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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 방문한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로 치유의 약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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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7호 이우인⁄ 2009.12.07 14:13:29

스물다섯 살 데이지는 이모 부부가 운영하는 야키소바 가게에서 일한다. 이모 부부와 함께 가게를 꾸리며 어린 데이지를 키우던 미혼모 엄마는 비가 몹시 내리던 날 데이지를 태우고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눈앞에서 엄마의 죽음을 본 데이지는 그때의 경험으로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한 일본의 유명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데이지의 인생>(원제 ひな菊の人生)이 출간됐다. <데이지의 인생>은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소녀가 소꿉친구 달리아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달리아의 죽음까지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에 작가와 여러 차례 함께 작업한 일러스트레이터 나라 요시토모가 표지 그림을 포함한 회화 15점을 그려 넣어 이야기의 재미와 이해를 도왔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국을 찾았다. 2박3일의 일정으로 가족과 함께 한국 음식 탐방을 온 바나나의 이번 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예정된 일정은 아니지만, 그녀는 약 10년 전에 쓴 작품이 한국에서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 12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벨라지오에서 기자를 만났다. 겉보기에는 일본의 평범한 ‘오바상’(아줌마)이지만, 꺼내는 이야기마다 깊은 성찰이 느껴졌다. <데이지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품에서 ‘상처’와 ‘치유’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일본의 젊은이들은 지금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제가 소설을 처음 쓸 때인 20년 전과 비교해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죠. 제가 쓴 글들이 지금의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치유’라는 코드를 의식해 쓰려 하고 있어요. <데이지의 인생>을 스스로도 이색적인 작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업 과정 또는 작품의 세계 중 어디에 해당되는 말인가요? 둘 다입니다. 작품의 세계관이나 작업 과정 모두 제겐 이색적이었어요. 제가 가장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글은 새롭고 잔혹한 작품인데요. 그런 면에서 <데이지의 인생>은 가장 쓰기 쉬운 길이의 작품이었습니다. 데이지와 달리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꿈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겉으로 보기에 데이지는 건전하고 건강한 인물입니다. 무척 성실하고, 신세를 지고 있는 이모 부부와도 사이가 좋죠. 하지만 마음속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세계와 이어져 있어요. 그것을 꿈이라는 소재로 나타냈습니다. 그녀의 인생과 비교해 꿈은 정말로 기분 나쁘고 음침한 세계죠. 그런 느낌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데이지’와 ‘달리아’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꽃으로 표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라 씨(나라 요시토모)와 얘기하면서 결정하게 됐는데 이제야 털어놓네요. ‘달리아’라는 인물은 나라 씨의 여자 친구가 모델입니다. 그 여자 친구도 복잡한 인생을 살았는데, 지금은 저도 나라 씨도 그 여성을 만나지 않아요. 그리고 나라 씨는 다른 분과 결혼했습니다. 그 자체가 ‘청춘의 기억’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일본적인 이름을 붙이면 이 이야기의 신비한 면이 사라질 우려가 있어, 데이지와 달리아라는 꽃 이름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나라 씨의 예전 여자 친구가 달리아 꽃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만든 이름이죠. 데이지의 어머니는 죽어가면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작품을 쓸 당시에는 자녀가 없었는데, 어떻게 이처럼 모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글을 쓸 수 있었나요? 지금 이 소설을 쓴다면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데이지를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가 자신의 부모가 죽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본다면 그 경험이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 무섭고 잔혹한 경험을 한 인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2003년에 엄마가 된 뒤에 작품에는 어떤 변화가 왔습니까? 저는 뭐든지 느립니다. 뭔가를 안다는 것이 굉장히 느리죠. 아이를 낳았을 때 저의 집필 스타일이 전부 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바뀌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조금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육 년이 지난 뒤에야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완전히 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어떤 글을 써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말하고 싶은 게 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알기 어렵습니다만,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젊은 시절에 쓴 작품들은 젊은 시절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딱 맞을 거라 생각하고, 지금 쓰고 있는 작품들은 좀 더 연령이 높은 층에 더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에는 데이지가 꿈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바나나 씨는 언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낍니까? 제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연세가 높으시고, 저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하나 늘어나고, 부모님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하나 줄어듭니다. 그 양쪽을 모두 보고 있으면 인생의 소중함을 강하게 느낀답니다. 작품에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기억이 있다고 나오는데요. 바나나 씨에겐 그런 기억이 있나요? 좀 전에 먹은 맛있는 삼계탕에 대한 기억이죠(웃음). 평소 소설을 쓸 때는 나와 컴퓨터, 즉 나와 자신을 마주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외국에 오면 메일로밖에 이야기하지 못한 사람이나 번역가 김난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꿈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바나나 씨의 작품은 ‘치유의 문학’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학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있는지요. 많이 있어요. 그래서 작가가 된 것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싫고 슬픈 일이 있어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머문 여관에 책꽂이가 있었습니다. 너무 슬프고 괴로운 심정이었던 저는 뭐라도 읽자는 생각에 책꽂이에서 책을 뺐어요. 그런데 그 책이 우연히도 굉장히 좋아하는 책이었고, 저는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 보니, 제 옆에 그 책이 있는 거예요. 그 순간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이 제겐 굉장히 많아요. 데이지처럼 잔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면요. 제가 삶과 죽음에 대해 인식하게 된 계기는 키운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부터입니다. 많은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평범한 아이들보다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제가 다른 사람이 잘 보지 못하는 면을 더 많이 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때문에 죽음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설에 유독 많이 담게 된 것 같아요. 나라 요시토모 씨의 그림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웃음). 제가 생각해도 나라 씨의 그림과는 닮은 것 같지 않아요. 나라 씨는 자신의 그림 모델이 일본의 여가수 코코나 미야자키 아오이라고 말하니까요. 나라 씨의 그림이 대단한 이유는, 단순히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이 소설 속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오싹함이나 무서운 느낌이 들어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 여류 작가의 작품이 있습니까? 아쉽지만 한국 작품은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실시간으로 일본에 들어오는 한국에 관한 정보는 드라마밖에 없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도 소설에 대한 정보가 없고요. 일본 서점에도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에게 더 많은 한국 작품이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은 두 번째 방문이군요.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요. 일 년 사이에 ‘스타벅스’ 같은 해외 브랜드의 가게가 눈에 많이 띄어 일본의 도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일본에 있을 때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한국 음식을 먹을 정도로 무척 좋아합니다. 일본에서는 순두부를 자주 먹고요. 아주 잘하는 가게가 있거든요. <불륜과 남미>도 <무지개>처럼 여행을 다녀와서 쓴 글인데요. 앞으로도 여행을 다녀와서 글을 쓸 생각이 있습니까? 하와이를 5년 정도 취재해서 쓴 소설이 이제 막 완성돼 나왔어요. <왕국>이라는 소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그리스와 스페인의 성들을 소재로 했고요. 앞으로 한국에 세 번 정도 더 오게 되면 한국을 소재로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의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소설을 읽을 동안은 마음이 자유롭다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작가로서 기쁠 것 같아요. 제 작품은 어느 작품을 읽어도 다른 점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해열제는 열을 내리는 역할을 하고, 파스는 통증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세상에 그런 여러 가지 약이 있는 것처럼 저는 조금씩 부위를 바꿔가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점점 제가 소설이라는 형태를 통해 약을 조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많은 작품 중에 그때 그 증상에 맞는 소설이 하나씩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지금의 자기 상태에 맞는 (치유의) 소설을 골라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곧 신년인데, 신년 인사 부탁합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될수록 천천히 부드럽고 안정된 기분으로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한 가지 더 느낀 점이 있다면요, 20년 전만 해도 일본 여성들이 지금의 한국 여성들처럼 귀엽고 예뻤다는 사실이죠. 요즘 일본 여성들은 막대기처럼 너무 마른데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그 화장을 지우면 굉장히 피부가 지저분한 그런 모습이 많이 늘어 안타까워요. 여러분은 지금 이대로 귀엽고 예쁘게 있어주세요. 요시모토 바나나(본명 요시모토 마호코) 196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바나나는 1987년에 문단에 데뷔해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 특히 1988년에 출간된 <키친>은 지금까지 200만 부가 넘게 판매됐으며, 미국ㆍ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 등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돼 바나나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줬다. ‘바나나’라는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의 필명은 열대지방에서만 피는 붉은 바나나 꽃을 좋아해 탄생하게 됐다.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되어준다면 그것은 바로 가장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바나나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감성을 섬세하게 짚어낸 작품들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는 <키친> <도마뱀> <하치의 마지막 연인> <허니문> <암리타> <티티새> <슬픈 예감> <아르헨티나 할머니> <왕국> <해피 해피 스마일> <무지개> 등이 출간돼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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