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배우가 있다. 바로 KBS2 수목 드라마 <추노>에서 송태하(오지호 분)의 오른팔 곽한섬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조진웅(34)이다. 부산 토박이인 조진웅은 2001년 연극 <바리데기>를 통해 연기자로 당당히 첫발을 내디딘 뒤, 2004년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영화배우로 데뷔하며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형> <폭력써클> <강적> <비열한 거리> <야수> <쌍화점> <달콤한 거짓말> <부산> <날아라 펭귄> 등 지난 5년 동안 그가 출연한 영화는 여러 편. 그러나 그의 출연이 또렷이 기억나는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조진웅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은 지난해 방영된 KBS2 주말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그는 솔약국집의 이웃에 사는 브루터스 리를 연기했다. 당시 그는 오랜 외국생활이 몸에 밴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서툰 한국어를 연기하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했다. 시청자들은 그의 등장을 반겼고, 그의 출연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추노>뿐 아니라 그가 <솔약국집 아들들>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까지 일부러 찾아보는 열렬 팬도 생겼다. “그동안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었다면, <솔약국집 아들들>에 출연한 뒤부터는 절 많이 알아봐주세요. 덩치가 크다 보니 좁은 골목에서 만나면 놀라는 분도 있고요(웃음). 이 작품 때문에 ‘재미있는 사람’ 이미지가 생겼답니다.” <추노>에서는 충신 곽한섬으로 나와 배우 사현진과 안타까운 사랑을 연기해 많은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의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은 시청자를 울리고 감동시켰다. 이처럼 푸근하고 선한 인상으로 사랑받은 조진웅이 이번엔 아주 악랄한 인물로 돌변해 시청자의 미움을 부를 채비를 하고 있다. 3월 6일 첫 방송되는 송일국·한채영 주연의 MBC 특별기획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이하 신불사)에서 조진웅은 가문 대대로 악마의 탈을 쓴 장호를 연기한다. 장호는 주인공 최강타(송일국 분)의 부모를 죽인 인물 중 한 명인 장용(정한용 분)의 아들로, 다혈질에 폭력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다. 장용이 드러내고 처리할 수 없는 뒤처리들을 도맡아 하는 인물이다. “장호는 내면적으로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 있는 인물입니다.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죠. 아픈 가슴은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김민종 씨가 연기하는 황우현이 서늘한 악역인 반면, 저는 무식하고 다혈질에다 일방통행밖에 모르는 악역이에요. 좋아하는 여자도 나를 좋아해주든 말든 나만 좋아하면 된다고 생각하죠. 외면적으로는 재벌 2세니까 VVIP(아주 중요한 인물) 같은 스타일을 추구하고요. 지금의 제 옷이 장호의 의상인데요, 어떤가요, 비싸 보이나요?” <신불사> 캐스팅이 확정되고 며칠 뒤에 만난 조진웅은 자신이 분석한 장호의 인생과 내면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앞으로 받을 시청자의 미움이 두려울 법한데도 그것마저 새로운 경험인 양 시종일관 흥분된 모습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선해보이는 외모의 소유자인데 악역에 캐스팅된 점이 의외입니다. 어떻게 캐스팅됐나요? “제작사 측에서 먼저 제의가 왔고요, 저도 평소에 악역 연기에 욕심이 있었어요. 장호라는 인물은 재벌 2세에다 무식한 전형적인 악인이죠. 그렇지만 저는 전형적인 악역 말고 조금 더 디테일을 살려 연기하고 싶어요. 막상 잘 안 나오면 어쩌지 하는 고민도 있지만요(웃음).” -박봉성 화백의 원작 만화는 봤나요? “원작은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만화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고요. 물론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보고 싶기도 하지만, 봐버리면 제한된 연기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악역 연기는 정말 처음인가요? “연극을 할 때는 몇 번 했는데요. 깡패 같은 역할 빼곤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악역이란 <추노>의 황철웅(이종혁 분) 같이 스토리텔링에 기여하고 드라마의 흐름에 주축이 되는 인물입니다.” -장호와 자신의 닮은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장호의 나쁜 모습은 제게도 분명 있어요. 어릴 적 일인데요, 어느 날 아침 7시35분에 정확히 나가야 하는데, 엄마가 도시락을 40분이 넘게 싸는 거예요. 화가 난 저는 ‘도시락 안 먹어’라고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고는 집을 나섰죠. 엄마는 버스 정류장까지 쫓아와서 도시락을 주셨어요. 그랬지만 저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가라’고 윽박질렀죠. 엄마가 싫은 게 아니라, 사춘기 때인데다 그날 상황이 묘하게 꼬여서 그랬던 거였어요.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안 좋은 거예요. 그 일 때문에 하루가 꼬이게 된 거죠. 하루 종일 엄마한테 미안했지만, 화낼 때는 아마 장호보다 더 나쁜 놈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한텐 이런 면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진 법만 지키면 되지 착하게 살 필요가 뭐 있느냐’라고 생각한 사람이 접니다. 그런데 <솔약국집 아들들>을 찍으면서 그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대본 리딩 때 작가님이 ‘조금만 착해집시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촬영하면서 제가 서서히 그렇게 되더군요.”
-그동안 독특한 캐릭터 설정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설정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강타나 장호나 살아온 환경이 일반적이지 않아요. 센 놈끼리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하려고 고심 중이에요. 대학교 다닐 때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이 기자 시절 김두한을 인터뷰하러 갔던 일화를 이야기해주셨어요. 당시 교수님은 김두한의 근황을 물으러 간 거였죠. 김두한 집 거실에 앉아 있는데 한참이 지나니 김두한이 나오더랍니다. ‘떡떡’ 걸어 나오는데 기자 신분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포스(force)와 아우라를 뿜었다는군요. 식칼로 찔러도 안 들어갈 것 같은 육체와 눈빛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표현하셨어요. 장호가 아무리 까불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땐 김두한처럼 묵직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표현하고 싶어요.”
-캐릭터를 설정할 때는 뭘 참고하나요?
“인터뷰에서 참고합니다. <비열한 거리>를 할 땐 강남구 논현동의 깡패들을 인터뷰하고 다녔어요.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죠. 살이 떨리더군요.”
-무명 생활이 긴 배우였는데요, 배우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겠죠?
“그런 적은 없었어요.”
-집에서는 반대하지 않았나요?
“있었죠. 그래도 아버지가 절 믿어주셨어요. 아버지는 제게 ‘예술이란 작업이 너무나도 고된 벽을 뚫고 올라가야 (세상이) 주목할 텐데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서른이 되기 전까진 아버지 말씀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아버지가 믿어주셔서 그런지 (연기를 할 때) 무게감이 실리는 건 사실이에요. 진중해지기도 하고요.”
-본명이 조원준인데요, 어째서 진웅이란 가명을 사용하게 됐나요?
“사실 조진웅은 아버지 성함이에요. 아버지를 존경한데다 진웅이란 이름이 마냥 좋았어요. 제 이름의 한자를 알기 전에 아버지 이름 한자를 먼저 쓸 정도였죠. 7년 동안 연극을 할 때는 원준으로 활동했는데, 영화로 데뷔할 때는 아버지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어요. 왠지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첫 영화 크레디트에 아버지 이름이 올랐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이젠 가져갈 게 없어서 내 이름까지 가져가느냐. 마음대로 해’라며 선뜻 빌려주셨어요. 아버지 이름으로 활동하니까 마음을 다잡게 되고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좋은 점이 참 많아요.”
-출연작 중에서 애착이 가는 작품은 뭔가요?
“모든 작품에 다 애착이 가서 하나만 고르기 어렵네요. <말죽거리 잔혹사>는 단역이었지만 저의 데뷔작인데다 유하 감독과 이종혁 씨 등 지금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을 모두 만났거든요. <국가대표> 최재환도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저와 함께 데뷔했어요. 재환이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뿌듯하더군요.”
-최근 프로필을 수정하는 일이 유행인데요, 고치고 싶은 프로필이 있다면요?
“몸무게를 85kg으로 고치고 싶은데 될까요(웃음)? 농담입니다. 살찔수록 배역이 좋아져서 지금은 뺄 생각이 없어요.”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닮은 캐릭터는 없고, 닮고 싶은 캐릭터는 있어요. 바로 영화 <폭력써클>의 조홍규라는 인물이죠. 홍규는 의리가 있고 옆에 있기만 해도 듬직한 친구거든요. 실제로 제겐 그런 친구가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인데요, 덩치도 저만하죠. 제가 돈이 없을 때 그 친구 집에 가면 밥도 주고 돈도 주고 내색하지 않고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그 친구를 보면서 홍규를 연기했죠.”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습니까?
“죽기 전까지 연기를 잘하고 싶어요. 예전에 한 아침 방송에서 윤문식 선생님이, 내가 죽으면 묘비에 ‘여기에 광대 하나 누워 있네’라는 비석이 세워져 지나는 사람들이 ‘이 광대 참 재미났지’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오더군요. 저 역시 그런 배우가 되고 싶으니까요.”
-연기 말고 다른 분야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요?
“여자 친구가 유치원 선생인데요, 그녀를 보면서 나중에 예술학교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물론 대학교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거든요. 해외 교육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고요.”
-10년 뒤에 조진웅은 어떤 배우가 돼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까?
“기대가 많은 배우가 돼 있을 것 같아요. 꿈이기도 하고요. 송강호 선배처럼 개봉 전부터 대중의 관심을 일으키는 배우 말이죠.”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