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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단합 위한 병풍역할, 민족통일 소임 다할 것

[인터뷰] 3년 만에 민주당에 복당한 ‘협상의 달인’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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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5호 심원섭⁄ 2009.02.18 14:40:46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지난해에 8.15 특별사면복권이 되면서 정치활동 재개를 위한 복당을 신청해 지난 1월 14일 민주당의 복당 결정으로 3년 만에 친정으로 되돌아왔다. 한 전 대표는 이날 당원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그 동안 걸어온 영광과 기쁨, 그리고 아쉬움과 노여움을 모두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 묻고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민주당에 복귀하여 정당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며 “통합된 민주당에 돌아올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고 감회가 깊게 느껴진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한 전 대표는 “당의 화학적 결합을 통한 단합을 이루는 일에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또한 정치·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정도를 걷는 사람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는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당의 정체성을 되살리고 민족통일을 위해 미력이나마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라는 각오도 밝혔다. 특히 한 전 대표는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안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당의 정체성 확립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며 “내용은 없고 구호만 난무하는 기존의 구호정치의 틀에서 벗어나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직시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일관되고 미래지향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대표를 ‘협상의 달인’으로 부르고 있다. 97년 대선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 간의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는 당시 김용환 자민련 측 대표와 밀고 당기는 협상과정에서 철저한 보안의식을 발휘, 자민련 측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퍼’‘자물쇠’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대선 승리 후 IMF 경제위기를 맞아 온 나라가 ‘정리해고’를 둘러싼 첨예한 노사대립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제1기 노사정위원장을 맡아 특유의 뚝심과 배짱을 발휘한 협상력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 ‘해결사’라는 또 다른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한 전 대표는 마지막 정치인생을 민주당의 정체성과 지지세력 재결집을 위한 병풍 역할을 자임하며 통일문제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와 9일 오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가진 일문일답이다. ■ 3년 만에 친정인 민주당에 복당하여 정치를 재개한 소감은? 민주당은 내가 헌신하고 몸 바쳐 일구어 왔던 정치적 고향이며 터전이다. 나는 지난 정치휴면기 동안 민주당이 분열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가슴 아팠다. 이제 다시 통합된 민주당에 돌아올 수 있어 무엇보다도 기쁘고 감회가 깊다. ■ 지난해 광복절 사면복권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나는 초선의원이었던 82년 11대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통해 ‘김대중 선생 석방과 광주문제 해결’ 등 6개항을 요구한 적이 있다. 당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 분위기로는 감히 언급조차 할 수 없던 금기사항을 거론했던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의정활동의 많은 부분을 광주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그 인연으로 복권 후 가장 먼저 5.18광주민주화 묘역에 참배를 다녀왔다. ■ 한 전 대표의 정치적 발목을 잡았던 나라종금 의혹사건의 진실을 말할 수 있나? 나는 지난 정치 변혁기에 대북송금사건을 비롯한 5건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4건은 무죄와 무혐의 판결로 결백이 밝혀졌고, 나라종금 사건에서는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사건은 내가 대통령비서실장 재임 당시에 고교 후배인 나라종금 회장 김모 씨와 사장 안모 씨가 비서실장 공관으로 찾아와 나에게 ‘나라종금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3천만 원을 제공했다는 내용이었지만, 절대 사실이 아니다. 내가 비서실장에 취임한 지 50여 일이 지났을 때로 기억하는데, 나라종금 회장 김모 씨와 사장 안모 씨가 비서실장 공관으로 나를 찾아와 ‘나라종금이 퇴출위기에 처해 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담당부서인 경제수석비서관을 소개해주며 “민원 차원에서 이야기나 들어보라”고 지시한 사실이 전부였다. 그 이후 나나 경제수석비서관이나 나라종금 퇴출을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나 도움을 준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 두 사람이 경제수석비서관을 만난 1주일 후에 나라종금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퇴출 되었다. 그런데 나라종금 사장이 재판과정에서 “비서실장 공관을 방문했을 때 현금 3000만 원이 담긴 쇼핑백을 소파에 놓고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비서실장 공관은 방문객 모두가 경비 경찰의 검문을 통해 출입하는 곳이기 때문에 쇼핑백에 돈을 담아 들어올 수 없는 구조였고, 그 사람들이 경제수석을 면담한 1주일 후에 나라종금은 퇴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라종금 회장과 사장의 운전기사 등 2명은 법정증언에서 “쇼핑백을 들고 공관에 들어간 것을 본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고 “차 안에서 쇼핑백을 본 적이 없으며, 사장이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는 증언도 했다. 또 나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증인들이 자유롭게 법정출석 내지는 증언을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재판이 진행된 점도 문제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돈을 받은 증거도 없고 증언도 없이 나라종금 사장의 일방적인 진술에만 의존하여 유죄판결을 내린 형평성을 잃은 정치적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도 깊이 검토하고 있다.

■ 4.29 재보선에 출마할 예정인가? 내 고향 전주 완산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정치인이 정치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지만 전주시민들의 뜻이 제일 중요하고, 당의 결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 대표를 지낸 사람으로서 출마에 대하여 가볍게 처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주시민들께서 나의 출마에 공감하고 또한 당이 기회를 준다면 출마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현재 말할 수가 없다. 30여 년의 내 정치생활에서 얻은 경륜을 모두 바쳐 고향발전을 위해서도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설득하고 극복할 생각인가? 반발이 있다면 설득하고, 오해가 있다면 반드시 풀고, 또 극복할 일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나에 대한 당내의 반발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민주화운동을 해 오며 감옥에도 갖다 왔으며, 민추협 대변인 시절에는 고려대와 건국대 사태로 또다시 감옥에 간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서슬이 시퍼렇던 82년에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김대중 선생 석방과 광주문제 해결, 전두환 대통령의 민정당 총재직 사퇴, 언론자유화,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는 등 소신과 용기를 가지고 정치를 해 온 사람이다. 이는 현재 민주당의 정체성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내가 민주개혁세력의 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자부하고 있다. 또한 나는 4선의 의정생활과 국회 노동위원장, 당 총재 비서실장, 사무총장, 최고위원과 부총재, 그리고 집권당의 대표를 지낸 바 있고, DJP 연합을 통해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켰으며, 참여정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역사적인 국민경선제를 채택하여 대통합과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낸 바 있다. IMF 외환위기 때는 노사정위원장을 맡아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대 상임의장을 맡아 남북화해협력과 6.15남북공동선언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나는 이처럼 항상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개선하는 일에 주력해 왔다. 그것은 내가 이 시대와 민주당이 요구하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의 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개혁은 나이나 세대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의 내 삶의 이력과 함께 변화와 진보를 추구하는 정신이 바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 정계에 복귀하면 어떤 부분에 주력할 생각인가? 다시 시작하는 정치활동인 만큼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와 당을 위해 봉사할 각오를 가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당이 외형적 통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통해 화합과 단합을 이루는 일에 병풍 역할을 다하겠다. 당내에 현존하는 신·구 세력과 소장과 노장의 세대 차이, 또한 지난번 당의 통합과정에서 소외된 모든 민주세력을 모아 모두가 단합하여 정권 재창출의 길로 나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 오랫동안 통일미래연구원을 운영해 왔는데, 뚜렷한 계기라도 있는가? 나는 국민의 정부시절인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평양을 방문한 바 있다.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북측 인사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를 결성해 초대 상임의장을 맡아 남북화해협력과 6.15남북공동선언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통일은 절대 선이며 지상의 가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통일 염원은 물론이고 통일방법론에 대하여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학 교수들과 전문가, 그리고 뜻있는 동지들과 함께 여의도에 사단법인 ‘통일미래연구원’을 열었던 것이다. ■ 정부 여당에서는 지난 정권을 ‘잃어버린 좌파 정권 10년’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한 전 대표께서는 이 주장에 동의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물론 동의할 수 없다. 우선 그들에게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또 ‘지금 우리 사회에 좌파와 우파가 있는가’를 묻고 싶다. 국민의 정부 출범은 헌정사 최초로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새 역사의 출발이었다. 국민의 힘으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해 6·15공동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냉전체제의 벽을 허물어 한반도 평화번영의 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으며,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최소한의 복지체계를 마련하였다. 민주당과 민주정권은 지난 10년 간 집권하면서 과거 그 어느 정권도 하지 못한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고 실천해 왔다. 그러한 10년의 성과를 폄하하고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뼈를 깎는 노력과 이에 상응하는 성과를 폄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집권 10년 동안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는 역시 남북관계 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분단 반세기 만에 역사적으로 남북정상이 만나 6.15공동선언을 통해 전쟁방지와 긴장완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획기적인 장을 마련했다. 6.15공동선언의 의미는 다음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당시만 해도 북한은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의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과 함께 남한이 북침할 가능성에 대하여 위협을 느껴 왔고, 남한은 적화통일 즉 북한의 남침 위협을 우려했다. 6.15공동선언은 그러한 위협을 걷어내고 상호불가침에 합의한 것이다. 둘째, 통일은 자주평화원칙에 따라 점진적·단계적으로 하자는 합의를 했고, 김정일 위원장도 점진적으로 통일하자는 남측 주장에 동의했다. 셋째, 선언 4항을 보면 ‘교류협력을 통해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합의한 중요한 사항이었다. 넷째, 공동선언 이후 북이 드디어 개방을 확대하고 시장경제 개혁을 시작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금강산 개방과 개성공단 설치가 좋은 사례이다. 참여정부가 마련한 10.4공동선언도, 남과 북이 6.15공동선언을 적극 구현해 나가면서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하는 등, 남북이 정상들의 만남을 통해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미래지향적인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 작금에 경색돼 있는 남북관계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이명박 정부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에 대한 확고한 이행의지가 없으며,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정책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야 한다고 보는가?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곧 경제이며 미래이다. 남북관계의 위기는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경제 역시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에 대한 확고한 이행의지를 밝히고, 북핵문제를 남북관계와 연계시키지 말고 병행해 나간다는 원칙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남북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북의 변화를 촉진하고, 무엇보다도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해 접촉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는가? 북한은 최근에 서해 해상경계선 합의 폐기를 선언했고, 미사일 발사 준비설까지 나오는 등 도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오바마 대통령도 강하고도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첫 대북조치로 ‘제재’를 선택했고, 미 국무부는 미사일 기술확산 혐의로 북한과 중국·이란의 9개 기업에 교역금지를 발표했다. 미 의회 의원들도 오바마 정부에 북한에 대한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처를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볼 때, 오바마 미 행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당분간은 강경한 기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에 대하여 당근보다는 채찍을 들 것으로 생각된다. ■ 한나라당에 연일 악재가 터져 나오는데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기는 커녕 답보상태 아니면 오히려 내려가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나라당은 집권초기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부자내각구성, 반민주악법 제정 시도,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등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국민의 희망과 대안이 되어야 할 민주당 역시 국민의 준엄한 질책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당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평화수호와 민족통일,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추구하는 원칙을 가진 정당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또한 야당은 강력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은 강력한 야당을 원하고 있고, 그런 국민의 요구에 따라 민주당은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 강한 야당만이 독선에 빠진 이명박 정권을 견제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줄 때, 국민은 우리 민주당을 대안세력으로 믿고 희망을 가지며 우리를 지지해줄 것으로 확신한다. 끝으로 한광옥 전 대표는 국민과 독자들에게 ‘호시우보’(虎視牛步), 즉 호랑이 같은 예리한 관찰력과 소처럼 신중한 행보로 살아가자는 뜻을 전하고 싶다고 하였다. 요즘 유례 없는 금융위기로 경제가 혼돈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울 수록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호시우보하자는 뜻에서 이 말을 전하겠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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