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호 최영태⁄ 2010.01.18 12:07:02
“산을 오를 때 몸은 힘들지만, 이것만 참으면 되니까 마음은 행복합니다. 하산하면서 땅이 가까워지면 세상 걱정이 다시 마음에 들어오면서 마음과 몸이 다 힘들어지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봉의 정상을 바라보며 2010년의 첫날을 맞이한 심영목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센터장의 등산 예찬론이다. 등산이 주는 몸의 고통이 마음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이 말 그대로 그의 인생에서 등산은 뺄 수 없는 요소다. 삼성서울병원 암센터가 2년 전 아시아 최대·최고 암 전문 병원으로 출범해 지난 2년 간 혁혁한 실적을 쌓아가면서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하기까지, 심 센터장은 정말로 몸과 마음을 무너뜨릴 만한 스트레스 속에서 정신없이 살았다. 그래도 그는 등산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집을 아예 ‘산 코앞’으로 옮겼다. 집에서 단 몇 분이면 불곡산 등산로에 도달할 수 있는 분당으로 이사 갔고, 주말에는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산행을 마친다. ‘히말라야 산행’도 벌써 3년 전부터 계획했지만, 암센터의 바쁜 일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졌다. 올해도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연말 히말라야 산행을 기획했지만, 처음엔 가겠다고 약속했던 회원들이 “연말이라 바빠서” 등의 이유를 대면서 탈락하기 시작해 이마저도 무산될 뻔했다. 그러나 그는 ‘산에 오르듯’ 좌절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부터 신정 휴일로 이어지는 연말연시에 12월 28~31일(월~목) 나흘만 휴가를 내면 8박9일짜리 안나푸르나 도전 단체등반에 참석할 수 있음에 착안한 심 센터장은 병원 간호사실장, 삼성서울병원을 상대로 영업하는 은행 간부의 남편, 그리고 원자력병원 흉부외과에 근무하는 후배 의사와 함께 ‘마지막 4인조’를 결성해 턱걸이하듯 등반 팀에 합류했다. 흡연자 탈락하자 히말라야에서 ‘현장 금연교실’ 열어
여행사 측에서는 이 여행에 대해 “북한산을 오를 정도의 보통 실력이면 안나푸르나 봉(해발 8,091m)의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도착하니 그게 아니었다. 일체의 관광 일정 없이 비행기와 버스 편으로 바로 산 입구에 도착한 뒤 하루 8~9시간씩 4일 동안 산을 오르고 이틀 간 하산해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귀국하는 뻑뻑한 일정이었다. 일행 중 심 센터장(56세)이 가장 고령이었지만 그는 가장 앞서 걷는 사람 중 하나였으며, 일부가 탈락한 가운데 그는 베이스캠프까지의 등반 일정을 남김없이 소화했다. 최종 목적지인 베이스캠프에 도달하기 전날 저녁, 일행 중 술·담배를 하던 남성이 갑자기 고산증 증세를 호소했고, 결국 그는 서둘러 셰르파와 함께 하산했다. 일단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하산해야 고통을 없앨 수 있다. 이 남자의 탈락을 본 심 센터장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국내 폐암·식도암의 최고 권위자로서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행 중 담배를 피우는 3명을 불러 모아 담배를 피우면 왜 안 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실례’를 바로 눈앞에서 본 이들 흡연자 3명은 “지금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설산 맹세’를 했고, 갖고 있던 담배를 모아 바로 쓰레기로 내버렸다. 폐암 권위자가 폐암의 위험에 접근해가는 사람들을 진료실이나 수술대 위에서가 아니라 등산을 하면서 위험에서 구해주는 순간이었다. “폐 살리는 데 등산만큼 좋은 운동 없어”
심 센터장은 기회만 있으면 등산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를 사람들에게 알린다. 우선 폐 건강에 등산만큼 좋은 운동도 없다. 어떤 사람의 폐활량이 3000cc라면 평소 생활을 하면서 폐가 처리하는 호흡량은 500cc 정도이므로 능력의 극히 일부만을 사용해도 된다. 그러나 숨 가쁘게 산을 오르면 3000cc의 폐활량을 최대로 사용하면서 폐가 강해진다. 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 좋은 산행을 마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데, 심 센터장은 이에 대해 “등산을 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다면 차라리 등산을 안 하니만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또 등산은 다리 근육을 키워주고 몸의 균형을 잡아줘 면역력이 강화된다. “암에 걸린 다음에 고치려 할 것이 아니라, 암에 걸리기 전에 건강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키워놓는 게 최상이며, 그러기에는 등산이 경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기에 최고 운동”이라는 것이다. 국토의 70%가 온통 산악지대인 한국에서 누구나 대중교통 차비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게 등산이기도 하다. 등산을 잘 하는 요령으로 심 센터장은 “잘 참는 게 요령”이라고 말한다. 자신처럼 어렸을 때부터 등산을 한 사람도 소위 ‘깔딱고개’라 불리는 경사로를 오를 때면 당연히 다리도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은 계속 오르는 것이고, 못 참는 사람은 멈춰 서게 된다는 설명이다. 단, 고통과 숨 가쁨은 다르다. 호흡의 리듬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빠질 때는 쉬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호흡의 리듬만 유지할 수 있으면 육체의 고통을 참으면서 오르는 게 산행”이라는 게 그의 등산론이다. 멀미 잘하는 ‘유전적 장애’가 평생 등산 사랑으로 이어져 서울이 고향인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등산을 즐겼다. 멀미가 심한 ‘유전적 장애’가 그를 걷게 만들고 산을 타도록 만들었다. 자신을 포함해 어머니·외할머니가 모두 멀미가 심한 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벌써 속리산 코스를 답파했고, 경기고 3학년 때는 선생님이 “방학 때 노는 친구 치고 좋은 대학 가는 것 못 봤다”고 겁을 줬지만 그는 설악산 등산을 다녀왔다. 고교 시절에는 아무런 등산 장비도 없이 그냥 밧줄 40m만 사 갖고는 북한산 록클라이밍 코스를 정복하기도 했다. 아무 보호 장비가 없으니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바위를 오르다 10m 정도를 미끄러지기도 했고, 3m 높이 암벽에서 손을 놓치고 떨어졌지만 요행히 몸의 앞부분이 먼저 땅에 떨어지면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머리부터 떨어졌으면 그는 그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회상한다. 이런 사고를 당한 다음에도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또 바로 등산을 계속했다. 이렇게 앞만 보고 전진 또 전진하는 그였기에 심 센터장이 이끄는 삼성서울병원 암센터는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최고·최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넘보는 위치까지 수직 상승할 수 있었다. “암 진단·치료 최대한 빨리 하는 게 환자 돕는 것”
암센터 직원만 2000명이 넘는 대형 조직이고 새로운 진료 시스템, 환자의 최대 만족 등 낯선 과제를 해결해야 했던 암센터지만, ‘산을 오르듯’ 고통을 참으며 앞서 나가는 심 센터장을 의료진과 직원들이 따르면서 오늘의 ‘삼성 암센터’를 만들어냈다. 그가 초대 암센터장을 맡으면서 내건 ‘등반 목표’는 “환자가 내원해 암 진단을 받고 치료 방침까지 아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을 일주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암 진단을 환자는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단 1초라도 빨리 암 덩어리를 없애고 싶어 한다. 전에는 암 환자에 대하여 오늘은 이 검사, 모레는 저 검사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지만, 암 환자에게 이는 못할 짓이라는 게 심 센터장의 주장이었다. 일주일 안에 확진과 치료방침까지 정하려면 모든 검사를 집중적으로 한꺼번에 해야 하고, 환자가 이 과, 저 과로 돌아다니면서 진단을 받을 게 아니라, 여러 전문의들이 환자 주위로 모여들어 진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서울삼성병원 암센터가 ‘가장 적게 방문하면서도 가장 빨리 결과를 알 수 있는’ 곳으로 명성을 얻은 비결이다. 이를 위해 심 센터장은 암센터 안에 질환별 외래 시스템을 따로 만들고 여러 전문의들이 협력해 진단하는 협진 시스템도 만들었다. “당신 암은 못 고친다”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서비스 그가 전문인 폐암 수술의 경우 조기 진단이 힘들기 때문에 “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찾은 사람은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돼 수술마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심 센터장은 이런 경우에 대해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진행돼 있다고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서비스”라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의료 서비스란 설명이다. 그가 그 동안 집도 한 폐암 수술만도 벌써 1500례를 넘겼고, 식도암 수술도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000례를 훨씬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심 센터장의 수술 성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심 센터장의 머리카락은 나이에 걸맞게 희끗희끗 ‘백설’이 섞여 있지만, 평생 등산으로 다져진 그의 몸매는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게 날씬하다. ‘군살 없이 전진하는’ 그의 모습과 삼성 암센터의 치올라가는 모습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