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2월 4일로 21일째 단식투쟁 중인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이날 오전 삭발한 머리에 수염도 깎지 않은 수척한 얼굴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대정부질문에 나서 정운찬 국무총리를 몰아세우며 대립각을 보여 관심을 끌었다.
양 의원은 이날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이어가면서도 정 총리를 ‘양파 총리’ ‘세종시 총대 총리’라고 몰아세우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에 정 총리도 “의원님의 단식에 마음이 아프다. 단식을 빨리 거두시고 건강을 추스르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정 총리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품격 있는 의원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적극 반격하기도 했다.
이에 양 의원은 “행정부처를 이전하면 나라가 거덜 날지 모른다”는 정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이미 과천에 7개 부처가 있고 계룡대에 3군 사령부가 있는데 나라가 거덜 난다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거짓말로 충청권에서 표를 도둑질했다. 대통령직을 내놔야 한다”고 하야를 주장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도 했다.
양 의원은 대정부질문을 끝낸 직후 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의료진이 검사를 한 후 단식 중단을 권하고, 영양공급을 위해 수액주사를 놓겠다고 알렸지만, 양 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단식 중에는 물과 소금 외에는 일체를 거부하겠다는 의사의 표시였다.
이에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이 상태로 방치하면 쇼크나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단식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수액주사를 맞을 것을 강권했다. 그러나 양 의원은 “그렇게 하면 단식을 하는 명분에서 밀리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세종시 원안 사수를 위한 나의 의지는 확고하며,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정신력으로 더 버티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는 2월 5일 현재 22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양 의원은 세브란스병원 182병동 61호 병실에서 2월 5일 오전 11시경
-그 총대를 왜 충청 출신인 정운찬 총리가 멘다고 보나? “정 총리는 국무총리가 되기 전까지 학자였다. 그러나 강력한 대선 잠룡으로도 분류되어왔다. 친이 세력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잠룡을 제거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이명박 정부와 정책 방향이나 노선이 전혀 다른 인물인 정 총리를 전격 기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용을 연못에 가둔다는 전략이다. 삼국지를 보면 조조가 유비를 부하장수로 삼아 유비의 품은 뜻을 펼칠 수 없도록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정 총리가 바로 연못에 갇힌 용 신세가 아닌가 한다. 정 총리에게 세종시 문제를 맡긴 이유는, 세종시 수정안이 성공하면 수도권 정치 기반 강화에 성공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득이 발생하고, 실패하면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 논란의 책임자로 또는 ‘매향노’로 낙인찍혀 향후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게 된다. 대선 잠룡을 제거하는 참으로 고도의 책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열린 여권의 고위 당정회의에서 세종시 법안을 3월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입법을 저지하는 수밖에 없다. 단식을 마치고 입법 투쟁의 채비를 갖추려고 한다.” -만약 정부 여당에서 계속 밀어붙인다면 어떤 각오로 임할 것인가? “그런 사태가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입법예고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언젠가는 표결을 할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국론 분열의 원인인 세종시 수정안을 매듭짓는 일이 국력을 아끼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본다. 세종시 수정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정부도 추진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세종시 논란은 정리되리라고 전망한다.” “단식하는 사람에게 만찬 초청장을 보내다니…”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나 친박계 의원들과 연대할 의향이나 계획은? “박근혜 전 대표가 신뢰·약속에 대해 요즘 자주 이야기하는데, 옳은 말이다. 정치는 국민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면 마다할 리 없다.” -정 총리가 왜 단식 중인 양 의원을 만찬에 초청했다고 보나? 어떤 술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작년 10월에 인사청문회를 했으니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3개월도 넘었다. 새삼 이제 와서 만찬을 하자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난다. 최근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반대 여론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누구든지 만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만찬에 초대하려는 숨은 뜻은 만찬을 빙자해 세종시 수정안 홍보를 하려는 것이다. 특히 나는 세종시 원안 사수를 위해 총대라도 메고 나서는 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이기 때문에 더 만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초청장을 받은 날이 1월 28일이었으니까, 단식한 지 14일째 되는 날이었다. 단식을 하는 줄 몰랐을 리가 없다. 내가 단식하는 줄도 몰랐다면, 총리실이 총리 보좌를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총리실장부터 문책할 일이고, 부하직원을 장악하지 못한 정 총리의 잘못이다. 단식하는 줄 알았다면 그런 초청장을 보내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만찬이 필요했다면 다른 날을 잡아 초청장을 보내는 것이 옳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초청의 이유도 인사청문 뒤풀이가 아니라 다른 주제로 잡아야 옳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혁신도시 분양가 인하 정책이 재탕 정책이라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세종시 수정안은 3.3㎡(평)당 227만 원에 조성된 토지를 대기업에게 36~40만 원에 주겠다는 파격적인 대기업 특혜안이다. 이 안이 혁신도시·기업도시 지역의 반발에 부딪히자, 세종시 수정 추진에 따른 역차별 논란을 피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전국의 혁신도시 분양가 역시 14% 인하하고, 지방 산업단지는 최대 20%를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원형지 공급 방식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010년 1월 6일 국토해양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도시기획과가 본 의원에게 제출한 <혁신도시 각 지역별 평균 용지 분양가> 자료에 따르면, 울산 혁신도시는 평당 297만 원, 대구는 284만 원 등이었는데, 이 분양가는 “자족기능 제고를 위해 사업 시행 초기에 대비하여 14.3% 인하된 목표 분양가격”으로 돼 있다. 이미 14%를 인하한 가격이었다는 말이다. 2010년 1월 현재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자료 자체가 이미 14% 정도 인하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자료인데, 정부는 혁신도시 토지 분양가를 별도로 14%를 인하하여 혜택을 주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14% 인하한다고 해도 혁신도시의 분양가는 세종시의 8배가 넘는다. 둘째, 혁신도시·국가산업단지의 인하된 분양가는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한다. 정부의 방침대로 혁신도시의 분양가를 14% 인하하면 대략 2조4000억 원의 수입이 감소한다. 수입 감소에 따라 적자가 발생하면 그것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세종시의 땅을 재벌에게 헐값으로 매각해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할 돈이 자그만치 7~8조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밝힌 바 있다. 부자에게는 세금혜택을 주고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세금폭탄을 안겨주는 이명박 정부다. 셋째, 전국적으로 동일한 혜택을 주면 역차별은 해소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세종시는 기업에게 주는 혜택이 사라져 세종시 수정안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수정된 세종시는 유령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혁신도시와 국가산업단지의 토지에 세종시와 유사한 할인 혜택을 준다면, 그동안 정부가 세종시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내놓은 세종시 특혜는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특혜가 없는 세종시에 어느 기업이 입주하려고 할까? 아마 없을 것이다. 혜택이 없으면 세종시에 입주하려는 기업이 없기 때문에 혜택을 줄 수밖에 없다고 정부는 주장해왔다. 그런데 역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정부가 동일한 혜택을 전국적으로 준다면, 세종시에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즉흥적으로, 졸속으로 계획을 수립하다 보니 딜레마가 발생한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수립한 국가 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톱니바퀴가 물리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던 작업이 그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세종시 원안 수정에 따라 온통 삐거덕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있다. 그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 대통령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