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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일훈 국립국악원 원장

“첫 국악 뮤지컬 <황진이>에 빠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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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5호 이우인⁄ 2009.11.23 14:19:48

국내 첫 국악 뮤지컬 <황진이>가 11월 26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오른다. 요즘 다양한 ‘서양’ 뮤지컬이 인기를 끌고, 국악 연주를 들을 기회도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흥행’ 차원에서 보는 국악은 아직도 찬바람 부는 곳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국립국악원이 생소한 국악 뮤지컬을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리는 데 대해선 “무모한 시도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립국악원을 이끌고 있는 박일훈(63) 원장에겐 이런 도전이 하나도 낯설지 않다. 1970년대 한국 사람들이 국악의 ‘국’ 자도 모르던 시절부터 국악을 해온 그에게는 이런 우려가 결국 찬사로 바뀌는 경험을 여러 번 해봤기 때문이다. 박 원장을 만나 <황진이>를 무대에 올리는 소감을 들어보았다. “황진이, 한국을 대표하는 소리극으로 키울 것” “<황진이>는 국악 뮤지컬을 시작하기 위해 작업한 소리극입니다.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소리극으로 키워 외국에서도 공연하는 날을 볼 것입니다.” 박일훈 원장은 <황진이>를 준비하는 마음을 이렇게 밝혔다. 국악 소리극을 만들려는 시도는 전부터 많았지만, 성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족한 예산, 아직 형성되지 않은 관객층 같은 여러 문제 때문에 멈칫멈칫 미뤄져왔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가 지나기 전에 그 첫 단추가 끼워지는 것이다. ‘박 원장의 힘이 발휘됐다’는 평가에 그는 “그저 나는 제작을 허락하고 올해 안에 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왔을 뿐”이라고 겸손을 보인다. <황진이>는 조선의 시인이자 명기(名妓)인 황진이의 일대기를 그린다. 해원, 입문, 시회, 지족선사의 파계, 벽계수의 낙마, 화담과의 사랑 등 6개 극으로 구성된 이 뮤지컬은 황진이가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사랑’(가지려는 사랑이 아닌 받쳐주는 사랑)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올 3월에 제15대 국립국악원장으로 임명된 박 원장은 8개월째 국악원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국립 국악고, 서울대 국악과를 나온 그는 1974년부터 2003년까지 국립국악원에서 일하며 연구원·악사장·장악과장·국악연구실장 등 국악원의 주요 자리를 두루 거쳤다. 원장실에서 만난 박 원장은 국악 뮤지컬과 국악 이야기를 마치 눈앞에서 판소리 공연을 펼치듯 신명나게 풀어놓았다. 국악의 대중화를 강조하는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집념이 느껴졌다. 2년 남짓 남은 임기지만 국악의 대중화가 더욱 활기를 띠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다. 국악 뮤지컬은 어떤 형식입니까? 서양 뮤지컬처럼 노래와 춤, 극적인 이야기를 모두 담아 재미있게 만든 가무 악극입니다. <황진이>는 너무 고전적이지도, 너무 현대적이지도 않게 성격을 맞췄습니다. 국악에는 없던 장르를 새로 내놓는 것입니다. 첫 국악 뮤지컬의 주제로 <황진이>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황진이는 조선 중후기에 활동한 예술가 중의 예술가입니다. 그녀는 근세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로 문학과 미술·시·예도 등에서 매우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다채로우면서도 격조를 갖춘 그녀의 일생이 뮤지컬로 만들기에 딱 맞다고 생각해 제작에 나섰습니다. 뮤지컬 붐이 일고 있는 요즘 국악 뮤지컬이 갖는 의미는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국악은 옛부터 나라에서 또한 민간에서 사랑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통치를 받은 식민 30년 동안 국악은 강제로 잊혀졌고, 해방 뒤에야 발굴과 보존과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되찾아낸 국악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국악을 즐길 시간은 부족했지요. 한국이 경제 강국이 된 지금이야말로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저변이 넓어졌고, 여태까지는 서양 것을 가져다 즐겼지만 이젠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명성황후>처럼 한국적인 내용을 가진 뮤지컬도 나왔지만, 소리극 <황진이>는 좀 더 서민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국악을 뮤지컬에 접목시킨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소리극 <황진이>의 무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 역시 제대로 보지 못해서 궁금합니다. 원장이 연습장에 자꾸 가서 참견하면 작품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어 조심하고 있어요. 첫 시도인 만큼 굉장히 큰 무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노래와 춤, 여러 종류의 민요가 나오면서 신명난 공연이 되리라고 기대해요. 국악원장 취임 때 국악의 대중화를 강조하셨습니다. 국악 공연에 대중이 다가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어려운 대사와 국악 용어라고 생각합니다만…. 전통 공연에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의 전통 공연인 가부키나 노 공연장에 가보니, 해설가를 따로 둬 이들이 어려운 용어를 해설해주더군요.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까지 두면서 어려운 공연을 이어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소리를 쉬운 말, 요즘 말로 바꿔서 노래하면 그 맛이 나질 않아요. 영어 노래를 한국말로 잘못 옮기면 이상하게 들리듯이 말이죠. 이탈리아 노래는 이탈리아 말로, 전라도 민요도 전라도 말로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필요한 일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처럼 전문 해설가가 등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요즘의 한국인 정서에 맞는 새로운 국악 음악을 계속 창출하는 일이야말로 국악 대중화의 첩경이라 하겠습니다. 옛것을 무턱대고 똑같이 따르거나 옛것을 배척하고 새 것만 좋아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옛것과 요즘 것을 적절히 섞어야 비로소 새롭고 좋은 음악이 생겨나 발전한다고 봅니다.

국악 대중화를 위해 국악원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국악원은 인터넷과 국악 교육을 통해 국악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생활과 밀접한 곳에 국악이 널리 쓰이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1994년부터 줄곧 “애국가나 의전 음악을 국악으로 만들자” “전화 벨 소리 같은 생활 음악을 국악으로 만들자”면서 국악의 생활화를 강조했는데, 그때만 해도 별로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우리가 부탁해도 외면하던 사람들이 15~20년이 지난 요즘엔 오히려 국악 소리를 만들어 달라고 먼저 찾아옵니다. 주로 어느 곳에서 찾아오나요? 지하철·비행기·기차·터미널처럼 대중이 이용하는 장소에서 국악을 활용하고 싶다며 많이 찾아옵니다. 구체적으로는 지하철 1~4호선(서울 메트로)의 환승 안내 방송과 지하철 5~8호선(서울 도시철도공사)의 출퇴근 시간대에 국악 방송을 들려 주고 있어요. 또 대한항공 국제선의 기내 방송에도 국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까요? 한국인의 귀와 국악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 것 같아요. 시끄러운 현대 사회에서 서양 음악보다는 징 소리나 농악 같은 국악이 더 큰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말이죠. 국악 교육을 늘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가요? 국악 교육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교정해가면서 천천히 발전시켜야 합니다. 제가 국악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교육과학기술부가 국악 자문위원을 3명이나 위촉했더군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교과부가 관심을 가지면 머지않아 변화가 올 거라 믿어요. 국악은 현재 음악 교육 가운데서 40~48%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수준을 최소한 50%로 끌어올리자는 게 우리의 주장이지요. 문제는 일선 교사들이 국악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교육대학에 국악 전임도 없고요. 그래서 먼저 교육대학 커리큘럼을 바꾸고, 음악 교사가 음악 시간의 50%를 국악으로 가르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지역별로 교사를 교환해 학생을 가르치는 시스템을 만들어도 좋고, 이왕에 가르친다면 전문적으로 가르쳤으면 하는 겁니다. 이 밖에도, 국립국악원은 교사와 청소년·가족·일반인·외국인·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국악연수관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e-국악아카데미’ 사이트를 운영해 국악의 교육 현장을 넓히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온 나라 국악 경연대회’ ‘온 나라 궁중무용 경연대회’ ‘국악 동요제’를 열어 학생 및 일반인들에게 국악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악원장으로 활동하신 지 8개월째인데요. 그동안 국악원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애로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원장이 된 뒤에 일이 많아 배우느라고 정신이 없죠(웃음). 지금 가장 큰 일은 눈높이를 낮춘 공연을 만들어 국민에게 다가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지방과 서울 국악원의 업무 영역 조정을 올해 안에 마치고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잘 만든 제도와 법규가 필요합니다. 한평생 국악과 함께하셨습니다. 국악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한 번 체험하면 빠져드는 예술이 국악 같아요. 국악을 처음엔 거부하던 사람도 시작만 하면 빠져드니 말이죠. 하지 말라고 말려도 발을 못 빼는 흡인력이 특히 강한 장르가 국악인 것 같아요. 저도 그랬었지요(웃음). 국악에 대해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시조를 읊거나 국악기를 다루면 소화도 잘 되고 건강도 좋아집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냥 한 번 배워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건지 알고 나면 매력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을 거예요. [미니 인터뷰]황진이 역 최수정

소리극 <황진이>에서 주인공 황진이 역을 맡은 최수정 씨는 경기민요 이수자로, 중요무형문화재 57호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소리 공부를 시작한 최 씨는 당대 최고 경기 명창들의 인정을 받으며 각종 민요경창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대학교 공부학년 때인 1996년에는 서울국악대경연에서 금상을, 2005년 국악협회 주최 민요경창대회에선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중견 소리꾼으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악 관현악, 서양 오케스트라, 재즈 밴드 등과 함께 작업하면서 전통과 창작을 넘나들었다. 최 씨에게 <황진이>를 맡은 소감을 물어봤다. 첫 국악 뮤지컬 무대에 서는 소감은? 새로운 경험이라 무척 즐겁습니다. 하지만 황진이가 가진 내면을 연기·춤·노래·그림·서예 같은 예술로 보여주는 일은 어려워요. 또 저를 버리고 진정한 황진이로 변신하는 작업도 힘들고요. 황진이 역에 어떻게 발탁되었나요? 소리극 <황진이>의 예술감독인 강정숙(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명인의 추천으로 발탁됐습니다. 2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대사와 노래를 하는 역을 소화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무용과 연기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연습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극에서 황진이는 다양한 상대의 남자 배우와 연기를 합니다. 상대 남자가 바뀌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황진이 캐릭터를 유지하는 일, 그러면서도 황진이의 여러 매력을 장면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네요. 배역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점이 있다면…. 소리극 <황진이>는 황진이의 유년 시절부터 성숙한 여인이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룹니다. 유년 시절에는 순수하고 청순한 모습을, 성장하는 부분에서는 아름다움을 강조해, 시기마다 다른 황진이 캐릭터를 다양하게 해석해야 하죠.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특별한 부분은 더 강조하는 쪽에 노력을 맞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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