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hairspray). 방송인 박경림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뮤지컬 무대를 처음 밟는 또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개그맨 문천식이다. 그는 박경림이 맡은 주인공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역을 맡는다. 에드나는 2007년 이 뮤지컬의 한국 초연 때 개그맨 정준하와 배우 김명국이 맡았던 캐릭터다. <헤어스프레이>는 1960년대 초 미국을 배경으로 그 시대의 노사갈등과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트레이시’라는 뚱보 여고생이 꿈을 이루는 과정과 함께 보여주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코미디 뮤지컬이다. <헤어스프레이>는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다. 1988년 존 워터스 감독이 만든 영화가 원작이다. 뮤지컬은 2002년 5월 시애틀에서 첫선을 보였다. 한국에는 2007년 아담 솅크만 감독의 영화 <헤어스프레이>로 소개됐다. ‘에드나’ 역할을 맡은 인상파 배우 존 트라볼타의 여장이 화제가 됐던 영화다. 에드나는 콤플렉스 덩어리다. 얼굴이 못생기고 딸보다 더 뚱뚱해 자신에게 불만이 많은 캐릭터다. 그런 그녀가 트레이시 덕분에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집 밖으로 나오면서 감동을 준다. <헤어스프레이>에서 없어선 안 될 큰 존재인 이유다. 또 뮤지컬을 처음 경험하는 문천식에게 에드나가 버거워 보이는 이유다. “물론 어려워요. 뮤지컬 출연은 처음이라 더 떨리고 조심스럽죠. 그렇지만 처음 해보는 새로움 때문에 용기를 냈어요. 만만해 보였으면 안 했을 거예요. 21세기를 사랑하는 광대로서 이 뮤지컬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뮤지컬에 임하는 문천식의 각오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만만해 보였으면 안 했을 거”라는 그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그토록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 출연도 11개에서 8개로 줄였다.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 방송 출연도 당분간 포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해도 <헤어스프레이>는 포기할 수 없었다며 웃는 그에게 이번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배역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지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뮤지컬 제작사에서 먼저 섭외가 왔어요. 제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공연계에도 났나 봐요(웃음). <도전 1000곡>에서 제가 1등을 한 것도 알더라구요. 사실 지난 4~5년 동안 뮤지컬 출연 섭외는 꾸준히 있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소극장 공연이라 거절했죠. 그 말은 소극장 공연을 꺼리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건 절대 아니에요. 왜 거절했냐면 솔직히 돈 때문이었어요. 생계유지·자아실현·사회봉사는 직업을 선택할 때 따져야 할 3대 조건인데, 제가 출연했던 연극 <아트>는 생계유지가 충족되지 않았어요. 소극장 공연이어서 관객과의 소통은 정말 좋았지만요. 공연할 때마다 ‘뽕’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돈이 안 됐어요. 그 뒤로 공연은 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웃음). 그런데 <헤어스프레이>는 대극장 공연이고 평소 좋아하는 뮤지컬이었어요. 절친한 (정)준하 형이 했던 역할인데다, 코미디언이 할 만한 역할이었죠. 출연 섭외가 들어오자마자 덜컥 물었습니다. 캐스팅 소식에 특히 부러워한 연예인은 누구였나요? 모든 코미디언이 부러워했을 거예요. 에드나 역은 대대로 코미디언이 해왔던 역할이고, 하고 싶어도 키가 작거나 말랐거나 노래를 못 하면 할 수 없으니까요. 배역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다면…. 제작사에서 너무 말랐다고 해서 살을 찌웠어요. 개그맨으로 활동할 때는 85kg이었는데, 드라마를 할 땐 저만 뚱보처럼 느껴져서 75kg까지 뺐었거든요. 이때의 모습을 제작사에서 보고 에드나 역을 하기엔 제가 너무 말랐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억지로 먹었고, 지금은 82kg이 되었죠. 공연을 시작할 때는 90kg까지 찌울 생각이에요. 체중 조절이 힘들지 않았나요? 곱창·삼겹살·라면에 밥을 매일 먹었어요. 설경구 씨가 그렇게 해서 살을 찌웠다고 하더군요. 평소에 식탐이 있어 먹는 것은 좋아해요. 하지만 음식은 먹고 싶을 때 먹어야 맛있잖아요. 억지로 먹으려 하니 죽을 것 같았어요. 갑자기 3주 만에 살이 쪄서 몸에도 무리가 왔구요. 뭐든 일로 생각하고 하면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에드나와 자신이 닮은 점은…. 에드나가 집 밖으로 안 나가는 이유는 뚱뚱하고 대외적으로 능력도 없고…등등의 콤플렉스 때문이에요. 그런 에드나가 당찬 딸 트레이시 때문에 덩달아 변하게 되죠. 저 역시 코미디언으로서 얼굴이 크고 뚱뚱하고 덜 배웠다는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리고 이 콤플렉스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에드나와 닮았고요. 그래서 배역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열등감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사람에겐 적당한 열등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 잘 나가는 동년배라는 의미)였다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거예요.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한 선배 정준하의 대를 이을 생각은 있나요? 후배니까 대를 잇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준하 형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 아이디어 회의에도 더 많이 참여했고 더 열심히 했지만, <노브레인 서바이벌>(MBC)에서 제가 형한테 밀린 이유는 준하 형이 더 바보처럼 생겨서거든요. 그렇지만 에드나는 제가 더 잘했단 소리를 듣고 싶어요. 준하 형보다 덜 바보처럼 생긴 단점을 연기력으로 커버하고야 말겠습니다(웃음).
무대 공포증은 없나요?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광대는 두려움과 설렘, 떨림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제겐 천직이죠. 박경림 씨와 모녀 연기 호흡은 잘 되나요? 아주 좋아요. 방송을 10년 넘게 해왔지만, 이상하게도 경림 씨와 마주친 일은 한 번도 없어요. 한 번쯤은 마주칠 법한데 말이죠. 그래서인지 경림 씨와 연기하는 게 조금 두려웠어요. 그러나 경림 씨의 열의에 반했고,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경림 씨의 노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볼까요. 엉망일 줄 알았는데, 너무 잘해요. 첫 연습 때 경림 씨가 노래를 불렀는데 박수를 받았어요. 저도 얼떨결에 박수를 쳤죠. 그리고 집에 와서 “내가 왜 박수를 쳤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이런 이유 같아요. “박경림이 노래를?”이라는 생각을 저뿐 아니라 모두가 갖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경림 씨가 이런 불신을 통쾌하게 깬 거죠. 이에 대한 고마움이나 안도의 박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헤어스프레이>만의 매력은 무어라 생각하나요.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신나는 노래, 포복절도의 웃음, 멋지고 화려한 안무 모두가 <헤어스프레이> 안에 있거든요. 공연 홍보 때문에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한 것이죠. 음악과 안무·연출을 담당한 분들이 모두 최고거든요. 만일 제가 못해서 욕을 먹는다면 당연한 거예요. 이렇게 뛰어난 분들이 만든 무대에 서면서 못한다면 욕먹어도 싸죠. 이런 부담감이 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듭니다.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에 또 섭외된다면 응할 생각인가요? 꼭 대극장 뮤지컬만 고집하진 않습니다. 소극장 뮤지컬이라도 작품만 대박이면 할 수 있어요. 돈이 안 되더라도 좋은 작품에는 연출가와 작가 같은 공연계 전문가들이 보러 오거든요. 그렇게 되면 돈이 주지 못하는 것을 얻을 수 있잖아요. 캐스팅 기회나 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으니까요. <헤어스프레이> 말고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코미디언 출신 뮤지컬 배우로는 정성화 선배가 최고인데요, 그래서 그 형이 한 건 다 하고 싶어요. 특히 <맨 오브 라만차>는 꼭 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개그맨 김미려와 듀엣으로 노래한 디지털 싱글 <사랑 2인분>을 내면서 가수로도 데뷔했죠? 개그맨·탤런트·뮤지컬 배우에다 가수까지, 욕심이 지나치지 않나요? 대한민국만 매체에 따라 유독 직업을 구분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개그맨·가수·탤런트 같은 소위 ‘딴따라’가 고급화됐지만, 저는 딴따라가 하나의 광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넓게 쓰고 싶어요. 광대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다 섭렵하고 말 거랍니다. 9월에 <개그야>가 폐지되면서 MBC에는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MBC 공채 개그맨으로서 안타깝겠어요. 우리의 근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정말 속상합니다. MBC 공채 직속 후배들이 활동할 무대가 없어진 거니까요. 현재 MBC에서 하는 <하땅사>는 용병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출연하는 MBC 공채 개그맨이 겨우 6명입니다. 매년 공채로 10명이나 뽑는데 말이죠. MBC 개그맨은 통틀어 170명 정도 되고요. 속상하지만 적자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채라도 안 웃기는 개그맨이 TV에 나올 순 없는 일이거든요. 웃기는 사람이 살아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봐요. 끝으로, 예비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시죠. 신종플루 때문에 공연계가 비상입니다. 그렇지만 <헤어스프레이>처럼 멋진 공연을 놓친다면 큰 손해라고 생각해요. 연인끼리, 친구끼리 손잡고 와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