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호 최영태⁄ 2009.11.17 10:56:06
11월 10일 벌어진 이른바 제3차 ‘서해교전’에서 북한 군함과 함포 사격, 총격을 주고받은 해군 병사들은 당일
이날 오후에야 겨우 외부 통화를 할 수 있었던 한 장병은 죽음의 현장을 ‘스쳐’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경황이 없어 사랑하는 부인에게도 아직 전화를 걸지 않은 상태였다. 외부인이 “보도가 나와서 난리가 나고 많이들 걱정하고 있다”고 알려준 뒤에야 이 장병은 집에 전화를 걸었고, 사건 관련 보도가 나간 뒤 서너 시간이 지나도록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우던 부인은 남편의 전화를 받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TV 등은 “우리 측 장병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고, 군 측도 “우리 측 인명 피해는 없다”고 발표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했던 부인은 남편의 ‘살아 있는’ 전화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비상 상황이 종료된 뒤 몇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외부 통화를 할 수 있었던 참수리호 탑승 장병들은 그러나 전투의 긴장 때문인지 “나 좀 쉬어야 할 것 같아”는 말로 이날 통화를 마쳤다. 장병들은 “누가 먼저 발포했냐?”는 질문에 “걔네가 먼저 쐈다”고 확인했다. 군 당국 발표대로 경고사격을 하는 아군 함정에 대해 북한 경비정이 먼저 조준사격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교전을 마친 장병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돼 있었기 때문에 이날 오후까지도 ‘제3차 서해교전’ 사실이 국내 언론매체에 일제히 보도돼 국내가 발칵 뒤집혔고 외신을 타고 세계로 알려지면서 국제적 뉴스가 됐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교전 사실 세계적으로 보도된 것 모르고 있어 가족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있던 한 장병은 “야, 집부터 먼저 전화해야지”라는 외부인의 당부에 “오늘 교전 있었던 걸 모를 텐데?”라는 순진한 대답을 했다. 관련 소식이 전 세계로 타전됐지만, 장병들은 보도 사실을 몰랐기에 굳이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언제라도 대형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험지대에서 자신의 몸을 내놓은 채 나라를 지키는 우리 장병들은 임무에만 충실할 뿐 외부 세계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상황 등에는 관심이 없고 또 바깥 세상의 움직임을 알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장병들은 또한 교전 내용과 결과에 대한 합참의 발표에 대해 묻는 외부인의 질문에 대해서도 “합참의 발표가 전부 맞는 말이야”라는 말로, 이번 사태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합참이 숨김없이 정확하게 알렸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이번 서해교전에서 평택 해군 2함대의 기민한 대응은 과거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등 5개 단계로 이뤄졌던 교전규칙이 2004년 7월 경고방송→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됨으로써 상부에 보고하고 명령을 기다리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됐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장 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교전수칙을 마련함으로써 확실한 임전태세가 갖춰졌고 아군 피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교전에 나선 우리 해군의 참수리 325정은 130t급으로, 최대 속력은 시간당 66.6㎞이며, 30~40㎜ 기관포 1문과 20㎜ 기관포 등을 장착하고 있다. 참수리호의 기관포는 자동식이어서 발사하면 수십 발이 바로 발사된다. 이런 자동 기관포 설비에다 가볍고 기동성이 뛰어난 특징이 이번 제3차 서해교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