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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장병철 연세대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장

“세브란스, 10년 후 세계 10대 심장병원 올라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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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50·151 최영태⁄ 2009.12.28 14:42:15

6시간짜리 대수술을 마친 의사의 손은 따뜻하면서도 촉촉해 그가 살린 심장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연간 200~250명 정도씩 심장병 환자를 살려내는 그의 손에서 또 하나의 심장이 살아난 것이다. 장병철 원장이 이끄는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에서만도 연간 1100건 정도씩 심장병 수술이 진행되니, 하루 3~4건씩은 끊임없이 수술을 하고 있는 셈이며, 그만큼 한국인에게 심장병 환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에 대해 장 원장은 “앞으로 20~30년 간은 꾸준히 심장병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장병을 일으키는 요인은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크지만, 식생활과 운동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인이 육류를 많이 먹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이고 지금도 많이 먹고 있으니, 식생활 변화 뒤 시차를 두고 심장병 환자가 늘어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20~30년 간, 그리고 현재의 10대가 성인이 될 때쯤이면 심장병 환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경각심 높아지기 전까지는 심장병 계속 증가” 이러한 추세가 꺾이려면 심장병 예방에 대한 국민 전반의 경각심이 싹터야 한다. 미국의 경우 고기 중심의 기름진 식생활,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의 증가 등에 따라 심장병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이런 추세가 주춤하고 있다고 장 원장은 소개했다. 채소 섭취를 늘리고,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며, 빵을 먹더라도 건강에 안 좋은 흰 빵보다는 도정하지 않은 밀로 만들어 고동색에 재질도 거친 홀 그레인(whole grain) 빵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드디어 심장병 증가세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경우 의학 발전이 눈부시게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는 주로 ‘일단 생긴 병을 고치는’ 차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생기지 않은 병을 안 생기도록 막는’ 차원에는 아직 사회적 관심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앉아 생활하는 시간이 긴 환경 등 심장병 위험 요인은 지속되고 있다고 장 원장은 지적했다. 지난 1991년에 국내 최초의 심장·혈관 질환 전문 치료 병원으로 문을 연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이렇게 늘어만 가는 심장병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선도적 활동을 하고 있다. 우선 병원 전체로 추구하는 목표는 앞으로 10년 뒤인 2020년까지 세계 10대 심장 전문 병원으로 올라선다는 것. 미국의 클리블랜드 클리닉이나 메이요 클리닉 같은 세계 톱 수준의 심장 전문 병원이 되겠다는 포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할 일도 많다. 우선 환자가 만족하는 병원이 돼야 한다. 환자가 만족하려면 진료·치료를 잘 하고 합병증이 없는 등 치료 결과가 만족스러워야 한다. 현재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의 수술 뒤 합병증 비율은 0.1~0.2% 수준으로, 다른 병원의 1~2%에 비교한다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톱 10’ 심장병원 되기 위한 준비 착착 진행 중 이처럼 좋은 성과를 올리려면 치료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 이 병원은 올해 자체 조직으로 관상동맥센터·심부전센터·영상센터 등 전문 진료·치료 조직을 새롭게 구성했다. 전문 병원 안에 또 전문센터가 생긴 것이다. 이런 전문 센터는 ‘환자에 맞추는’ 진료·치료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장 원장은 “심장 전문의라도 각기 자신의 전문 과목이 있는데, 예컨대 협심증 전문 의사가 다른 심장질환 환자를 보면 의사 자신의 선입견 또는 기득권 때문에 맞춤 치료가 안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우리 병원은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각 환자를 그 환자의 질환에 맞는 센터에 배정해 여러 관련 교수들이 팀을 이뤄 치료하는 시스템을 올해 도입하여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시스템이 ‘의사에 환자를 맞추는’ 방식이었다면, 새 시스템은 ‘환자에 의료진을 맞추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남다른 치료 효과를 거두는 바탕이다. 장 원장은 “세계 톱 수준의 병원이 되려면 단순히 수술을 잘 한다고만 되는 게 아니라 연구·개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앞으로 유전자 치료, 줄기세포 치료 등이 심장병 분야에 활성화된다면 이런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어야 최고 병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이 작년에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이유다.

심장병 예방에는 위험인자를 미리 알아내고 위험한 상태로 발전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작업이 진단·치료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지난해 9월 서울 마포구청과 ‘심혈관질환 조기검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의향서(MOU)를 체결했다. 마포구 주민들에 대한 건강 진단 결과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협력하여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개인별로 심장병 예측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이 시스템이 갖춰지면 마포구 주민들은 기초적인 건강 검진에서부터 대학병원에서 받는 수술에 이르기까지 심장병에 관한 종합적 예방 시스템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장 원장은 “앞으로 이 시스템을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연말을 맞아 각종 모임에다 병원 안에서도 각 직종별 송년 모임에 참석하느라 ‘술병’에 걸리기 쉬운 장 원장이지만, 술을 많이 마셔도 심장병 전문가답게 건강관리만큼은 확실하게 한다. 등산·골프·조깅으로 건강관리를 하는 그는 올해 만 56세지만, 군살이 별로 없는 젊은이 같은 날렵한 몸매를 자랑한다. ‘죽을 사람 살리는’ 자부심 먹고 산다 흉부외과 인기 날로 떨어져도 ‘세계 일류’돼 활로 뚫어 장병철 원장이 이끄는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국내 최초의 심장·혈관병 전문 병원인 만큼 ‘최초’가 들어가는 기록도 많다. 1957년 국내 병원으로는 처음으로 당시 이화여대 1학년 학생이었던 환자에게 심장 수술을 했으며, 이 환자는 지금도 생존해 있다. 지금도 심장병 수술은 위험한 수술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10명이 수술을 받으면 2명 정도는 수술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니, 그야말로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했던 ‘칼잡이’들이 바로 흉부외과 의사들이었다. 또한 심장수술은 긴급 수술도 많아 흉부외과 의사는 항상 ‘임전 태세’를 갖추고 살아야 하며, ‘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살아야 하는’ 의사들의 전형이 바로 이들이다. 장 원장 자신도 70년대 초임 시절에는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게 3개월에 한 번일 정도로 병원에 매여 살았다. 일자리 자꾸 줄어드는 심장수술 전문의 이렇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직업이 흉부외과 의사지만, 그간 이들을 받쳐준 것은 ‘자부심’이었다. 글자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의사이며, 같은 의대생이라도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분야라는 자부심을 먹고 살았다. 60~70년대 국내 흉부외과 의대생들은 “앞으로 20~30년 후엔 우리 시대가 열린다”고 고통을 감내했지만, 그 정도 시간이 지난 현재 흉부외과는 심하게 말한다면 몰락 비슷한 양상을 맞고 있다. 일 자체가 힘들고 위험한데다, 병원 측에서 흉부외과를 유지하는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많은 병원들이 흉부외과 유지를 포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들어, 현재 국내 대학병원의 흉부외과는 명맥을 이어갈 후진들을 맞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대학병원 중 일부는 흉부외과 정원의 5분의 1을 겨우 채우는 등 위기 상황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장 원장은 흉부외과의 현황에 대해 “옛날 같은 화려함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일부에서 우려하듯 ‘심장 수술을 한국인 의사에게 받지 못하고 외국인 의사에게 맡겨야 하는’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숫자는 적지만 꾸준히 후진을 양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후학들의 흉부외과 기피 사태를 걱정하면서도 장 원장은 ‘세계 최고 심장 전문 병원이 되면 이런 문제도 해결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 환자뿐 아니라 세계 환자들이 찾는 세계 톱 10 병원이 되면 충분한 수요와 일자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세계 일류 병원 되면서 외국인도 많이 찾아 최근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바람직한 사태를 속속 경험하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 과거라면 심장병 수술을 받기 위해 외국행을 택했겠지만, 한국의 의술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좋은 경과를 보이고 있는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등 한국에서 가까운 지역의 외국 환자들이, 과거라면 싱가포르 등으로 수술을 받으러 갔겠지만, 요즘은 한국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관광’도 결국 이런 인식의 확산과 한국 의료기관의 일류화가 이뤄져야 가능한 과제이다. 한국에 심장 관련 전문의는 많지만, 명성이 높은 미국 흉부외과학회의 정회원은 현재 장 원장이 유일하다. 이 학회는 자체 결원이 생겨야 새 회원을 받는, 가입 심사 기준이 엄격한 학회로 이름 높다. 장 원장이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을 이끄는 한, 앞으로 이곳에서는 또 다른 ‘최초’ 기록들이 계속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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