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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화랑]매일 그리다

민경숙 개인전 12.16~29 갤러리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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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50·151 편집팀⁄ 2009.12.28 15:24:50

민경숙이 보내온 그림들을 본다. 먼 곳에서 온 아련한 편지 같다. 한결같이 적조하고 고독하고 쓸쓸하다. 말을 지운 자리에 고요한 이미지만이 파리하게 응고되어 있다. 언어와 문자는 부재하지만 남은 이미지는 어떤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안긴다. 한 작가의 인성과 마음의 결, 감각의 체로 걸러낸 세상의 풍경이 거기 있다. 작가는 식빵과 먹다 남은 도넛, 일상의 사물, 건물과 집들, 나무와 누군가의 살·피부를 그렸다. 가만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들의 피부 위에는 모종의 흔적, 상처가 있다. 곰팡이가 핀 식빵, 한 입 베어 문 도넛, 무수한 칼질을 받았던 도마, 몸에 난 상처나 피부에 잠긴 초록의 핏줄, 소파 천위로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는 균사, 건물에 드리운 햇살과 그림자 등이다. 그것은 사물의 표면에 서식하는 시간의 자취이자 그것과 함께 했던 그 누군가의 자리다. 모든 존재는 타인의 기억을 간직한다. 그것은 우선 피부에 남아있다. 지금은 부재하지만 한때 그것과 연동되어있었던 또 다른 존재가 남겨놓은 흔적이자 상처다. 상처는 불가피하게 나와 다른 것이 만날 때 생겨난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를 숙주 삼아 산다.

누군가가 앉았던 푹신한 소파는 조심스레 꺼진 자리를 통해 그·그녀의 무게와 실존의 자리를 증거한다. 어느 한순간의 상황성을 시각화한다. 그곳 여기저기에 균사가 창궐한다. 얼룩들이 마구 번져나간다. 기이하고 낯설다. 안락하고 편안한 소파가 일순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일상의 사물들은 그렇게 낯익고 편하다가도 문득 기억과 상처에 의해 돌연 낯설고 끔찍한 존재가 되어 나를 덮친다. 그런가 하면 가구도 없는 흰 벽, 바닥과 걸레받이 그 사이 어딘가에 다만 빛과 그림자가 만든 순간적인 자취만이 아롱지는 풍경이 보인다. 멀지 않은 시간에 사라져버릴 한 조각의 빛, 덧없이 스러지는 자취, 소멸하는 상처들이다.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자 너무도 범속한 장소에서 찾아낸 이 시선은 결국 작가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발견해낸다. 자기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대상을 보는 연민이 시선이 그렇게 내려앉아 있다. 사람이 부재한 적막한 풍경 역시 그렇다. 쓸쓸하고 호젓한 집들이 나무와 함께, 따뜻한 노란색 불빛과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는 어둠 안에 그렇게 있다. 이 세상의 사물들은 모든 풍경은 저마다 고독하게 자리하고 있다. 호퍼의 풍경화가 연상되는 그런 그림이다.

종이 위에 파스텔로 문질러 안착시킨 그 이미지들은 빛과 어둠의 미묘한 차이 속에서 반짝인다. 어둠에서만 빛은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어둠은 빛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캄캄함을 증거한다. 집은 풍경 속에서 아름답고 모든 사물은 누군가의 흔적 속에 제 생애를 증거한다. 조심스레 나를 둘러싼 세계를 살핀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재현하고 특정한 이념이나 논리를 구축하기 위해 찾아 나선 탐사가 아니라 다만 하루의 삶에서 만나고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나 체험이다. 작가의 동선은 방 안에서 부엌으로, 식탁과 테이블 위로 그리고 몸과 피부 사이로 떠돈다. 집을 나서서 하늘과 땅, 나무와 숲과 건물과 집들이 바라보이는 길가로 나서고 그 길을 걷고 그렇게 보고 접한 것들을 가슴의 갈피에 접어 넣고 돌아와 이를 그렸다. 너무 평범해서 진부하기 조차한 것들이 작가의 마음과 손끝에서 새롭게 환생했다. 약간은 흐릿하고 흔들리고 그만큼 모종의 떨림과 여운을 안기면서 이 세상이 덧없이 사라지는 순간이 화면 안으로 호명되었다.

매일, 일상이라는 평범한 시간과 공간 속에 담긴 놀랄만한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은 안경에 묻혀 있는 작가의 눈이 새삼 떠오른다. 무엇을 찾고 있을까? “나는 무엇이든지 시각적, 감정적, 심리적으로 내 관심을 끄는 것을 그리려고 한다.”(작가 노트) 애초에 무엇을 그리겠다는 인식과 그림에 대한 선험적인 의도를 지우고 자기 눈과 마음을 세상에 맡겼다. 그린다는 것이 친숙한 하루의 일과가 되었고 그래서 매일의 생활을 담은 짧은 일기나 시 같은 그림이 되었다. 그렇게 작가는 세계를 떠다닌다. 유동한다. 모든 사물의 피부 위를 거닌다. 그곳에 난 상처를 보듬는다. 힘껏 껴안는다. 여전히 살아있는 오늘과 그림 그리는 행위는 그렇게 구원 같고 치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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