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최초로 교명에 ‘자동차’가 들어간 고등학교가 생긴다. 2010년 3월 1일부터 자동차 분야 특성화 학교로 지정된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가 ‘신진자동차고등학교’로 이름을 변경한 것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진자동차고는 자동차 분야의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4월 초에 열린 서울시 기능경기대회에서는 자동차 페인팅에서 금메달과 은매달, 우수상을 수상하고, 자동차 정비에서는 금메달과 동메달, 자동차 차체 수리에서는 우수상을 획득할 정도로 자동차 부문은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기계제도/CAD(은메달·동메달)와 공업전자기기 부문(금메달·동메달) 등 유관 분야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과시했다. 신진과학기술고는 자동차 특성화 학교로 변모하면서 학과명과 커리큘럼에도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자동차과와 컴퓨터응용기계과·건설정보과·전자기계과·인터넷과 등 상이한 다섯 전공이 자동차정보과·자동차디자인과·건설교통과·자동차제어과·자동차웹포털과 등 자동차를 중심으로 재구성됐다. ■“전문고 특성화 바람직” 이같이 공고·농고·상고로 대변되는 기존 전문계고가 특성화와 전문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특성화에 성공한 고교는 높은 취업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신진과학기술고를 포함해 5개 분야의 특성화 고등학교로 지정된 전문계 고등학교의 이름을 변경했다. 디지털 시스템 분야에서는 은곡공업고등학교가 은곡아이티고등학교로, 의료기기분야는 은평웹미디어고등학교가 은평메디텍고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또 건강분야 특성화 학교로 지정된 영락여자상업고등학교는 영락유헬스고등학교로,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삼일공업고등학교는 삼일미디어고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됐다. 전문계고 가운데 230여 개교는 특성화 고교로 지정돼 있다. 선린인터넷고·한국애니메이션고·한국조리과학고 등 특성화를 시도한 고등학교는 매년 해외 명문대에 10여 명 이상을 진학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들 고교는 대학처럼 학과가 있는데, 한국애니메이션에는 애니메이션과와 만화창작과를 중심으로 일본 유학생이 많다. 대학의 전문화 경향에 대해 서울공업고등학교 고광정 실과부장은 “전문화는 바람직하고 졸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반도체와 조선 항공 관련, 자동차 관련 분야가 업체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으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학교가 특성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면서 다양화된 교육,적재적소에 맞는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 고 말했다. ■삼성·현대 등 대기업 취업사례 최근 공고 졸업생들이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전국기능경진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실력을 인정받아 삼성·현대 등 국내 유수기업의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는 각 지자체와 학교 등의 교육당국이 대기업과 공업계 고교 활성화를 위한 산·학·관 협력 협약을 맺는 등의 노력이 반영돼 있다. 실제로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는 명문대 졸업생도 들어가기 힘든 삼성그룹에 2년 동안 15명이나 정규직 직원으로 취업시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주여상에서는 올해 삼성생명에 2명, 삼성전자는 LCD 부문 5명, 반도체 부문에 2명이 9명 등 고졸 사원 공채에 합격했다. 지난해에는 삼성생명 1명, 삼성전자 5명 등 6명이 삼성그룹에 입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성과는 자격증을 취득한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제주 이외의 지역에 산업체 현장체험학습과 취업 T/F팀을 운영한 결과이다. 다른 학교들도 제주여상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제주여상 학생들 사이에는 대학진학보다 취업에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가 새로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충청남도의 천안공고에서도 3명이 삼성전자에 취업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삼성전자 천안공장에 출근하게 되고,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제대 후에도 취업 걱정이 없다. 논산 연무대기계공고는 자매결연을 맺은 삼성전기가 15명의 학생을 채용키로 결정했다고 한다. 공주공고도 삼성SDI로부터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놓았고, 홍성공고도 천안에 위치한 미래산업으로부터 우선채용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에서도 자동차 생산업체인 현대와 기아·르노삼성·GM대우와 산학협력을 체결해 졸업생 취업에 특혜를 주고 있다. 신진과학기술고 이진구 교감은 “이 외에도 23개 업체와 산학협동을 하고 있다”며 “우리 학교에서 고용한 학생들이 회사 내에서도 좋은 업무량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계고 취업하려다 진학 전환 사례 많아 이같이 전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산업현장에서 기능인력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보다 국가발전에 도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산업현장에 필요한 기능을 갖추었으면서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진학을 위해 수능준비를 하고 있다. 전문계 고등학교에선 진학반과 취업반을 나누어 진로에 따라 교육을 차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진학반이 취업반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처음 전문계고에 진학할 때엔 취업을 목표로 하다 진로를 대학으로 바꾸어 설정하는 것이다. 안산공고를 졸업한 오진경 양은 취업을 위해선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 진학을 결정했다고 한다. 전문계 고등학교만 졸업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진학에 필요한 국영수를 위주로 학습하는 인문고 학생보다 힘든 상황에서 대입 준비를 한다. 오 양은 “인문계고 학생들보다 몇 배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을 진학해도 문제가 생긴다. 대학교 1학년 때 배우는 필수과목을 전문계고 출신들은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초과목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전문계고 출신들이 인문계고 출신에게 경쟁에서 밀려 학점을 제대로 받기는 태생적으로 힘들다. 기업의 전문계고 출신 대졸자 기피경향도 한몫한다. 오 양은 “전문계 고등학교에도 우수한 인재가 많지만 ‘어디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학벌의 고정관념이 취업을 꿈꾸는 수많은 전문계 고등학생들을 대학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문 넓어 취업자보다 진학자 많아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2월 졸업한 전남지역 64개교 전문계 고교 졸업생 6367명 가운데 취업자는 1319명(20.7%)에 그쳤다. 이 중에는 군 입대자가 778명(12.2%)이고, 나머지는 대학 진학이나 재수·가사일을 택했다. 광주지역도 전문계고 졸업생 10명 중 7명이 실업자가 됐다. 올해 13개교에서 4559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광주지역 전문계고의 취업자는 1441명으로 31.6%의 취업률을 보였다. 부산지역에서는 전문계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높아지는 반면, 취업률은 10%대까지 떨어졌다. 부산시교육청의 조사에 따르면, 43개 실업고교 졸업생 1만3850명 중 2년제 대학 이상의 진학률은 73.7%(1만215명), 취업률은 19.2%(2656명)로 집계됐다고 한다. 전문계고교 졸업생의 진학률은 1998년 24.4%에서 2001년 42%, 2003년 63.6%, 2005년 71,7%, 2006년 73.7%으로 꾸준히 상승세를 보여 왔다. 반면, 취업률은 1998년 59.4%, 1999년 63.5%, 2001년 60.3%, 2002년 52.8%, 2003년 36.4%, 2005년 23.9%로 지속적으로 떨어져 왔다. 취업률과 진학률 역전현상에 대해 서울공고 고광정 실과부장은 “남학생의 경우 군필의 부담이 있어 많이 모집하지 않고, 저희가 진학을 위주로 선호한다”며 “그렇게 취업률이 떨어진 원인은 대학의 문이 넓다는 점인데, 2년제도 많다 보니 학생이 공부를 많이 안 해도 갈 곳이 있다. 제가 볼 때엔 대학의 문이 넓어서 진학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스터고 비판 목소리도 정부의 고교다양화 사업의 일환인 마이스터고 육성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오히려 많다. 2010년 3월에는 조선·자동차·철강·에너지·의료기기 등의 특성화를 시도한 20여 개의 마이스터고가 문을 연다.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학교에는 졸업 후 4년 동안 군 입대가 면제되는 등 혜택이 주어진다. 이 정책에 대해 서울공고 고광정 부장은 “직업교육은 취업 완성교육이라고 봐야 한다. 중간단계에서 직업교육을 받는 사람에게 마이스터(기능장)라는 말을 처음부터 붙여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마이스터는 현장실무가 완성된 상황이란 의미가 있다. 준비과정에서 마이스터란 이름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진자동차고등학교 김중기 교장도 “마이스터란 말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예산이 편중지원될 수밖에 없다. 전체 공업고등학교가 함께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