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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친일인명사전’ 펴낸 임헌영 “후손이 반성해야”

“조상의 친일을 후손이 인정해야 역사청산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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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2호 김진성⁄ 2010.01.11 16:44:32

18년에 걸친 작업 끝에 <친일인명사전>이 지난해 11월 8일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친일인명사전>은 사람들 앞에서 출생신고를 하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장소를 옮겨서 열어야 했고, 문화계 인사들이 탄생을 축하해주려고 마련한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념 축하 한마당’은 아예 연기됐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장소를 대관해주기로 한 곳에서 갑작스레 ‘대관 불허 통보’를 내면서 벌어진 일이다. 본편 3권과 발간약사 1권 등 총 4권 3000여 페이지에 4370여 명의 친일파 행적을 담은 이 책은 왜 이토록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을까?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올해에도 여전히 친일파 청산을 통한 민족정기 정립을 주장하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을 만나 그의 주장을 들어보았다. “친일파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존재” 지난해 12월 31일 자택에서 만나본 임헌영 소장에게 제일 먼저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념 축하 한마당’ 연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전날 진행하려던 행사가 취소된 심정을 물으니, 뜻밖에 담담한 모습으로 답변했다. “한국문학평화포럼에서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을 축하해주려고 마련한 자리였는데, 처음 대관을 약속한 조계종 측이 갑자기 내부 행사가 잡혔다면서 대관 불허 통보를 전했다. 이런 경우 조계종이 민족문제연구소 측에 위약금을 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그것까지 모두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결국 행사를 연기하게 됐다”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언짢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임 소장은 언급했다. 임 소장은 두 번에 걸친 갑작스러운 대관 불허가 바로 ‘친일은 현실’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친일인명사전이 출간된 뒤 ‘친일’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종교단체의 장소마저 대여가 안 되는 현실이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에 친일파가 득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는 임 소장은 “오히려 이번 대관 불허 통보가 ‘친일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묻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온갖 오해 속에 발간…이데올로기 편향은 없다”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편향적으로 집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은 학문적 연구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의 출간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것이 학문적 노력을 거쳐 객관성의 옷을 입고 현실이 됐다”고 짧게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의미를 언급한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이 출간되기 직전까지도 막연한 선입관 때문에 ‘~는 빠졌을 것이다’ ‘~과 관련한 자료는 빠졌을 것이다’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은 광복 이후 사회 현상의 연구 결과물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한 학문적 연구이고 학문으로 평가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임 소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민족문제연구소를 둘러싼 오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 바로 ‘특정 정파 또는 정권’을 위해 일한다는 비판이다. 몇 년이 지나도 끊이지 않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임 소장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행위 청산에만 목적을 둔다”는 사실을 수시로 강조하는 한편, 선거철에 몰리는 문의 전화에는 일절 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켜가는 중이다. 이렇듯 온갖 곡절을 겪고 있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여전히 자신만의 발걸음을 우직하게 옮기고 있다. 특히 올해는 준비 중인 <일제강제침탈사>의 대략적인 윤곽을 잡고 일부라도 발표해, 40년 가까운 일제치하 기간 동안 발생한 인명·문화재·자원·재산 등의 손실을 공개할 계획이다. 또한 <식민통치사료>도 올해 정리하고, 재정적인 문제로 답보 상태를 거듭하는 ‘역사자료관’의 건립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친일파 후손의 조상 감싸기…“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임 소장은 인터뷰 도중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에 대해 언급했다. 자기 조상이 지은 죄에 대한 글을 써 급제를 한 뒤 부끄러움에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 김삿갓처럼, 우리나라 친일파 후손들도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친일 행위는 분명한 범법 행위인데, 어째선지 우리나라에서는 친일 경력이 있는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더 잘살고 있다”고 개탄한 임 소장은 “직접적으로 친일을 했던 이들이 고령으로 거의 다 사망한 지금, 조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친일파 후손들의 적극적인 시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친일파 청산이 우리나라에서 지지부진한 이유는 뭘까? 임 소장은 이에 대해 “친일파들을 옹호하는 저항 세력의 존재, 친일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한 친일파끼리의 상호 연대와 옹호, 반성하지 않는 친일파 후손의 태도 등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친일 청산의 발목을 잡았다”고 언급하고, “유럽은 정치와 법률을 통한 징계, 경제적 박탈, 나라를 배신한 이들의 말로는 알려주는 국민교육 단계, 역사학적 단계 등 4단계를 거쳐 민족정기를 세우는데, 우리나라는 이번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4단계부터 시작하는 형국이다”라고 개탄했다. 한편,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무엇보다 국민의 힘이 중요하다고 임 소장은 주장했다. “국민이 힘을 합쳐 세 가지 정도만 해 주면 친일 청산에 큰 몫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임 소장은 ▲독립운동의 가치 재발견, 그중에서도 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이 민주주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줄 것과 ▲주변의 친일파 후손들에 대한 가치를 재정립하고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들을 기리는 행사에 국민의 세금이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 ▲올바른 삶의 지표를 세울 것 등 세 가지를 국민에게 당부했다. 현대문학에 대한 평론을 공부하다 문학과 역사의 밀접함을 깨달았다는 임 소장은 “친일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파시즘 철학과 사대주의가 존재하는 한 남북통일도, 동아시아 평화도, 민주주의 정착도 모두 요원한 얘기”라고 경고했다. 대학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문학단체의 회장을 맡고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직을 역임하면서도 짬짬이 쓴 문학평론이 어느새 책 15권 정도의 분량이 됐다는 임 소장은 올해 칠순을 맞아 지금까지 해왔던 개인 작업들을 정리하는 개인 저술 활동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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