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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10년 동안’ 뮤지컬 할 겁니다”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발견된 ‘숨은 보석’ 박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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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56-157호 이우인⁄ 2010.02.08 17:15:33

1월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모차르트!>는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가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시아준수가 출연하는 공연의 예매분이 단기간에 모두 팔리는 기록을 세워 국내외 매체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주연에는 시아준수 외에도 임태경·박건형·박은태가 공동 캐스팅됐다. 뮤지컬 분야에선 이미 스타인 배우들이었지만, 이 가운데 지명도가 가장 떨어지는 배우는 박은태(29)였다. 그는 이번 <모차르트!>를 포함해도 다섯 작품밖에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뮤지컬 마니아 중에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박은태가 세 명의 ‘기성 스타’와 나란히 주인공에 캐스팅된 데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빌린 대작인데다 주인공 모차르트가 이 뮤지컬의 전부라고 할 만큼 비중이 큰 까닭이다. 대작이라 티켓 값도 비싼 편이기 때문에 주연 배우의 ‘티켓 파워’도 따라줘야 한다. 이 모든 조건에서 박은태는 너무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막이 오르자 놀라운 반응이 쏟아졌다. 박은태의 공연을 본 관객들은 새 스타의 발견에 감격했다. 각종 포털 사이트 동영상에는 ‘박은태 모차르트 커튼콜’이란 제목의 영상이 줄줄이 올라왔으며, 박은태를 ‘은차르트’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반겼다. 그의 공연 티켓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줄기차게 팔려 나갔다. 2월 1일 서울 이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은태는 <모차르트!>의 폭발적 인기를 실감한 듯 행복에 겨웠다. 스스로를 운이 좋은 남자라고 말한 그는 <모차르트!>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다져온 노래 실력, 작품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과 해석력, 무대에 임하는 진지함은 <모차르트!>가 아니었어도 그가 언젠가는 빛날 보석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박은태와 그의 삶, 뮤지컬,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그는 진지한 이야기에는 진지하게, 가벼운 이야기에는 가볍게 상황에 맞춰 대응할 줄 아는 절묘한 사람이었다. 큰 소리로 웃는 박은태의 모습에는 모차르트의 천진난만과 광기가 겹쳐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배우가 되기 전의 박은태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쪽(배우)에는 끼가 없었어요. 무대에서 나오는 모습은 부단한 연습을 거쳐서 나오는 끼죠. 나서는 건 좋아했지만, 남 앞에서 주도적으로 재미를 이끌어내고 노는 일은 못했어요. 그래서 죽어도 가수나 연예인은 못 하겠다 했죠.” -공부는 잘했나요?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고등학생 때 옆자리에 전교 1등이 있었는데, 그 녀석을 이겨보고 싶었어요. 이기려다 보니 열심히 하게 되더군요. 대학생 때는 학과 공부에 푹 빠진 적도 있고요. 다시 하고 싶진 않을 정도로 공부는 후회 없이 해봤습니다.” -경영학과를 전공한 점이 흥미롭군요. “고등학생 때까지 제 꿈은 경찰이었어요. 경찰대에 가고 싶었죠. 그런데 경찰대 시험에 떨어지고,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습니다. 서류심사에는 붙었지만, 신체검사에서 긴장했는지 고혈압으로 떨어지고 말았지만요. 경찰대와 육사가 아니면 무얼 하든 상관없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과가 경영학과였죠.” -한양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1년 강변가요제에서 <고백>으로 동상을 받았습니다. 이 대회에 출전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대학교의 한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요. 당시 강변가요제는 음악 동아리가 목숨을 거는 대회였습니다. 그냥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에 출전했는데, 운 좋게 상을 탄 거죠.” -노래는 원래 잘했나요? “잘하기보다 좋아했어요. 그런데 고음에는 콤플렉스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실수를 많이 하지만요. 고등학생 때는 노래방에 가면 ‘누가 고음을 잘 내나’ 하는 것으로 경쟁하곤 했는데, 저는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고음을 잘 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당시의 고민이 지금 와서 효과를 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요제에서 수상한 뒤 인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수상하기 전까지는 ‘감히 내가 가수를?’이란 생각을 했다면, 수상 뒤에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겼어요. 기획사와 녹음실도 적극적으로 찾고, 프로젝트 음반에도 참여해보고요. 좋은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죠.” -뮤지컬 배우가 된 이유는 뭔가요? “대학교 3학년 때 한 음반기획사에서 2년 동안 연습생으로 지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제 나이 스물 여섯이 될 때까지 앨범을 내긴 커녕 대학조차 졸업하지 못한 거예요. 기획사에서는 ‘너보다 어리고 잘생긴 애들이 많다. 노래는 곧잘 하는데 성시경보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임창정보다 웃기는 것도 아니고 뭐니?’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설 자리가 없었죠. 그러던 중 회사에서 뮤지컬 <라이온 킹>의 오디션을 제안하더군요. 운 좋게 오디션에 합격한 저는 일본의 극단 ‘사계’에서 객원 배우로 뮤지컬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때 가수를 준비하면서 느끼지 못한 행복한 기분을 처음 느꼈고요. 뮤지컬을 만들어가면서 ‘내가 꼭 튀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게 주어진 배역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차르트!>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떨어졌고, 가수 조성모 씨와 뮤지컬 스타 박건형 형, 임태경 형이 트리플 캐스팅됐죠. 그런데 조성모 씨가 하차하면서 제가 모차르트 역에 캐스팅됐습니다. 처음엔 정식 모차르트 역할도 아니었어요. 커버(주연 배우 대신 무대에 서는 일)로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고맙게도 회사에서 저를 사중 캐스팅 중 한 명이 되도록 밀어줬습니다.”

-단 몇 작품 만에 <모차르트!> 같은 대작 뮤지컬 주인공으로 낙점된 데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노트르담 드 파리>(이하 노담)의 ‘그랭구아르’ 역을 맡았을 때도 하늘에 ‘붕’ 뜬 기분을 느꼈는데, 이번엔 주인공이니 당연하죠. 뮤지컬 관계자 중에는 ‘네가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앞으로 뮤지컬 하지 마라. 대작에다 엄청난 작품과 뮤직 넘버를 갖추고도 주목을 끌지 못하면 네겐 더 이상의 자극은 없는 거다’라고 쓴소리를 하는 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말은 빨리 잊어버렸어요. 즐거운 마음으로만 하기로 했거든요. 왜냐면 부담을 갖는 순간부터 인터넷을 찾고 평을 뒤져서 보게 되니까요. 대본과 음악을 공부해야 할 귀중한 시간에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노담>과 <햄릿-월드버전>(이하 햄릿)에서 함께한 윤형렬과 주연·조연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형렬에게 너무 고맙단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형렬은 조연을 한다고 해서 아쉬워할 사람이 아니에요. <모차르트!>보다 더 좋은 작품에서 꼭 주인공을 할 배우죠. 그리고 저는 (서)범석 형이나 (배)해선 누나처럼 젊은 스타들이 나올 때 극을 빛낼 수 있는 연기력 탄탄한 배우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제가 <햄릿>을 다시 하게 된다면 그때는 형렬이 햄릿이고 저는 레어티스(<햄릿> 중 오필리어의 오빠 역)를 할 거고요.” -<햄릿>의 주인공 임태경·박건형과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자가 됐는데요. 이 또한 감흥이 남다를 것 같군요.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히 제가 따라갈 수 없는 연기를 해온 분들이거든요. 비교 자체가 너무나 죄송스럽고 어이가 없어요. 그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또 올지 모르겠어요.” -박건형·임태경·시아준수와 어떤 차이를 두고 연기합니까? “건형 형의 공연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베테랑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태경 형은 섬세하고 부드럽고 감수성이 뛰어나죠. 준수 씨는 모차르트에 가장 가까운 배우죠.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천진난만하고 어리바리하면서 계산돼 있지 않은 솔직한 모습이 정말 부러워요. 그들의 모차르트를 배우면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도 부담스러운 고음의 노래가 많은데요. 어떻게 연습하나요? “<모차르트!>의 노래와 대사는 ‘다다다다다~’ 하는 음표가 굉장히 많아 숨을 고르면서 정확하게 대사를 전달하기가 어려워요. 숨으로 단순히 밀어내는 수준의 노래가 아니거든요. 노력을 많이 했지만 지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요? “즐겁기만 한 걸요. 제 모토는 ‘닥치고 10년’인데요. 뮤지컬은 작품 가리지 말고 앙상블이든 조연이든 10년은 해봐야 사람들에게 제가 뮤지컬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죠. 솔직히 지금은 배우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요. 노래를 한 지는 10년이 조금 넘어서 제게 노래를 논하라면 할 말이 있지만, 연기나 춤 등 무대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 없어요. 그냥 지금은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열심히 할 따름입니다.” -<모차르트!>가 또 공연된다면 오디션을 볼 건가요? “끝까지 할 겁니다. 모차르트는 평생 가도 만나지 못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하면서 부족함과 더 하고 싶다는 욕구를 계속 느껴요. 안타깝게도 올해 서울에서는 7회밖에 오르지 못하고, 지방 공연에서도 몇 회밖에 못 올라서 아쉬워요. 100회는 하고 싶거든요. 그때쯤이면 모차르트가 제 안에 들어온 상태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뮤지컬이 있다면요? “솔직히 지금 제겐 <모차르트!>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박은태의 최종 목표는 뭐죠? “저의 최종 목표는 남경읍·이경미 선생님처럼 그 연배에도 뮤지컬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는 일입니다.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뮤지컬 배우로서 오래가고 싶습니다. 자기 발전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싶거든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차르트!>는 관람 뒤에 뭔가 하나는 가져갈 수 있는 공연입니다. 그것이 감동이든 음악적 충격이든 배우의 발견이든 뭐가 됐든 말이죠. 비싼 티켓 값이 아깝지 않게 하려고 모든 이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건성으로 하는 배우는 아니라는 모습을 앞으로도 무대에서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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