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정치가 본격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기 주례연설을 라디오로 하고, 각 당 대표도 라디오 고정 출연자가 됐다. 평소 말하기 꺼리는 정치 쟁점도 라디오에서는 술술 풀어내는 정치인들. 예기치 않은 말 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정치인도 있지만, 소신 있는 발언과 언변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이들도 있다. 정통 시사 프로그램 ‘BBS 김재원의 아침 저널’ 진행자 김재원 전 의원을 만나 정치인에게 라디오가 주는 의미를 짚어봤다. BBS ‘김재원의 아침 저널’로 모이는 러브콜 언변 좋은 정치인이라면 한 번쯤 거쳐가는 라디오 프로그램 BBS FM ‘김재원의 아침 저널’.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 현안을 집중 분석하는 시사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10월 13일 탄생했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정치인도 ‘김재원의 아침 저널’을 들으면 목소리로 만날 수 있다. 현재 비슷한 시간대에 방송되는 비슷한 성격의 라디오 프로그램만도 8개. 하지만 정치인 출신 진행자 김재원에게 정치인들은 평소와 달리 뜻밖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현안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입장을 털어놓는다. 청취자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미리 보낸 질문지보다 더 쉽게 질문한다는 그는 “내가 한때 동료였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편안함을 느낀다”며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라서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과 답답한 마음을 말하면 김재원이 이해해주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대부분 아나운서이다 보니 출연 정치인의 속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정치인 출신이라 성향을 80% 정도는 알고 있다”며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말을 할지 거의 추측이 되기 때문에 내 앞에서 그들은 더 솔직해진다”고 밝혔다. 과거엔 자신이 직접 출연 섭외를 하기도 했다는 김 진행자는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으면서 출연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그는 라디오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에는 기자들이 아침 일찍 정치인의 집으로 찾아가 정치인들과 식사를 하며 현안을 질문하고 기사를 썼다. 지금은 그런 문화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라디오가 대신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의 현장이 됐다.” 김 진행자는 정치인들이 정치 현장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을 선호하는 이유로 대중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TV에 출연해봐야 1분 이상 화면에 얼굴을 비치기가 쉽지 않은 반면, 라디오에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10분 넘게 지속적으로 자기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이런 매체는 라디오가 유일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치인들이 라디오를 하나의 정치 현장으로 받아들여 이제는 가감 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말 못하는 정치인에게도 이유는 있다” 김 진행자가 꼽는 말 못하는 정치인은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보좌관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정치인’들이다. 일례로 A 의원은 수차례에 걸쳐 ‘아침 저널’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출연시켜보니 대화 주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 하더라는 것. 김 진행자는 “특징을 내가 잘 아는 의원이라 우려했지만 예상 그대로였다”며 “신종플루에 대해 75세이신 우리 어머니보다도 모르더라”며 혀를 찼다. 또한 김 진행자는 말 못하는 유형 중에, 당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자기 소신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꼽았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얘기를 잘하는 분인데 당직을 맡아 그런지 소신과 반대되는 얘기를 해 앞뒤가 맞지 않았다”며 “나중에 그에게 반격을 했더니 ‘동문서답이라도 들어 달라’는 식으로 중언부언해 곤란했다”고 말했다. 말을 잘하다가 갑자기 못하게 바뀌는 정치인도 있다. 김 진행자는 “당직 때문에 평소의 주장과 다른 ‘당 입장’을 말하여 ‘그런 얘기를 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그러는 사람도 있다”며 “이러면 본인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힘들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원래 말을 잘하는 정치인이 장관이 되면 말을 못하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김 진행자는 “장관을 출연시키는 의도는 국민과 관련 있는 사안을 물어보고 책임 있는 답변을 듣기 위한 것”이라면서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왜 방송을 부처 홍보의 장으로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부처의 책임자가 되면 자기 기관에서 하는 모든 일을 소개하고 싶은 탓인지 어느 사업에 얼마를 투자했고 또 다른 사업에는 얼마를 투자했다는 말을 장황하게 나열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인은 평생 승부를 거는 몇 가지 수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이명박 대통령에겐 ‘성공한 CEO’‘청계천’, 박근혜 전 대표에겐 ‘원칙과 신뢰’ 등이 그런 것”이라며 “정치인에서 장관으로 가면 이런 것들을 아예 접기 때문에 설득력 있던 정치인이 재미가 없어진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김 진행자는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해 얘기하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1년 넘게 진행하면서 느낀 라디오에서 말 잘하는 비법은 뭘까? “말은 지도자로서 국민에게 동의 구하는 수단” 김재원 진행자는 “라디오에서 15~16분 정도에 질문을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까지 하므로 질문 하나에 1분 정도 시간을 소요하면 가장 좋다”며 “간명하고 정곡을 찌르는 핵심적인 말로 청취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인이 말을 잘한다는 뜻은 ‘미사여구를 잘 쓴다’ ‘논리정연하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교육을 잘 받지 못한 50대 중년이 거리에서 들어도 솔깃할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말 잘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김 진행자는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이상을 생생한 목소리로, 커트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알릴 수 있는 엄청난 수단이 라디오”라고 라디오 정치론을 펼쳤다. 정치인이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 진행자는 “국민은 나라의 미래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적인 목적에 대한 관심은 적을 수밖에 없다”며 “정치를 한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설득해서 이끌어 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사회로 가기 위한 주장을 펴고 이 주장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방법이 말과 글”이라고 해석했다. 김재원이 꼽은 말 잘하는 정치인 홍준표 ‘지나친 주장의 재미’-유시민 ‘뭘 말해도 이슈’
‘아침 저널’을 1년 넘게 진행해오면서 말 참 잘한다고 김재원 진행자가 판단한 정치인들은 누구일까? 그는 라디오 출연 정치인들을 모범생형과 궤도이탈형 등으로 나누며, 첫 범주에 해당하는 정치인으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을 꼽았다. “남경필 의원은 논리정연하게 정확한 용어를 써가면서 상황에 맞는 말을 제일 잘하는 모범생형”이라며 “청취자들이 가장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남 의원은 절제하면서도 자기 주장을 잘 펴며, 이슈를 점유하는 능력이 특히 탁월하다는 평가다. 홍준표 의원에 대해 김 진행자는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자기 주장을 펼치지만 듣는 사람을 박수 치게 만드는 사람”이라며 “궤도를 일탈해가며 청취자들을 즐겁게 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이종걸 의원과 박지원 의원이 꼽혔다. “이종걸 의원은 약간 오래 얘기하는 문제가 있지만 굉장히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장점”이라며 “라디오에서는 목소리나 화법이 중요한데 그 부분에서 참 탁월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박지원 의원에 대해선 “느릿느릿한 말투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전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슈 메이커다. “똑같은 말을 하면서도 이슈를 못 만드는 정치인이 태반이지만, 유시민 전 장관은 평소의 생각을 내뱉어도 이슈가 되고 그 이슈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밖에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대표, 민주당 김부겸 의원,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말 잘하는 정치인으로 꼽혔다. 이들은 진행자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특징이다. 이회창 총재는 모범생 스타일로 자기 주장을 잘 펼치고, 김부겸 의원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스타일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