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인 눈매와 자세, 싱그러운 미소, 중저음의 점잖은 말투로 ‘단아한 배우’ 수식어를 꿰찬 배우 박하선. 그녀가 ‘단아한’ 이미지에 쐐기를 박을 배역으로 돌아온다. 월화 드라마 <파스타> 후속으로 3월 방송 예정인 MBC 창사 49주년 특별기획 <동이>에서 박하선이 맡은 역할은 인현왕후. 인현왕후는 조선시대 ‘팜므파탈’ 장희빈과 대비되는 기품과 곧음을 지닌 여인상으로 그동안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각인돼왔다. <동이>는 조선조 제21대 영조 임금의 생모이자 19대 숙종 임금의 후궁인 천민 출신 숙빈 최 씨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아들 영조 임금의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사극 전문 PD 이병훈 연출과 MBC <이산>을 집필한 김이영 작가가 의기투합해 벌써부터 ‘대박 드라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정된 대박 드라마인 만큼 출연 배우에 대한 관심도 높다. “역할이 뭐든지 간에 <동이>에 출연만 하면 스타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 아니겠느냐”란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MBC 사극 <동이>에서 톱스타와 어깨 나란히 <동이>는 한효주·지진희·정진영·배수빈·이소연·최철호 등 캐스팅도 화려하다. 모두 쟁쟁한 작품에서 타이틀롤을 경험한 톱 배우들이다. 인현왕후 역의 박하선에 대한 예감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숙빈 최 씨 역의 한효주, 장희빈 역의 이소연과 견줄 만한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누른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하선에 대한 첫 느낌은 ‘아! 정말 단아하구나’였다. 많은 여배우가 섹시함과 귀여움이란 양 산맥을 오르락내리락할 때 박하선은 단아함이란 새로운 우물을 팠고 라이선스를 따냈다. 우물에서 새로운 물을 끌어올리듯 그녀는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내 연기하는 배우다. 그러나 그릇은 단아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MBC 아침 드라마 <멈출 수 없어>에서 ‘악동 싸가지’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으나 미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는 배우로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말이에요(웃음). 그래도 꼭 악역을 연기하고 말 거예요. 끝까지 악랄한 역할 말이죠. 그리고 액션 연기도 꼭 하고 싶어요. 제가 보기와 다르게 운동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같은 과 동기인 윤소이 언니도 그렇게 말랐는데 액션을 잘하더라고요. 언니를 보면서 용기를 갖게 됐어요.” ‘단아하다’는 칭찬에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이미지의 한계 때문이다. “저 별로 착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세상에 완벽하게 착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선악은 공존하니까요. 그래서 악역이 더 인간적으로도 보일 때가 많아요.” 그러나 <동이> 캐스팅은 박하선의 단아한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박하선의 사진을 본 이병훈 감독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작은 역할에 캐스팅된 줄 알았던 그녀는 자신이 인현왕후에 발탁됐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병훈 감독님은 참 따뜻한 분인 것 같아요. 저를 중전마마로 불러주시죠. 얼마 전에 뵙고 돌아오는데 ‘중전마마 감솨감솨’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란 귀여운 문자도 보내주시고, 늘 중전대접을 해주신답니다.” 이런 특급 대우가 부담이 될 법도 한데, 박하선은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다. “중전 역할이다 보니 모두들 절 어려워해요. 중전 복장으로 세트를 누비면 중전 대접을 해주죠. 꼭 왕비가 된 기분이에요(웃음).” 2005년에 SBS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데뷔한 지 6년째를 맞이한 박하선. 2010년은 그녀의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엔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연극 <낮잠>에서 연극배우로도 데뷔를 마쳤다. 앞서 출연한 영화 <주문진>도 1월 21일 개봉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쁜 그녀를 붙잡고 연극 데뷔 소감과 <동이> 이야기, 그녀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와의 대화는 여고생들의 수다처럼 즐겁고 유쾌했다. -첫 연극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학교 다닐 때 두 번 정도 연극 무대에 오르긴 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웠어요. 이번 무대는 본격적으로 연극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거죠. 연출이 영화감독이라 영화 찍는 기분으로 무대에 서고 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 무대에 오르는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즉흥적으로 하는 무대라 긴장도 많이 되고 어렵기도 하고요.” -연극 프레스 시연회 기자간담회에서 학창 시절에 미움을 받았다고 말했는데요, 어째서죠? “지금은 첫인상이 조금 나아졌는데요, 예전엔 잘 안 웃었어요. 그래서 새치름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절 아는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모르는 친구들은 저를 많이 오해했어요. 공주 같아 보인다면서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루머에도 많이 시달렸어요. 제가 ‘떳떳하게 걸어 다닌다’ ‘내가 박하선이야’라고 말하면서 다닌다고요. 그런데 ‘도전! 골든벨’에 나간 뒤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김보민(KBS 아나운서) 언니와 예쁜 표정을 대결했는데, 정말 하기 싫었는데, 시켜서 한 거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절 욕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더라고요. 그 뒤론 버스를 못 타고 다녔어요. 친구들이 무서워서요. 돈도 없는데 택시 타고 등교했죠.”
-<왕과 나>에 이어 또 중전 역에 캐스팅됐는데요, 배역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인현왕후는 비운의 왕비인 것 같아요. 여자로서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인현왕후도 왜 질투를 안 했겠어요. 못 하는 입장이었던 거죠. 그래서 더 가련해요. 배역을 위해 <인현왕후전>과 <숙종실록>을 독파했는데요, 아무리 왕비이긴 해도 공사(公私)는 다를 거라 생각해요. 그녀의 인간적인 부분을 표현하려고 공부 중입니다.”
-쪽대본만 아니면 사극에 또 출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동이>도 쪽대본이 나온다면 어쩌죠?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멈출 수 없어>를 할 때 쪽대본이 나오면 연기하고 나서 울었어요. 연기를 하고 싶은데 암기를 해야 하니까 속상한 거예요. 10분 만에 외워서 연기하라고 하면 정말 미쳐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거부감도 생기고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배우들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김민정·이혜숙·박순애·김원희·박선영 등 역대 인현왕후 배우 중에서 기억에 남는 배우는 누군가요?
“김원희·박선영 언니를 본 기억이 나요. 어릴 때 봐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요. 하지만 저만의 인현왕후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기억으로만 남겨두고 참고는 안 하려고요. 다들 박순애 선생님의 인현왕후가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저 역시 그분처럼 기억에 남는 인현왕후가 되고 싶어요.”
-박하선은 어떤 인현왕후로 기억되고 싶나요?
“인현왕후는 왕한테 사랑을 받지 못할 때부터 백성에게는 인정을 받았대요. 실제로도 그런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인현왕후처럼 좋아하는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좋아하게 만들어야죠. 먼저 고백한 적도 있는 걸요. 저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더 좋거든요.”
-동이(한효주), 장희빈(이소연)과의 사이는 어떤가요?
“친해졌어요. 다들 성격이 좋거든요. 특히 소연 언니는 제게 말을 잘 걸어줘요. 언니와는 연애에 대해서도 많이 대화해요. 효주 언니는 대학교(동국대학교) 1년 선배라서 잘해주시고요. 동갑이라서 언니가 저한테 말을 놓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족보가 꼬일 것 같아서 언니라고 부르겠다고 했어요. 오히려 제가 동생이라니 언니가 더 잘해줘요. 여배우 중에는 유정이 빼고 제가 막내랍니다.”
-남편 지진희(숙종 역) 씨와는 친해졌나요?
“부드러운 이미지와 좋은 인상을 가진 분이에요. 굉장히 가정적이죠. 촬영장에서 아이들과 화상통화를 하는 모습을 자주 봤거든요. 그런데 저는 일부러 지진희 씨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숙종을 바라보는 인현왕후의 애틋함을 살리기 위해 지진희 씨를 볼 땐 힐끔힐끔 보고 있죠.”
-이병훈 감독은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각오는 돼 있나요?
“마음껏 굴리시라고 말씀드렸어요. 구르면서 배우려는 의지가 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감독님 팬이었어요. <허준> <상도>를 보면서 자란 세대라 감독님과 만나게 돼 영광이고 즐기고 싶어요.”
-<동이>가 성공할 것 같나요?
“잘될 거라는 믿음밖에 없어요. 저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웃음).”
-요즘 포털 사이트에 프로필을 고쳐달라고 하는 게 유행인데,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서요?
“예 있어요. 제 키가 165cm(실제 키는 164.8cm)인데, 프로필엔 167cm로 돼 있어요. 다들 5cm씩 높이니깐 저도 2~3cm씩 올린 거죠. 미팅할 때 누가 키를 물어보면 사실대로 말하지만요. 몸무게는 45kg에서 왔다갔다 하고요.”
-하선 씨에겐 콤플렉스는 없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배우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콤플렉스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질 않았죠.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단점이 보이더군요. 그래도 보는 즉시 고쳤어요. 얼굴이 커 보이거나 통통하게 보이면 경락도 받고, 치아 교정도 받고, 피부 관리도 받고요. 수술은 안 했지만, 시술은 했어요(웃음). 그리고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하고, 성격도 많이 고쳐서 좋아졌어요. 전엔 나밖에 몰랐거든요. 지금은 남들이 조금씩 보여요. 예전엔 나 살기도 바빴으니까요. 요즘엔 복지나 그런 쪽으로도 관심이 생겼어요. 돈을 벌면 기부도 하고 싶고요. 대학원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싶단 생각도 하고 있어요. 대학원은 늦게 갈 거예요. 왜냐면 바쁠 때는 제대로 못 다니니까요. 전공은 사회복지나 심리학,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글에 관련된 과목도 좋고, 연기 쪽도 좋고요.”
-’그냥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냥 배우는 어떤 배우죠?
“다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말하기가 그래요. 저는 배우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영화 <노팅힐>을 보면 줄리아 로버츠가 남들 앞에서 직업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그녀가 ‘나는 배우다’라고 말하는데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어요. 왜냐면 지금은 제가 배우라는 말을 하기가 애매하거든요. 꼭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출연작 100편을 남기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요, 몇 살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보나요?
“단편까지 다 합치면 15편에 출연했는데요, 원래는 40세가 될 때 멋지게 은퇴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이만한 직업도 없는 것 같아요. 평생 직업으로 갖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처럼 구직난에 시달릴 때 은퇴라뇨? 배부른 소리죠(웃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닮고 싶은 배우 말이죠.
“이미지만 두고 볼 때는 황정민·박휘순 선배고요, 제가 되고 싶은 배우는 정진영 선배입니다. 정진영 선배처럼 이웃집 사람 같고 오빠 같고 아저씨 같고 삼촌 같은 편안한 배우 말이죠. 여자 배우는 너무 많은데요, 영화 <텔미썸씽>의 심은하 씨 같은 분위기를 정말 좋아하긴 합니다.”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