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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 5선 의원 박찬종 변호사

“거수기 되느니 의원직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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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0호 심원섭⁄ 2009.03.24 12:39:57

한국의 정당은 당비를 꾸준히 내는 진성당원이 사실상 없다(민노당 제외). 당의 간판을 부둥켜안고 있는 소수 기득권 지배자들의 붕당·패거리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당이 국회의원 후보를 밀실·야합·돈공천으로 내서 국회의원을 만들기 때문에 의원들은 헌법 46조(국가이익을 우선하며 야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를 지키지 못 한다. 아니, 지키지 않는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국회는 정당의 패싸움터가 될 수밖에 없고, 국회의원은 당리당략에 따른 정당의 파견관이 되어 당론이라는 이름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로지 다음 선거의 당선만을 생각하는 ‘국회회원’(국회會員)으로 전락했다. 국회라는 고급 사교클럽의 멤버일 따름이다. 매일 싸움만 일삼는 4년 간 이들 ‘국회회원’에게 2조3000억 원의 국민혈세가 사용된다. 이들은 세금 먹는 하마다. 아니, 하이에나다. 이들 ‘국회회원’들이 청년실업·비정규직 문제로 밤을 지새우며 토론한 적이 있는가? 오로지 립서비스만 하지 않았는가. 그 정당과 ‘국회회원’들의 지방자치단제장·지방의회의원 후보 공천은 조선조의 안동 김 씨 세도정치 때 모든 관직을 팔아먹던 횡포에 버금가는 매관매직 아니던가.” ‘독불장군’이라는 별칭을 들어가면서도 꾸준히 정치개혁을 외치고 있는 전직 5선 박찬종 전 의원이 과의 인터뷰에서 발한 일성(一聲)이다. 이어 박 전 의원은 “헌법 46조에 명시된 국회의원 자율권 회복을 위해서 순절(殉節)하는 의원이 단 한 명이라도 나와야 한다”며 “작금의 국회의원들은 정당 지도부의 명령에 따라 본회의장 안팎에서 일사분란하게 집합·산개·배치·몸싸움의 전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 누구는 이런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두고 ‘똘마니’들이라고 지칭했다”고 비꼬았다. 다음은 3월 18일 오전 강남 압구정에 있는 박찬종 전 의원 사무실에서 과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작금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른바 ‘미디어법’파동은 폭력·난장판의 전쟁 모드가 연출된 끝에 임시 봉합되었지만, 여야의 어정쩡한 담합은 100일 뒤에 또 어떤 모습의 입법전쟁으로 재연될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신문은 172석의 여당인 한나라당의 전쟁성과에 대해서 ‘박희태 대표의 관록, 박근혜 의원의 어시스트,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도전략’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치켜세웠다. 소수 기득권 지도자들의 힘에 의해 사태가 전개, 종료되었음을 예시한 것이다. 그러나 통탄스럽게도,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한나라당의 울타리 안에 갇힌 전사, 소위 ‘똘마니’로 전락한 모습을 너무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다. 이제 이 여의도식 정치를 폭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미디어법’ 입법전쟁에서 그 교훈을 얻어, 172명의 여당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가운데서 단 한 명이라도 헌법 46조에 명시된 국회의원 자율권 회복을 위해 여의도 폭파에 순절할 사람이 나와야 한다. 목숨을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그 알량한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앞으로 나서라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은 정치가 어떻게 개혁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87년 6.29 선언 이후 절차적·형식적 민주화는 한 단계 이뤄졌으나, 민주화의 내실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그 동안 네 번의 대통령 선거, 다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다섯 번의 각급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진성당원이 사실상 전무한 소수 기득권자들이 지배하는 부패정당, 반국민적 의원후보 공천, 의원의 자율권이 훼손 능멸된 난장판 국회로 민주화는 뒷걸음질쳤다. 이것은 국회, 국회의원, 그리고 정당이 아니다. 첫째, 헌법 46조의 국익우선 양심직무의 국회의원 자율권은 누구도 침해해서는 아니되고, 국회의원이라면 ‘자율권을 짓밟는 자’들에게 당당히 맞서야 한다. 당의 기득권 실세들에게 줄을 서서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더라도, 이 엄중한 시기에 스스로 자율권 수호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자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썩고 병든 국회의원 공천 시스템을 혁파해야 한다. 당연히 상향식 공천으로 전환하여 밀실·야합·부패공천을 깨부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100일 동안 결론이 유보된 이른바 ‘미디어법’에 대해서 의원 개개인의 분명한 소신을 미리 밝혀야 한다. 만일 100일 뒤에도 당 지도부의 명령에 순종하는 ‘똘마니’ 짓을 하게 된다면, 이번 파동을 능가하는 심각한 반국민적 입법전쟁이 재연될 것이다. 박 전 의원도 지금 주장하는 그런 풍토 속에서 국회의원을 다섯 번이나하지 않았나? 내가 5선 국회의원 출신이지만, 어디 가도 부끄러워서 5선이라고 말을 못한다. 9대·10대 두 번은 낙하산 공천이었기에 나의 경력으로 치지 않고, 12·13·14대 때는 야당 또는 무소속으로 순수하게 내가 발로 뛰어서 딴 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은 나의 경력으로 치지 않는다. 세 번은 야당이나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당민주화와 국회의원 공천제도의 정상화를 위해서 싸워 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희생된 사람이다. 나는 소신발언을 한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국회의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기에 지금도 반성하고 자책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국민의 사랑과 은총과 은혜로움도 아울러 경험한 사람이다. 그것은 나의 선한 마음을 선한 국민이 받아준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사랑은 축복이며 행운이다. 다만 국민의 그런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나의 빈곤함이 한없이 죄스럽다. 나는 한평생을 국민의 명예와 나의 자존을 위해 싸웠다고 자부한다. 비록 국민이 나의 육성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것이 해야 할 말이었고 보여야 할 몸짓이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지금 겉으로 남아 있는 성과는 없어도, 그 의미는 안으로 스며들어 역사로 기록되어 있음을 나는 기뻐한다. 지금 이 나라는 국란에 처해 있다. 부도덕과 탈법과 위선의 춤판 위에서 백성을 현혹시키는 짓거리를 우리의 자식들에게 물려 줄 수는 없다. 의병은 국란이 있을 때 일어나는 구국운동이다. 그러므로 지금이 의병을 불러 모아야 할 절대절명의 시기이다. 지금 이 나라의 국민은 오늘의 세태를 국란의 절박한 상황으로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기문란의 주범이 다름 아닌 우리가 선택한 오늘의 정치판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을 볼모로 앞세워 정리당략에 골몰하고 있지만, 그들을 선택한 책임이 바로 국민에게 있기에 그들의 속내를 투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깨어 있는 국민의 눈에는 지금의 이 모든 것이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는 정상적인 나라 꼴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작금의 국회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국민의 결단만이 국회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은 헌법상 최고의 기관으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제 그 국민이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나라는 영국·미국·유럽 여러 나라들처럼 천 년 혹은 수백 년에 걸친 국민주권쟁취를 위한 전제왕정과의 투쟁사가 없다. 그러므로 국민주권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소중한 국민주권을 거수기에 불과한 ‘똘마니’들에게 뺏기지 말고, 두 눈 부릅뜨고 바로 행사해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생전 마지막 휘호 “國家興亡 匹夫有責”(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일에 보통의 국민도 책임이 있다)을 상기하면서, 국민이 주인이 되고 감시자가 돼 현재의 여의도식 정치를 폭파하고 새로운 정치 틀을 짜야 한다. 정치가 이 모양으로 전락한 근본적인 원인은 뭐라고 보는가? 사태의 근본원인은 국회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명시된 본연의 의무를 망각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익을 우선하고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임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국익우선은 팽개친 채 양심에 따르지 않고 당명에 따라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가? 그것은 바로 다음 총선의 ‘공천’ 때문이다. 국회의원 후보 공천권과 당론 결정권을 정당의 소수실세들이 틀어쥐고 있어, 거기에 줄을 서고 돈도 갖다 줘야 하는 등 비상한 방법을 동원해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공천을 받아야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통일을 강요할 때 이견을 제시하거나 저항할 수 없다. 그래서 여당은 FTA 비준안 동의를 무조건 찬성, 야당은 절대반대의 완전한 편싸움이 되고 마는 것이다. 2008년 11월에 미국의 하원에서 7700억 달러의 1차 구제금융안을 여당인 공화당 의원의 다수가 반대하고 야당인 민주당 의원의 다수가 찬성한 가운데 통과된 것은 국회의원의 자율권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러한 자율권 행사를 원초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 공천권과 당론을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틀어쥐고 있는 오늘날의 정당구도 아래서는 ‘국회의 전쟁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치가 언제부터 이렇게 전락했다고 보는가? 국회와 국회의원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불행한 우리의 헌정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48년 8.15 정부수립 이후 60년 동안에 독재·군사정권의 존립기간이 절반이 넘는다. 그 당시 여당은 최고권력자의 친위, 관변조직으로서 국회의원 후보는 당연히 낙하산 낙점으로 결정되었다. 경쟁이란 애당초에 없었던 것이다. 야당은 정보기관의 감시와 협박을 견뎌낼 수 있는 지극히 소수의 지사(志士)들이 가냘프게 명맥을 유지하는 클럽 수준의 조직이었다. 그러므로 국회는 언제나 집권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했고, 최고권력자가 명령하는 법안들을 여당의원들은 거수기 돌격대원이 되어 야당의원들을 제압하고 일방적으로 날치기 통과를 일삼았다. 야당의원들은 어쩔 수 없이 단상점거·농성 등으로 ‘저항’하는 것이 침묵하는 다수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신성한 임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87년 6.29 이후 새로운 헌법이 시행되어 21년의 세월이 흘렀다. 군사독재의 최고권력은 사라졌는데, 국회가 여야의 새로운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헌법은 국회의 행정부 견제와 사법부 독립보장으로 삼권분립을 제도화하고 있는데, 국회의 행정부 견제는 국회의원의 자율권 행사가 보장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지금 이 자율권이 무너졌다. 이른바 당론은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인 이상 권고사항에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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