ‘여자로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월경을 완료했다는 의미의 ‘완경’이라는 단어로 바꿔 쓰자는 대안이 나오기도 한다. 이 외에도 ‘얼굴마담’ ‘미혼모’ ‘처녀비행’ 등 성차별적 단서를 제공하는 단어들이 많다. 이 같은 성차별적인 의미를 내포한 언어 표현은 성별 간의 편견과 차별을 고착화시킴으로써 성별 간 갈등을 일으키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 조사 및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는 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신문 등 3개 신문과 KBS1·KBS2·MBC·SBS 등 방송 4개 채널, 네이트·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 등의 대중매체를 선별해 매스미디어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적 언어 표현을 조사했다. 2007년 9월부터 격주로 3주 간 매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87개의 성차별적 표현이 도출됐다. 매체별로 수의 분포를 따져보면, 신문이 2,382개, 방송이 1,750개, 인터넷이 955개로 신문에서 성차별적 표현의 사례가 가장 많이 발견됐다. 매체 유형에 따라 문자 중심 매체인 신문에서는 ‘성별 언어구조의 관용화된 표현’이, 시청각 매체인 방송에서는 ‘고정관념적 속성 강조’가, 그리고 익명성과 비가시적 특성이 강한 인터넷에서는 ‘선정적 표현’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선남선녀’, ‘1남2녀’ 등 남성 앞세운 표현 가장 많아 성차별적 언어 표현은 대체로 5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즉, △성별 언어구조의 관용화된 표현 (형제애, 효자상품, 바지사장, 사모님식 투자, 얼굴마담) △불필요한 성의 강조 (여류명사, 여의사, 여성총리, 남자간호사, 남자미용사) △고정관념적 속성 강조 (앳되어 보이다, 꼬리치다, 앙탈부리다, 야들야들, 과감한, 스케일이 큰, 씩씩한, 늠름한, 내연녀, 동거녀) △선정적 표현 (쭉쭉빵빵, 섹시 가슴, S라인, 울끈불끈 가슴근육, 조각) △특성 성 비하 (여편네, 부엌데기, 솥뚜껑 운전수, 건달, 놈팽이, 제비족) 등으로 제시됐다. 이들 사례 중 ‘선남선녀, 1남2녀, 장인장모’ 등 양성을 함께 포함하는 표현에서 남성을 먼저 앞세우고 여성을 뒤에 호명하는 유형이 1,677개로 가장 많이 발견됐다. 특히, ‘연놈’ ‘계집사내’ 등 양성이 아울러 나오는 비하성 표현에서 대개 여성이 먼저 나오기도 해 여성을 비천하게 여기는 우리사회의 인습적 문화가 반영됐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이 같이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순차적으로 나열한 표현은 언어 구조상 남성이든 여성이든 하나가 앞서 제시돼야 하므로 성차별 표현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엄마아빠’, ‘처녀총각’ 등 여성이 먼저 제시되는 단어에서 역차별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망인, 출가외인, 집사람’ 등과 같은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여성 관련 표현은 896개가 발견되었다. 미망인이란 단어를 직역하면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다. 언뜻 듣기에는 유의어인 과부보다 고상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 죽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출가외인’ ‘집사람’ 등도 여자는 외출을 삼가야 한다는 인습적 사고의 유산이다.
■성차별적 용어, 어떻게 바꿔 쓰면 될까 또한, 여성의 특정 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앳되어 보인다, 앙칼지다, 야들야들, 가녀린’과 같은 표현도 559개가 발견됐다. 이 같은 성차별적 언어 사용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각 표현에 상응하는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고서에서는 ‘미녀새~, 탱크~’ 등 성별화된 언어 표현과 ‘개미허리, 얼짱, 조각미남, 명품복근’ 등 과도한 외모 관련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스러운, 양공주, 천상사내, 소심남’ 등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성 역할을 고정화시키는 성차별적 표현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모님식 투자’는 ‘주먹구구식 투자’로, ‘미망인’은 ‘고(故) 모 씨의 부인’으로 고쳐 사용해야 한다며 대안적 표현이 제시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등장한 신조어인 ‘돌진남’, ‘된장녀’ 등의 특정 성 비하 표현은 순화된 대체 용어가 제시되지 않는 이상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과부’ ‘홀아비’ ‘걸레’ ‘자연산’ 등의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라는 은유적 표현은 기존의 대안적 표현을 활성화해서 ‘경제학의 대가 애덤 스미스’로 바꿔 부를 수 있겠다. ‘매춘부’, ‘윤락녀’는 ‘성매매 여성’으로, ‘레이싱 걸’은 ‘레이싱 모델’이나 ‘경주 도우미’ 등의 표현이 병용될 수 있겠다. ‘처녀작’, ‘처녀항해’ 등은 ‘첫 작품’ 또는 ‘첫 항해’로, ‘집사람’, ‘안사람’, ‘바깥양반’ 등의 용어는 성 구분을 할 것 없이 ‘배우자’로 통합해 사용할 수 있겠다. 또한, 성중립적이고 성평등적 가치에 기반한 대안적 언어 표현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병행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얼굴마담’, ‘바지사장’ 등의 표현은 중성적 표현인 ‘대리사장’, ‘명의사장’ 등으로 대체하고 ‘신사협정’은 ‘명예협정’으로, ‘내연녀’, ‘동거녀’, ‘동거남’등은 성적 요소를 중성화시켜 ‘내연인’, ‘동거인’으로 부르자는 방안이다. ’학부형’과 ‘영부인’ 등은 양자가 동등하게 각각 ‘학부모’, ‘대통령의 부인’으로 명칭 변경해 부르는 방안도 제시됐다. 특히, 정치와 관련된 언론보도에서 쉽게 나타나는 성별에 근거한 호명 순서도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를테면, ‘이인제, 신국환, 김민석(남성 정치인), 장상(여성 정치인) 후보의 4파전’이라는 말은 ‘기호순’이나 ‘가나다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립국어원은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성차별 표현의 정리작업을 통해 성평등 의식이 확산되고 대안적 표현이 범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성차별적인 언어 표현뿐만이 아니다. 우리말의 표현 중에는 장애인, 결혼이주자,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 집단들에 대한 차별적 표현도 혼재해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표현의 개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