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눈 감아 봐도>로 데뷔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여고생 가수 박준희(35). 오래 전 소속사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가요계를 홀연히 떠난 그녀가 이번엔 가수가 아닌 작가 타이틀을 달고 대중 안으로 들어왔다. 박준희를 작가로 데뷔시켜준 <음악 또라이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션 아홉 명의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으로 담담히 써내려간 에세이집이다. “처음 책을 내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저의 에세이를 쓰라는 권유 때문이었어요. 그렇지만 제 이야기를 책으로 쓰자니 너무 부끄럽고 자신이 없었죠. 제 책을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우습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뮤지션들의 책을 쓴 이유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솔로 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1996년 1년 동안 댄스 그룹 콜라의 보컬로 활동한 박준희는 현재 신인가수 보컬 트레이닝과 추계예술대학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교육자다. “저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라는 숙제를 곧잘 내주는데요, 숙제를 내주면서 배우를 다룬 책은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뮤지션을 다룬 책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집필 작업. 어릴 적에 가수와 작가가 꿈이었다는 박준희는 가수의 길을 접은 뒤 또 다른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 서일대 문예창작학과와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 다니며 글 쓰는 기본기를 익혔다. 매니저·코디네이터·인터넷 방송국 PD·작가·음반기획사 기획팀장 등 가수 외에 다양한 인생 경험도 쌓았다. “노래 하나만 포기하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멋진 나무가 되기보다 멋진 숲을 만드는 일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죠.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많아지더군요.” 집필 1년 3개월 만에 탄생한 <음악 또라이들> 속 뮤지션 아홉 명은 굴곡진 삶 속에서 좌절을 견디고 지금의 자리를 잡기까지 자신의 삶과 성공 과정을 이야기한다. 음악 후배를 향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김태원·윤일상·신대철·박미경·말로·조PD·전제덕·현진영·남경주. 이들의 이야기에는 단물과 쓴 물이 적절한 배합으로 버무려져 있다.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때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때론 존경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쁘다’고 치부하면서 진실을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기 쉬운 뮤지션들의 어두운 과거에서도 후회를 동반한 이해가 싹튼다. <음악 또라이들>은 한 번 펼치면 손 넘김이 멈추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감동과 교훈도 있다.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란 믿음도 생긴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박 씨의 지하 작업실. 예비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나다는 설렘을 안고 찾아간 그곳에는 톱스타 박준희가 아닌 작가 박준희가 있었다. 예쁜 외모와 함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인상과 차분하면서도 강약이 분명한 목소리, 진지한 눈빛, 뚜렷한 주관 등은 인터뷰하고 1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녀를 또렷이 기억하게 한다. 정말로 글 잘 쓰는 작가가 되는 게 목표라는 박준희와 그녀의 첫 작품 <음악 또라이들>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작가로서 완성한 책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책이 처음 집으로 도착했을 땐 담담했어요. 그런데 책을 가지고 엄마가 계신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펼쳐볼 때는 가슴이 울컥하더군요. 어떤 느낌인지도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죠. 그러나 곧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가 프로필을 가질 수 있게 돼서 참 행복해요.” -<음악 또라이> 외에 제목 후보로는 어떤 게 있었습니까? “물론 있었어요. <명품 또라이>도 있었죠(웃음). 저는 <더 뮤지션>이란 제목을 밀었어요. 왠지 ‘the’란 단어가 들어가면 멋있고 뭔가 대단한 전문서적 같아서요. 그런데 출판사가 교보문고·인터파크 같은 대형서점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많은 제목 가운데 <음악 또라이>가 가장 반응이 좋았대요. 기억에 남고 튄다고요. 어린 친구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책이었기 때문에 결정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책 쓰기가 힘들진 않았나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인터뷰해서 일인칭으로 쓰는 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쓸 때보다는 수정하는 일이 더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쓰면 이 아홉 명이 더 좋게 보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수정을 많이 했거든요.” -아홉 명을 한 책에 정리하다 보면 그 안에서도 경쟁이 일지 않았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수정할 때는 당사자 것만 보여줬기 때문에 다른 뮤지션의 이야기를 그들이 알 리가 없죠. 그리고 저는 그분들이 해준 이야기만을 토대로 썼기 때문에 그들도 뭐라고 할 순 없을 거예요. 혹시라도 생길 경쟁을 우려해 장르가 다른 인물을 선별하기도 했고요. 로커 김태원 씨가 뮤지컬 배우 남경주 씨를 질투할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제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의 글에는 아무래도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갔죠.” -처음이라서 힘든 점은 없었고요? “글 쓰는 일은 이미 습작과 시나리오 집필로 충분히 준비운동이 돼 있어 힘들지 않았어요. 단지, 좋아해줄 거라 믿고 쓴 글에 대해 (뮤지션으로부터) 다른 반응이 나오거나, 수정할 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서 수정과 삭제를 요구할 때는 당황한 적이 있어요. 물론 이미지 관리 때문에 제 글이 마음에 안 들 순 있지만, 마음이 상하는 소리를 하거나 인쇄 직전에 자신의 글을 빼달라고 할 때는 ‘진작 검사를 받을 걸’하는 후회가 밀려오더군요. 칭찬받을 줄 알았다가 혼나는 기분 아시죠? 정말 우울했어요.” -인터뷰는 어떤 방식으로 했습니까? “처음엔 받아서 적었는데, 나중엔 녹음했어요. 상대의 눈을 보고 이야기해야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고 질문 이외의 이야기도 나올 수 있거든요.”
-많은 뮤지션이 참여한 점이 특이합니다. 같은 뮤지션이기 때문에 섭외할 때 이점이 많았겠어요?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는데, 작곡가 윤일상 씨가 많은 도움을 줬어요. 윤일상 씨가 제 곡으로 작곡가 데뷔를 해서 친분이 있거든요. 박미경 언니와는 그룹 콜라 때 같은 회사여서 연락이 닿았고요.” -인물 선정은 어떻게 했나요? “장르를 구분해놓고 한 장르를 20년가량 해온 사람들, 성공과 좌절을 맛본 사람들을 골랐어요. 다이내믹하게 살아온 사람이어야 했죠. 고생 없이 성공한 가수나 침침한 과거가 있는 가수들은 책으로 내기에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뺐고요. 인터뷰를 하다가 실망스러운 부분이 느껴지거나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 사람도 뺐어요. 그리고 계약에 자유로운 사람들을 선호했고요. 그런데 뮤지션 선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이런 책을 쓸 건데 같이 해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을 때 굉장히 적극적으로 즐겁게 임해준 사람들이었어요. <음악 또라이>의 아홉 명은 섭외를 시도한 40명의 뮤지션 가운데 이러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선정된 훌륭한 사람들이랍니다(웃음).” -섭외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갑자기 인터뷰를 하던 중 연락이 두절된 사람이 있어요.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당황스러웠죠. 서로 좋자고 한 일인데 우월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고요. 인터뷰하면서 기자들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존경하는 음악 선배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책이라면서 조PD의 등장은 의외입니다. “조PD는 ‘인터넷으로 성공한 뮤지션’이란 사례로 넣었습니다. 현대에서 이뤄질 수 있는 표상이니까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밖에 나오지 않아도 준비된 사람이면 우연치 않게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요즘 은퇴설도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면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책을 집필할 때 가장 많이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군가요? “친언니예요. 언니는 솔직한데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어서 도움이 많이 돼요. 자는데도 깨워서 글을 봐 달라고 재촉한 적도 있죠. 언니의 반응을 기다리는 일은 정말 긴장됐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요. “공지영 작가의 책은 최근의 <도가니>까지 거의 다 읽었어요. 박완서 작가의 글도 참 좋아하지만,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는 쪽은 공지영 작가 책이라고 생각해요. 지루하지 않아서 읽기가 좋거든요.” -90년대 초 박준희를 지금의 아이돌에 비교한다면 누가 떠오르나요? “이미지로만 봤을 땐 손담비나 박지윤을 닮았다고 하시는 분이 많아요. 박지윤이 저처럼 어릴 때 가수로 나왔기 때문인지 친구들이 박지윤을 보면 제가 생각이 난다고 하더군요.” -가수로 힘든 시기를 겪은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뭔가요? “아이들이 ‘교수님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할 때가 많은데요, 저는 그때마다 ‘나처럼 살아봐’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길을 쉽게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진 않거든요. 겪어야지만 깨닫는 일이 있고, 길을 잃으면서 살아보는 일도 좋답니다. 그 힘겨운 시간이 명상할 시간을 주니까요. 명상을 한 만큼 성숙해지고요. 그리고 힘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현명하게 판단할 때는 책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모든 책이 성경책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연히 잡은 책 한 권에서 답을 얻을 수도 있거든요. 저는 공지영 씨 책에서 답을 많이 얻고 편해졌죠.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하면, 보컬 선생이 무슨 책 숙제를 내주느냐면서 욕을 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아이가 더 많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음악인으로 성공하려면 성공과 실패 과정 속에서도 정말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자극을 주고 싶고, ‘이 정도로 할 자신이 없으면 음악을 그만둬라’하고 싶은 두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돌 가수들에게 ‘너희도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시련을 겪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해야 한다. 극복하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현재 집필하고 있는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음악 관련 책, 그리고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재미있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도서관에서 1500권을 빌려서 읽었다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를 보면서 ‘나도 잘하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어’라고 쉽게 생각한 오만함을 질책하게 됐어요. 그래서 올해는 책 100권을 읽는 게 목표예요. 그리고 앞으로 <음악 또라이들>을 시리즈로 내는 일에 고민할 생각이고요. ‘또라이들’ 시리즈를 10권 정도 내면 90명과 대화를 나눌 테고, 그때가 되면 제 ‘글발’도 좋아져 있을 거예요. 그때는 좀 더 좋은 글이 나오겠죠? 남의 인생을 보면서 새로운 인생도 경험하고요. 작가로서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을 때는 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도 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음악을 하는 아이들뿐 아니라 꿈을 가진 아이들에게 자극이 되는 책입니다. 돈이 아깝지 않게 할 자신은 있습니다. 꼭 읽어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