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을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었던 강호순의 잔인한 살인행각이 검·경 수사과정에서 전모가 드러나면서 사형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이었던 1997년 말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일괄 집행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11년째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없다. 그래서, 국제앰네스티(AI)에서는 한국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강호순과 관련된 소식이 나올 때마다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는 거센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강호순 역시 ‘희대의 살인마’로 사형 판결이 내려진 살인 피의자들과 견주어 정도의 차이를 따지기 힘들 정도로 흉악범죄를 저질렀다는 면에서 사형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또, 대학생 연쇄 살인으로 전남 보성에서 붙잡혀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70대 오모 씨가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를 폐지해달라고 위헌소송을 낸 바 있다. 사형제 위헌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은 올해 6월로 예정돼 있다. 사회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흉악범죄 사건이 날 때마다 불거지는 사형제 존폐 논란은 이번 강호순의 부녀자 살인사건으로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만약, 그가 조선시대에 태어나 당시의 형벌 규정에 따라 살인죄를 처벌 받는다면 어떻게 분류될까. ■ 교형·참형·능지처사 등 조선시대 사형제도 조선시대의 사형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형의 형태로 잔존해 있는 교형(絞刑, 목을 졸라 죽임)과 함께 참형(斬刑, 목을 베어 처형하는 제도. 참수)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명률의 규정에 의하여 교형과 참형의 2종으로 정했지만, 죄질에 따라서는 사형의 방법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형을 집행한 다음, 죄에 대한 경계와 위협 효과를 위해 죄수의 머리나 시체를 공중에게 전시하기도 했다. 이를 효수(梟首) 혹은 기시(棄市)라고 한다. 당시의 사형에는 대시(待時)집행과 부대시(不待時)집행이 있었는데, 대시집행은 사형이 확정된 후에도 일정기간 대기하였다가 춘분 전과 추분 후에 날짜를 정해 사형을 집행하는 제도로, 일반 사형수에게 적용했다. 부대시집행은 사형이 확정되면 때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즉시 사형을 집행하는 제도로, 보통 10악(모반·모대역·모반·악역·부도·대불경·불효·불목·불의·내란)의 범죄에 적용됐다. 특기할 부분은, 삼복제가 존재해 사형은 3차례의 재판을 거쳐 신중하도록 하였고, 사형의 확정은 반드시 임금의 재결을 받아야만 했다. 능지처사의 경우에는 대역사건의 국사범이나, 특히 일반에게 경계할 필요가 있는 반도덕적 범죄인에게 행하여졌기 때문에, 민중에 대한 위협의 목적으로 오살육시(五殺戮屍, 죄인의 머리를 벤 다음 팔·다리·몸뚱이를 자르는 극형), 거열(車裂, 죄인의 팔과 다리를 4방향으로 우마에 묶어 동시에 우마를 몰아 죽게 하는 형벌) 등 이름도 형태도 무시무시한 사형제도가 시행됐다. 그 외에도 왕명으로 독약을 마시게 하여 죽게 하는 사사(賜死)와, 이미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 참형 또는 능지처사를 행하는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있었다. 연산군 시대 무오사화·갑자사화에 연루된 자 등에 대하여 부관참시형이 시행되었다. ■ 조선시대, 사형 금지한 ‘금형일’도 눈에 띄는 점은 당시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는 금형일(禁刑日)을 법으로 제정하였는데, 이는 천지의 이법을 중시하는 음양사상에 의한 것으로, 시절과 형옥에 관한 정령을 부합시키려는 의미였다. 금형일은 왕과 왕비의 탄생일과 그 전후일 및 왕세자 탄생일 등의 국경일, 대제사일과 그 재계일(齋戒日), 국상일(國喪日) 같은 국기일(國忌日)이다. 입춘 이후 추분 이전과 매월 1·8·14·15·18·23·24·28·29·30일의 금살일(禁殺日)과 24절기에도 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비 오는 날과 동 트기 전에도 사형이 집행될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금형일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연산군 2년(1496)에 초계 군수 유인홍의 첩이 남자 하인과 간통하다가 본처 소생의 딸에게 들키자 그를 찔러 죽인 사건이 기록돼 있다. 이로 인해 체포된 첩은 옥중 사망했고, 사건에 연루된 여종은 이듬해 능지처사를 당하게 됐다. 이 범죄는 날을 따로 잡아 집행할 필요가 없는 부대시 범죄임에도, 그날이 음력 5월 5일 초여름 금형일이라 가을로 연기됐다. 금형일을 어기고 형을 집행한 사람은 곤장 80대를 맞거나 이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문종 즉위년(1450) 4월 17일에는 우사간 김신민, 지사간 신자수, 우헌납 최제남, 우정언 유효담 등 4명의 사간원 사헌부 간부들이 국상 기간에 죄인을 학대한 죄로 파면당하기도 했다. 이후 조선왕조의 육법전서라 할 ‘경국대전’이 완성(1485)되면서 형벌의 기준도 분명해졌다. 구시대적인 사형 방식은 고대로부터 존재해 왔으나 문명의 진보와 함께 사라져 가다가, 1894년 칙령 제30호에 의하여 참형과 능지처사를 폐지함으로써 일반인의 사형은 교(絞), 군인의 사형은 총살로 정하였으나, 1900년 형률명예에서 참형을 부활시켰다가 그 후 1905년에 형법대전을 제정하면서 참형을 다시 폐지하였다. ■ 김대두·지존파 등 연쇄살인범, 형장의 이슬로 이번 강호순의 살인사건과 같이 여러 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형을 선고받았고, 형이 집행된 사람도 있다. 지난 1975년 8월 12일부터 10월 7일까지 약 2개월 간 수원·평택 일대 시골의 외딴집을 돌며 70대 할머니에서 갓난아기까지 모두 17명을 살해한 김대두(당시 25세)는 이듬해인 1976년 3월 18일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의 사형은 같은 해 12월 28일 집행됐다. 김대두 외에도 사형이 집행된 연쇄살인범은 ‘지존파’ 일당이다. 김현양을 필두로 조직원 6명이 1993년 7월 지존파라는 조직을 결성한 뒤 사업가 부부를 납치 살해한 것을 비롯해 배신한 조직원 1명 등 총 5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특히, 피해자의 인육을 먹고 화장터를 만들어 시신을 소각하는 등 끔찍한 범행은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1994년 9월 체포된 지존파 일당 가운데 김현양 등 6명은 같은 해 10월 31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됐으며, 사형 집행은 1995년 11월 2일 이뤄졌다. 또, 지존파가 검거된 얼마 후 부녀자 6명을 연쇄 납치 살해한 온보현 사건이 터졌다. 온보현은 1994년 11월 사형선고를 받고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1년 후인 1995년 11월 2일 사형을 당했다. 같은 날 사형당한 지춘길(47)은 전과 때문에 10년의 보호감호 처분을 선고받자 그 분노를 엉뚱하게 폭발시켜 힘없는 노인 6명을 살해하고 불을 질렀고, 충남 대천에서는 영아 4명과 어린이 1명을 죽였다. 2000년에 검거된 부산·울산 연쇄살인범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철강회사 회장 부부 등 9명을 잇달아 살해했고, 같은 해 김해선(32)은 전북 고창에서 3명을 연쇄 살해했다. ■ 현재 사형수 58명 우리나라에서 구치소 등 교정시설에 수용된 사형 확정자는 모두 58명이다. ‘희대의 살인마’로 불리우는 유영철(39)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 등지에서 노부부는 물론 노래방도우미 등 21명을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했으며, 시신 11구는 토막을 내 매장했다. 유영철은 출장 안마사나 노래방 도우미 등을 살해하여 시신을 토막냈는데, 유영철은 당시 아내가 죽은 뒤 여성들을 보면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2004년 7월 체포된 유영철은 2005년 6월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집행은 되지 않아 수년째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정남규(42) 역시 2004년부터 2년여 간 25건의 강도상해 및 살인으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정남규는 2007년 4월 사형이 확정됐으며, 유영철과 함께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복역 중이다. 2007년 12월 실종된 안양 초등생 이혜진(당시 10세)·우예슬(당시 8세) 양과 2004년 7월 군포에서 실종된 정모 씨(당시 44세)를 잇따라 살해한 정성현(40)은 지난해 10월 열린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정성현은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지금은 3심을 기다리고 있다.
■ 정치권에서도 사형제 찬반 논란 국가인권위원회와 정치권은 관대한 입장을 표명해 온 동시에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은 지난 15대부터 18대 국회까지 잇따라 발의돼 왔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유인태 전 의원이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 법안을 둘러싸고 2006년 2월 법제사법심사소위에 출석한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사형제 논의는 오랜 시간 학계나 전문가, 일반 사회에서 논의된 문제이다. 사형제도 자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이라며 사형제 폐지 법안의 심사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10일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사형폐지를 거듭 주장한 바 있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의 대표발의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종신징역형으로 해야 한다는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을 제출해 계류 중이다. 법관 출신인 박선영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범죄가 날로 흉악·잔혹해지는 현상은 사형제도가 더 이상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는 반증”이라며,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가석방·사면·감형·복권을 허용하지 않는 종신징역 제도를 신설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서울대 조국 법대 교수도 “흉악범죄와 사형제도는 관계가 없다”며 “흉악범들은 애초부터 범죄를 계획한 확신범”이라면서 “살인범들은 사형제도가 있는 걸 알아도 범죄를 저지른다”고 주장했다. 사형제도의 살인범죄에 대한 억제력 논쟁은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 지존파·막가파 사건 등 흉악범죄가 있을 때에도 계속돼 왔었다. UN에서 1988년과 2002년에 실시한 사형의 범죄예방효과에 대한 조사 결과, 사형제도가 살인억제를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형을 폐지한 유럽의 경우도 오히려 흉악범죄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 11년간 살인범죄 32% 증가…사형제 존폐논의 계속돼야 하지만, 실질적인 범죄 예방 및 처벌 효과를 알리기 위해 사형제를 유지하는 것인데 집행이 유명무실하다 보니 경각심이 떨어져 범죄의 양상은 날로 흉폭해지고 있다며 사형제 폐지의 반대는 물론, 형 집행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형은 문명 국가의 사법 제도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지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다. 그래서 생명을 직접 빼앗아야 하는 집행장의 검사와 교도관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이다. 사형수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이 상당기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한동안 밥도 못 먹고 잠을 못 자는 검사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난 11년 간 한국의 살인범죄는 32%나 증가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사형집행 시기인 1994~1997년에는 해마다 평균 607명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1998~2007년에는 평균 800명이 살인죄로 재판에 넘겨져 살인죄 기소자가 32%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된 나라는 129개국이고, 62개국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작년에 18명의 사형을 집행한데 이어, 지난 29일에도 사형수 4명의 형을 집행했다. 또, 미국이나 중국 등에서는 수시로 사형이 집행된다. 하지만 현재 수감된 사형수 58명은 대부분 ‘인면수심’에 가깝고, 그들의 손에 숨진 직접 피해자만 수백 명이며, 가족과 친구, 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영향은 끝이 없다. 한편, 2월 5일 법무부는 사형수 1명에게 들어가는 연간 예산을 약 160만 원으로 추산했다. 사형제 문제는 국민의 법감정과 법철학·종교·인권·문화 등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번 연쇄 살인사건을 계기로 사형제가 다시 논란이다. 과거 유영철과 정남규 사건 때처럼 일회성 논의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