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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증·장기근속도 국가유공자?

현행제도 ‘엉터리 유공자’ 양산…보훈처, 국가유공자예우법 등 보훈제 전면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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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2호 박성훈⁄ 2009.04.07 11:11:00

나라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사람을 일컬어 국가유공자라고 부른다. 순국선열·애국지사·전몰군경·상이군인·순직자 등 나라와 사회 발전을 위해 특별한 공로를 지닌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럼 다음에 묘사되는 사람들은 위에서 정의한 국가유공자인가? A 씨는 육군 보병부대 행정병으로 2년 간의 군 복무를 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간부와 선임병들로부터 과중한 업무압박 스트레스를 받아 일병 때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전역할 때에는 원형탈모로 흉한 모습이 됐다. 그는 ‘탈모증 환자’로 군 복무중 상해를 인정받아 국가유공자가 됐다. B 씨는 후임병들에게 ‘고약한 고참’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의 소대에서는 전역하기 전날 소대원들이 모포에 둘둘 말아 마지막 화풀이를 하는 이른바 ‘모포말이(전역축하 폭행)’가 있었다. B 씨는 전역하기 전날 후임병들에게 맞아 부상을 당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 이처럼 전투나 공무수행과 연관성이 없는 일로 국가유공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군인과 경찰이 체육활동을 하다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 아닌데도, 장기근속을 인정받아 보국훈장을 받고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는 경우는 이미 의례처럼 있어 왔다. 공무수행과 전혀 관련이 없는 단순사고는 물론이거니와 크고 작은 질환으로도 유공자로 분류돼 보훈대상자가 되는 일이 있다. 사무실 집기를 옮기다 허리를 다쳐 척추질환이 생긴 공무원이나,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다가 넘어져 골절상을 입은 일반직 공무원 등도 경우에 따라 국가유공자가 되는 일이 왕왕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보훈처 직원들도 등산을 하다 허리를 다치거나 사무실 집기류를 옮기다 부상하고도 공상공무원이라며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던 사례가 있었다. 전현직 보훈처 공무원들이 ‘가짜 국가유공자’였음이 들통나 무더기 지위박탈과 지원대상 격하 등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반적인 상식과 어긋나는 국가유공자 지정 사례가 많아 보훈행정이 부실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신체적 희생도 없이 국가유공자가 돼 국민이 내는 혈세를 축내는 꼴이니, 누가 보더라도 잘못됐다고 할 수 있겠다. ■전투·근무 상해자, 전체 국가유공자의 절반 최근 이러한 보훈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961년 현행 제도가 시행된 이후 48년 동안 이어져 온 보훈 시스템을 국가보훈처가 전면 개편하겠다고 발표해 관심이 몰리고 있다. 3월 17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보훈대상 및 보상체계 개편방안’ 공청회에서, 국가보훈처는 현행 보훈제도의 운용으로 단순 사고와 질병으로 국가유공자 호칭이 부여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제도 자체가 신뢰를 잃고 있다는 자성과 비판이 제기됐다. 보훈처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06부터 3년 간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3만8498명 가운데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전상자는 5179명(전체의 13.5%), 근무·훈련 중 부상당한 사람은 1만5506명(40.3%)으로 전체의 53.8%였다. 그 외에는 질병이 1만914명(28.3%), 체육활동에 따른 부상 4316명(11.2%), 출퇴근 중 부상 638명(1.7%) 등으로 정규 근무나 훈련 이외 성질의 것이었다.

국가보훈처 오진영 보상정책과 과장 “국민들이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유공자 사례가 나오는 건 사법부나 행정심판위원회 등 기관마다 국가유공자 인정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순국선열·애국지사 등 모두 29개 유형의 보훈대상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직무상 재해를 당한 일반직 공무원에 대해서도 국가유공자로 지정, 보상과 예우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공무원연금법에 의한 재해보상 급여 외에 보훈대상(순직공무원 또는 공상공무원)으로서 국가유공자예우법에 의한 특별 지원도 같이 받는다. 오 과장은 “재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실질적으로 어떠한 공헌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 없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국훈장에만 주어지는 유공자 특혜 군인이나 군무원이 33년 이상 장기근속하고 전역하는 경우 받을 수 있는 보국훈장 수훈자도 그 중 하나이다. 상훈법상 33년 이상 장기근속 군·군무원에게 주는 보국훈장 서훈자는 유공자 인정을 해주면서도, 상훈법상 근정훈장을 받는 다른 공무원들은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형평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보국훈장 수여 현황은 2005년에 1312명, 2006년 1059명, 2007년 1817명, 2008년 2229명이었다. 지난해까지 최근 6년 간 총 8602명이 보국훈장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됐다. 이 훈장을 받으면 자동으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된다. 보국훈장 서훈자를 자동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것과 관련,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보훈은 근본적으로 신체 희생 등 ‘특별한 희생’에 근거한데 대한 국민적 보답의 성격이다. 보훈보상은 국가가 보훈대상에게 제공하는 각종 정신적·물질적 지원과 더불어 각종 보상금 등 금전급여·교육·취업·의료·대부 등 보상금 외의 각종 지원제도를 망라한 개념이다. 그런데 신체적 희생 없이 장기간 근속했다는 사실로 보국훈장을 받은 사람을 국가유공자로 자동 인정하는 것은 보훈의 개념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다. 또, 보국훈장의 대다수가 군인과 군무원에 대한 근정훈장의 성격으로 수여되는 것인데, 실제 상훈법상의 근정훈장을 받는 다른 분야 공무원은 서훈 사실만으로 국가유공자가 되지 않다. 또, 최근 경제불황과 더불어 군대에 장기근속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곤란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조기 전역자보다 높은 계급에서 전역하여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데 국가유공자로까지 인정되는 것은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도 있다. 보훈처는 보국훈장 수훈자에 대해 순국선열자처럼 일정한 공적심사를 거쳐 ‘공헌 있는 희생’에 대해서만 유공자 자격을 인정하는 개선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오 과장은 “보국훈장을 받은 사람을 유공자로 인정한 것에 대해 국민들은 신체적 희생 없이 장기간 근속한 것만으로는 보훈의 개념과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국훈장 수상자도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공적심사를 거쳐 유공자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훈처, ‘지원대상자 신설’ 등 개편안 마련 국가보훈처는 3월 16일 국가유공자와는 별도로 ‘지원대상자’ 형식의 항목을 신설하고 보상기준을 새롭게 정하는 내용의 국가보훈제도 개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훈처가 마련한 개편안에 따르면, 국가유공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간 국가적 관심이 미치지 못했던 사람 중 공무상 단순 사고나 질병을 얻은 사람을 지원대상자로 분류, 자립과 자활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별도의 보상체계가 마련된다. 국가유공자는 공무를 수행한 군인과 경찰·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지정하게 된다.

1~7급으로 분류하던 장애기준도 국제적 기준에 맞도록 ‘백분위 장애평가제도’로 바꾸기로 했다. 상이자(傷痍者)는 장애율(10~100%)에 비례해 차등을 두고 그 장애정도에 따라 보훈급여금과 교육·취업·의료 등의 지원제도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경상이자의 조기 자립을 지원하도록 일시금 제도를 도입하고, 중상이자와 유족의 지원 수준을 높이도록 중상이자 특별부가금·부양가족수당 등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는 20대 청년에 대해서는 사회복귀를 돕자는 취지에서 전문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훈처는 향후 개편안을 확정하고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새로 개편되는 보훈제도는 기존에 등록된 국가유공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신규로 등록되는 사람부터 적용하게 된다. ■‘엉터리 유공자’ 방지장치 마련해야 국가유공자 선정과 관련한 홍역을 치렀음에도 여전히 보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은 안타깝다. 현행 보훈제도에서 간과한 점은, 지금까지 보훈보상 논의가 물질적 보상 여부만 따졌을 뿐 보훈대상에 대한 존경을 국민으로부터 불러일으키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와 국민들도 보훈대상에 대한 존경의 징표나 척도를 물질적 지원 수준 정도로만 인식해 온데 있다. 보훈대상자들은 “보상금이 적고 연금은 주지 않아 자존감을 느낄 수 없다”고 불평한다는 지적이다. 보훈처가 이번 기회를 맞아 보훈제도를 개편할 움직임을 보여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차제에 시스템을 재정비하면서 부당하게 혜택과 지원을 받는 가짜 유공자들이 생겨날 여지는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엉터리 유공자가 양산돼 수당이나 의료지원·교육·취업상 혜택 등으로 국고가 새는 것도 문제지만, 정당한 예우를 받아야 할 이들이 보훈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대우가 소홀해지는 일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재향군인회 등이 현역 군인에 대한 국가의 무한책임을 주장하며 보훈처의 개편안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웃을 가짜 혹은 함량미달 유공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보훈제도의 전면 개편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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