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성장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의료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의 주류가 제조업 등 2차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옮아가는 단계에서 의료 서비스 산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오상봉 산업연구원장은 지난해 11월 상공회의소에서 실시한 ‘한국의 새로운 엔진을 찾아’라는 강의에서 “서비스 산업의 수요가 늘면서 의료 서비스 산업의 비중도 한층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분야를 포함한 지식 서비스가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의 신성장동력 사업 중 신약 개발 및 의료기기 제조산업을 꼽은 바 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의료장비와 재료 등을 국내에서 생산해 내수를 충당하고 수출로 이어질 수 있게 한다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산학연 중심의 세브란스 병원 이철 원장을 만났다. 세브란스 병원은 보건복지가족부가 5년간 총 225억 원을 투입하는 심·뇌혈관 분야의 ‘선도형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됐다. 또, 세브란스 병원은 ‘의료기기 임상시험센터’로도 지정돼 5년 간 80억 원의 지원금도 받는다. 선도형 연구중심병원은 병원의 우수한 기초·임상인력과 인프라를 이용해 연구역량이 강화된 선진 연구중심병원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에서 기획했다. 의료기기 임상시험센터는 보건의료 기술 개발을 통해 국내 산업의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세브란스 병원의 이철 원장은 “뇌심혈관 질환은 암 이외에 국민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병으로, 이를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위한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의료기관 및 산업체와 연계해 의료기기·치료제·진단제·조형질 등을 개발하여 제품을 만들고 수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지난해 8월 1일 취임하신 지도 4개월을 넘었습니다. 국내 최대 의료기관의 수장으로 병원을 운영하신 데 따른 성과와 2009년 병원 운영계획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환자 중심 병원이 됐으면 좋겠어요. 의과대학에 소속된 병원이라 과 중심으로 병원이 나뉘어져 있다 보니, 가령 암환자가 진료를 받으려면 내과에서 진단을 받고, 외과에서 수술하고, 암센터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등 가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의사 중심의 병원 직제 때문에 환자들이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죠. 이제 환자를 중심으로 의료진이 모이는 ‘원스톱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자 중심’의 병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과나 외과보다는 위암 클리닉 등 질환 중심으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남은 임기 동안도 환자 중심 병원 전환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세브란스 병원이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선도형 연구중심병원’과 ‘의료기기 임상시험센터’로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는다는 소식입니다. 의료분야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던 차에 이 같은 전폭지원 소식이 반가우시겠습니다. “뇌혈관 질환이 중풍이고, 심혈관 질환은 심근경색이잖아요. 우리나라 사망의 2위와 3위를 차지하는 질환입니다. 암 이외에는 국민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병인데, 질환을 진단하고 치유하고 하는데 대해 연구비를 받은 거예요. 다른 의료기관과 산업체들과 연계하여 산업 의료기기·치료제·진단제·조형질 등을 개발해 수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연구비 신청을 했고, 정부가 인정한 것입니다. 국부를 창출하는 산업이 서비스 산업으로 바뀌는데, 여기서 병원의 의료분야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병원의 환자 숫자나 치료의 퀄리티는 세계적 수준입니다. 분야마다 포진한 의료진과 인접한 연세대 의과대학이 있죠. 여기에 이를 산업화하기 위한 인프라들이 주변에 구축돼 있어요. 산학연(산업·학술·연구)이 어우러져 있는 환경입니다. 이런 경쟁력을 가지고 의료 산업화를 실현해서 2009년을 의료산업화의 원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이 진료도 탁월해야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산학연이 협동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우리 병원이 앞장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재를 키워내는 비결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 교수들 500명 중 전원이 1~2년 간 외국 병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오는 시스템이 20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자체 재원으로 외국에서 연구한 인력이기 때문에 의사들마다 명의입니다. 예를 들면, ‘다빈치’ 기술을 이용한 로봇 시술을 저희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최단시간 내에 1000번 시술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도 놀랄 만한 성과예요. 우리 의사들이 손재주가 좋고 첨단 시술에 잘 맞는단 얘기죠. 지금은 일본·동남아 의사들이 우리에게 로봇 시술을 연수하러 오기도 합니다. 내년 3월에는 다빈치 시술 교육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도 개소할 예정이고요.” ■ 세브란스 병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진료표준 JCI인증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인 진료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를 통해 기대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18년 전에 인요한 교수가 저희 병원 안에서 외국인 진료소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메디컬 투어리즘을 처음 시작한 원조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외국에서 보험사가 여행보험을 든 자국민들이 외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 어떤 병원이 좋은지 판단할 기준이 모호하잖아요. 국제진료표준인 JCI가 “이 병원이 국제표준 이상의 병원”이라는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죠. JCI 인증을 받아야지 저 병원을 믿고 보낼 수가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저희 병원이 국내에서 JCI를 처음 인증받았고, 인증 의료기관 중에서도 저희가 가장 큰 병원입니다.” ■ 외국인 환자를 국내에 유치하는 일은 바람직합니다만, 외국으로 원정진료에 나서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는 안타깝습니다. 국내의 뛰어난 의료기술에도 불구하고 의료관광이 늘어나는 원인과 해법이 궁금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간암·위암 수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입니다. 미국에 가도 우리나라만큼 암 시술의 노하우를 축적한 병원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위 ‘3분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의료 시스템이 이런 현상을 만든다고 봐요. 외국은 의료수가가 우리의 10분의 1이에요. 미국 의사들은 오전에 10명만 진료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사들은 오전에 수십 명의 환자들을 대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죠. 아마 하버드대 출신 의사를 데려와서 우리나라 병원에서 며칠만 근무시켜도 못 버티고 나갈 것입니다. 근무강도가 워낙 세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오진 없이 진료할 수 있는 경쟁력은 우리가 세계최고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의사도 오전에 10명만 진료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에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 법원의 존엄사 판결이 상당한 논란이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존엄사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 된 계기라고 보는데요, 이에 대한 소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병원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지 않습니까? 아직 혼란스러운 상황이죠. 과거 ‘보라매 사건’에서는 존엄사를 허용한 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되지 않았습니까? 매번 상황마다 판결이 달리지니까, 저희도 1심판결에 승복하기에는 성급하지 않나 하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의 환자들이 많은데,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제도적 뒷받침이 확실해야 합니다. 저희 병원은 기독교 기관인데다, 법적 합의를 받는데 보호자의 고통도 충분히 생각을 해야지요.” ■ 중소병원은 물론 종합병원에서도 외과 의사가 없어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의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분과에서는 PA(physician assist, 의사보조) 간호사들이 수술에 참여하는 일도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심장수술 관련 흉부외과에 의사가 없죠. 이는 정부가 굉장히 단순하게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85%가 민간병상이고 15%가 국공립이잖아요. 대부분이 민간인데, 모든 의료 시스템은 국가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의료보험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흉부외과 의사는 개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심장수술을 하면서 개업이 불가능하죠. 공직밖에 할 수가 없어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업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예전에 남아공의 심장이식수술을 처음 시술했던 버나드 박사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녔어요. 최고의 의사에 맞는 대우를 받았던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할 의사들이 제일 수입이 적고 제일 고생을 해요. 전국에서 심장수술을 일 년에 몇 건이나 하겠습니까? 그 의사들을 더 대우해줄 수 있는 의료보험 체계를 마련해주면 지원자들이 올 것입니다.” ■ 의학도들이 흉부외과를 지망하다가 나중에는 피부과 혹은 성형외과 등 인기분과로 전향한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의업은 약 한두 알을 사용하는 일까지 보고해야 하는, 수입이 노출된 분야입니다. 의업을 통해서 재산을 형성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버려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 봉사하는 게 기본이고, 이를 위해 일하면 생활할 비용이 나온다는 생각을 해야죠. 의업을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로 생각해선 절대 안 됩니다. 의료인으로서 건강을 책임지고 생명을 살리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 이철 원장님은 소아과 전문의입니다. 최근의 소아과 동향과 아울러 아동 건강관리에 대한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소아과에도 콩팥이나 위장·신경계통·혈액계통 질환 등 분야가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저는 그 중에서도 신생아 전문입니다. 인큐베이터에서 미숙아를 키우는 등의 진료를 맡았죠. 아이들이 건강해야 나라의 건강으로 연결되잖아요. 요즘 결혼시기가 늦어지고 젊은 여성의 흡연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음주도 많이 하고,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는 등 산모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미숙아 분만이 늘고 있어요. 건강한 산모에게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산모의 건강을 해치는 환경요건 때문에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또, 요즘에는 ‘성인병’이라는 병명이 사라지고 ‘생활습관병’이란 말이 생겨났잖아요. 운동하지 않거나 바르지 못한 식습관 때문에 비만이 생기고, 흡연습관 때문에 폐암이, 짜거나 맵게 먹는 식습관 때문에 위암이 생기잖아요.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작년에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질환은 우울증입니다. 또, 경제가 불황일 때마다 주류 소비가 늘어나는 등 음주로 인한 질병도 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직장인들에게 건강을 위한 조언을 말씀해주십시오. “모든 병이 스트레스로 발생한다고 하잖아요. 마음의 평안이 중요할 것 같아요. 사회 전반적으로 우환이 만연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지만, 우리가 걱정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라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복잡해지면 성서를 읽거나 기도를 통해 해결하곤 하죠. 제 노하우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