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의 전반기 2년 동안 153석의 거대 여당의 사령탑으로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당의 대표로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을 선택했다. 박 전 부의장은 3일 오후 1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차기 당권 주자를 뽑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와 여론조사 투표에서 6129표(29.7%)를 얻어 5287표(25.6%)를 얻은 정몽준 의원을 제치고 대표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이로써 한나라당 박희태 신임 대표 체제는 쇠고기 파동으로 성난 민심을 되돌리고 계파 간 갈등을 치유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출범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집권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 여당의 지지율도 지난해 대선 당시 50%대에서 30%로 급락한 상황에서 국정 주도권을 회복하고 정국을 정상화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셈이다. 물론, 박 대표는 13대 국회에서 정치에 입문해 17대 국회까지 내리 당선되어 5선 의원을 지낸 국회 부의장 출신으로, 향후 여야 관계 및 계파 갈등 해소에서 정치적 경륜이 강점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당청 관계와 관련해서는 박 대표가 친이계 주류로 이명박 정부 탄생의 1등 공신이라는 점에서 향후 당청 관계의 안정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박 대표가 그 동안 ‘통합과 소통’을 화두로 당·청을 잇는 고속도로 역할을 자임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당·청 관계는 ‘포괄적 협력관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내까지 청와대 통제 강화되나 박 대표는 지난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캠프의 중핵(中核)이었던 ‘6인회의’ 멤버로 활약했으며, 이 대통령에게 정국 현안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당·청 관계는 이 대통령과 박 대표 간 정례회동이 단순회동 수준을 뛰어넘어 명실상부한 여권 내 ‘컨트롤 타워’로 자리매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곧 박 대표의 정치적 경륜으로 볼 때 당 대표 역할을 넘어 이 대통령의 ‘정치특보’ 역할까지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큰 무리가 아니라는 설명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대통령과 박 대표 간의 이러한 관계 설정은 ‘쇠고기 난국’으로 통칭되는 국가위기 상황을 수습하고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당·청 간 협조체제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기에서 매우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부 출범 이후 당이 청와대와 정부를 제대로 ‘백업’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선 만큼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당·청 관계도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이계 내부에서조차 당·청 간 수평적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고, 특히 전대 직후 있을 개각과 관련해서도 내부 시각차가 큰 상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박 대표가 현안마다 청와대에 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보이거나 전대 직후에 곧바로 시작될 개각과 관련하여 미온적인 입장을 보일 경우 당장 소장파의 반격도 예상되고 있으며, 현재 난제에 빠진 여야 관계 복원도 큰 과제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박 대표가 출마 이전부터 ‘관리형 대표’로 지목받았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친정체제 범위가 당에까지 미쳐 청와대의 통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게다가 박 대표가 급변하는 정치환경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박 대표의 한 측근은 “박 대표가 청와대에 고분고분한 여당이 아니라 할 말은 하는 ‘꼿꼿한 여당’을 만들겠다고 했다”면서 “이는 청와대 2중대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측근은 “박 대표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터득한 정치적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면서 “향후 당·청 관계는 `견제 속의 협력을 통해 동반자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일각에서 이른바 친이계가 당을 장악해 청와대 눈치를 볼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으나 이제 계파정치는 사라질 것”이라며 거들었다.
■‘친박계’ 주류에서 더 소외될 듯 이와 함께 당내 갈등의 ‘진앙지’였던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도 박 대표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면서, 박 대표가 나름의 ‘통 큰 정치’로 대거 포용하는 방향으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대표는 3일 당선 직후 수락 연설에서 “당 대표로서 당내의 화합을 이루고 국민들의 신뢰를 쌓도록 하겠다”며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혀 이같은 의지를 강조했다. 이어 박 대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박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를 사라지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박 대표는 “나의 목표는 당내 화합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드리는 것”이라며 “화합의 종착점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두 분이 정답게 손잡고 국정을 잘 이끄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박희태 대표 체제 출범 이후에도 박근혜 전 대표는 이전과 다름없이 잠행에 가까운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며, 이 대통령 및 주류 측과 거리 두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새 지도부에서 친박 복당 등 현안과 관련해 어떤 화합 조치를 취하는지에 따라 다소 유동적일 수는 있지만, 당분간은 본인이 밝힌 대로 ‘새 지도부가 잘 할 수 있도록’ 한 발짝 물러서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 대표가 상대적으로 화합형이기는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정몽준·허태열 후보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친이 친정체계가 구축된 상황에서, 박 전 대표로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현실론도 이런 행보에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새 지도부 취임 이후에도 박 전 대표의 행보에 특별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당분간은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국회가 개원된다면 의정활동 등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은 “박희태 전 부의장이 대표에 당선됨으로써 이번 전대를 통해 주류가 당을 완전히 장악한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대표가 지명할 2명의 최고위원 역시 친이계가 맡게 될 것이고,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까지 감안하면 앞으로는 당 운영에 청와대 의중이 상당히 반영된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따라서 당분간 친박계는 당 주류에서 더 소외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로서는 복당문제가 마무리되더라도 지난 18대 총선 공천 과정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고, 차기 대권을 놓고도 계파간 기싸움도 예상되며, 공천 과정의 계파 줄 세우기 논란도 풀어야 할 숙제로 대두되고 있어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되고 있다. ■원외 대표 체제 극복이 큰 과제 또한, 쇠고기 정국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국면으로 국회는 1개월여 동안 개원조차 못하고 있고, 향후 원 구성 협상을 놓고도 야권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여야 대치국면을 어떻게 풀어갈지도 큰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촛불집회 정국을 타개할 해법으로 야권이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이나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 중이고, 하반기 국정감사를 놓고도 여야 간 한 판 대결이 예상되고 있다. 박 대표는 18대 국회 개원 문제와 관련해 “합의 개원이 원칙이지만 오죽했으면 당에서 단독 개원이라는 말이 나오겠느냐”며 “모든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야당은 왜 안들어오나. 국회의원은 국회로 가야 한다”고 야당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대화와 타협이 여야 관계의 기본이라는 소신은 변함 없다”며 “나는 일종의 ‘타협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원칙과 타협 속에서 국회를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 조만간 야당 측과 물밑 접촉에 들어갈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대표는 또 ‘야당 대표와는 언제 만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통합민주당이 경선 중이라서 인사를 가야 하는데 시기는 좀 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또 다른 과제 중 하나는 사실상 첫 원외 대표 체제를 꾸리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해 원외 인사가 한나라당을 이끄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7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집권 여당의 총재로서 원외 대표를 맡았었지만, 당시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이 총재가 의원직을 버리면서 원외로 위상이 바뀌었을 뿐 현재의 원외 대표 체제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서 이홍구 전 의원도 1996년 5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원외 대표를 맡았으나, 이 전 의원 역시 당시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으로서 원외체제는 한 달을 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처럼 ‘온전한’ 원외 인사가 대표를 맡기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가 비록 원외 대표이지만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등 원로 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데다 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 의장 등 여권내 ‘신(新)주류’와도 가깝다는 점에서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에상되고 있다. 이 외에도, 박 대표는 본인이 민주화 1세대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민정계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고, 또한 70대 고령이라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이 TK(대구·경북) 출신인 상황에서 당 대표까지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영남 지역주의’ 꼬리표가 박 대표로서는 앞으로 잇따라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재보궐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도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