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 5개월이 채 못 돼 두 달여 동안 계속된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남북·한일 관계에 대형 돌발변수가 잇따라 터지면서 또 다른 위기국면으로 내몰리는 등 나라 안팎의 중대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가 실시되고 있어 국조 결과에 따라 새 정부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자칫 사그라들고 있는 ‘촛불’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조 대상에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외교통상부와 함께 청와대 대통령실까지 직접 포함돼 있어, 국조 과정에서 청와대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 공방에 휘말리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애초의 한·미 쇠고기 협상에 문제가 있었던 농림수산식품부에 대한 책임론이 그 선을 넘어 외교통상부 등 다른 부처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2차 ‘쇠고기 정국’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또한, 대통령 기록물 무단 반출 사건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반환 결단’으로 신·구 세력 간의 충돌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는 했으나, 양측의 줄다리기 역시 고민거리다. 우선, 쇠고기 국정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임은 16일 본회의에서 쇠고기 협상 과정 및 경찰의 촛불 시위대 강경 진압에 대한 긴급현안질의부터 벌어진 여야 설전에서 잘 나타났다.
■ 야당, “졸속협상을 누구에게 책임 돌려”
이날 여당은 광우병 괴담 등 국민의 우려와 불신의 문제를 야당은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 및 책임 여부와 촛불집회 경찰 강경진압에 대해 추궁했다.
특히, 졸속협상·굴욕협상이라고 불리우는 쇠고기 협상이 참여정부 때 이미 이뤄졌고 현 정부는 도장만 찍은 것이라는 ‘'설거지론’을 펼친 여당과 참여정부 때의 협상과정은 현 정부의 어리석음과 무능함을 나타내는 ‘산 증거’라는 야당의 반발이 거세게 부딪쳤다.
참여정부가 이미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고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부합한 수입위생 조건안을 추진했다며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주장을 펴자, 민주당 이강래 의원 역시 현 정부의 쇠고기 협상으로 인해 한미 FTA의 비준안 통과가 더 쉬워진 건 사실이라며 여당의 설거지론에 강경 대응했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참여정부의 협상은 현 정부에 비해 상당한 보호주의적 색깔을 보였다고 주장하는 등 여야 간의 불꽃 같은 설전이 이뤄졌다.
즉, 여당은 참여정부가 미 쇠고기를 수입하더라도 건강상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부담을 떠안기 힘들어 차기 정부로 책임을 돌린 것이라고 비판한 반면, 야당은 이명박 정부가 보여줬던 졸속협상과는 달리 지난 2006년 미 쇠고기 수입재개를 두고 협상을 벌인 노무현 정부에서는 광우병 추가발생시 잠정 수입중단 조치,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 등 주 협상의 지침을 대부분 관철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을 전 정부에 돌리고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쇠고기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쇠고기국정조사특위)의 민주당 김우남 의원은 2007년 12월 31일자로 대외비 문서에서 해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협상 대응방안’을 공개하며 이것이야말로 ‘2008 쇠고기 협상의 실패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증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특히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 7개의 SRM 모두 제거, 내장 전체 수입금지 등 주요 협상 쟁점이 된 부분을 현 정부는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포기했다”며 거듭 비난했다.
또한, 2006년 1월 작성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협상 대응방안’을 보면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 수입방안이 채택됐으며, 나아가 분쇄육 및 가공육 등은 수입허용 품목에서 제외시켰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또한, 협상 지침 제1단계로 미 정부의 허가를 받은 작업장에 대해서는 외국 검역관에 의한 정기적인 점검을 수용할 수 없다는 미국 측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국내 검역당국이 미국의 수출 작업장을 사전 승인하고 정기적으로 작업장 현지점검을 실시하는 방안이 협상에 반영됐다고 민주당 의원들은 제시했다.
■여당, “우리는 ‘잘 차려진 밥상’에 도장만 찍었을 뿐”
여당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이 이미 OIE 기준에 따른 수입을 공식 약속했다며 2007년 4월 2일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 타결 특별담화문’ 발표에서 “OIE의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고 합리적인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고 폭로하면서 특유의 설거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즉, 참여정부 시절 수입위험분석 절차의 막바지 단계인 5단계 ‘가축방역협의회’ 회의에서 미국이 OIE 규약의 ‘광우병 위험통제국’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향후 추진계획으로 ‘전문가 검토의견과 가축방역협의회’ 결과를 토대로 수입 쇠고기 도축 월령, 수입 허용부위 등에 대한 협의를 거치겠다고 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여당 의원들은 참여정부 시절의 종합검토에서도 미국산 수입 쇠고기로 인한 인체감염 가능성과 국내 광우병 유입 우려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으며, 미국에서 BSE가 완전 박멸됐다고 볼 수는 없으나 예착 및 검사 과정을 통해 색출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주장을 해, 국조 현장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고 있다.
다시 말해, 참여정부 시절에 이미 OIE 기준에 따른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되 다만 그 시점을 강화된 사료조치의 공표시점으로 하느냐, 이행시점으로 하느냐에 관한 최종결심만 남겨 두고 있었기 때문에, 현 쇠고기 협상파문은 이미 참여정부 당시부터 예견돼 있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노무현 정권 당시 이미 다 완성됐었던 협상문에 이명박 정부는 도장만 찍었을 뿐이다”라고 말해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국회 미국산 쇠고기 협상 국정조사특위는 다음달 1일과 4일에 열기로 했다.
■“부하직원 고발 참을 수 없어 며칠 고민 결단”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갖고 와 열람하는 것은 실정법상 정당한 권리의 행사로서, 정략적 의도에 기반한 전직 대통령 흠집내기를 중단하라.”
15일 오후까지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같이 주장하며 완강한 태도로 일관해 신·구 권력 간 힘 겨루기 양상이 검찰로 넘어가면서 치열한 법적 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이번 ‘e-지원’ 사태가 16일 오후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기록물 반환’이라는 전격적인 결단으로 봉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그러면, 전날까지도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노 전 대통령이 초지일관 요구했던 ‘정부의 열람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 조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반환을 결정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한마디로, 자신의 청와대 참모들이 법적 시비에 휘말리는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봉하마을에서 참모들과의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전날 청와대 측이 “노 전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비서관·행정관 10여 명을 고발조치하겠다”고 밝힌 것을 상기시키면서 “나를 괴롭히거나 고발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시하고 결정한 일을 놓고 애꿎게 부하직원을 고발하고 괴롭히는 것만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요즘 검찰 분위기도 그렇고, 더욱 더 고생을 많이 할 것”이라며 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을 강하게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천호선 전 대변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