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기자 desk@cnbnews.com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장기 기증이 크게 늘었지만, 아직도 국내 수요에 비해 공급되는 장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각막 기증만 해도 작년 11월까지 186명이 기증해 2005년보다 1.4배나 늘었다고 하지만, 각막 기증을 기다리는 대기자 2만여 명을 생각하면, 국내 공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의료진은 미국으로부터 각막을 들여오지만, 장거리 수송으로 각막 세포가 일부 손상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 등이 있다. 각막 이식을 받기 위해 환자가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평균 6년’이라는 점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라식 수술(레이저 광선으로 각막 표면을 일부 깎아내 시력을 교정하는 방법)이 널리 행해지면서 사용 가능한 각막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라식 수술을 받은 각막은 장기 기증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서울대병원 영장류연구센터의 박정규 센터장(미생물학교실 교수) 등 연구진이다. 이곳 연구진은 돼지의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돼지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바로 사람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원숭이에게 돼지 각막을 이식해 면역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돼지 각막을 원숭이에게 이식해 6개월 이상 문제가 없어 안전한 것으로 확인돼야 비로소 사람에게 돼지 각막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해 임상시험을 하기 전에 반드시 원숭이 실험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이유는 돼지에게만 있는 바이러스가 혹 사람에게 전이돼 치명적 결과를 일으키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에서 각막 수입해 수술하는 데 대기 기간만 6년 돼지 각막을 원숭이 실험을 거쳐 사람에 이식하면 각막 부족 문제 단번에 해결할 수 있어” 모든 동물에게는 그 동물에게만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 ‘내인성(內因性) 바이러스’라 불리는 종류다. 각기 다른 동물에게 따로 존재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보통 다른 종류의 동물에게는 옮겨 가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어떤 특정한 경로나 계기를 통해 한 동물의 내인성 바이러스가 다른 동물에게 옮겨질 경우, 그 바이러스에 대한 아무런 대항 수단(면역성)을 갖지 못한 피해 동물에게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작년에 전 세계를 일대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신종플루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세계보건기구가 나중에 ‘신종플루’로 이름을 바꿨지만, 처음 명칭은 ‘돼지독감’이었다. 돼지·새에게만 존재하는 바이러스가 우연한 경로로 사람을 공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돼지독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됐던 이유가 바로 내인성 바이러스의 전염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무리 돼지 각막이 많다고 해도 다짜고짜 사람 눈에 실험할 수 없는 것도 이 같은 내인성 바이러스 감염의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의학·과학자들은 다른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하기 전에 반드시 원숭이 실험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합의를 도출해냈다. 그리고 미국·일본 같은 선진국보다 훨씬 떨어진 원숭이(영장류) 연구를 쫓아가기 위해 작년 7월에 만들어진 연구소가 서울대병원 영장류연구센터다. 이제 갓 1년이 됐지만, 이 영장류연구센터는 지난 7월 9일 국제실험동물관리평가 인증협회 실사단의 현장 검사를 받아 자격을 갖춘 영장류연구소로 완전 승인을 받았다. 실사단은 영장류연구센터의 동물 관리 상태 등을 중점적으로 검사한 뒤 승인을 내줬다. 국제실험동물관리평가 인증협회는 실험 동물 관리에 관해 인증을 내주는 권위 있는 인증기관이다. 박 센터장은 돼지 각막의 원숭이 이식 임상시험 진행에 대해 “성공적으로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며 “8월 16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릴 세계이식학회 학술대회에서 우리의 연구 성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돼지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해도 안전한 것으로 판명나면, 실제 이식수술은 2~3년 내에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박 센터장은 내다봤다. 지금은 환자들이 각막 이식을 받으려면 6년씩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서울대 영장류연구센터 등의 연구 실적이 축적되면 앞으로 몇 년 안에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돼지 각막을 이용해 각막 부족 현상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현재 서울대병원 영장류연구센터는 붉은털원숭이(rhesus monkey) 42마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3마리 정도는 뇌 기능 연구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동물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전단계 연구에 동원하고 있다. 돼지 각막 이식 이외에, 연구센터가 역점을 기울이는 또 한 가지 과제는 돼지 췌도(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세포)를 원숭이에게 이식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연구다. 이 연구 역시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2012~13년쯤이면 돼지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해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박 센터장은 밝혔다. 당뇨병은 현재 가히 ‘국민병’이랄 정도의 위치에 와 있다. 당뇨병 전문의인 김광원 삼성서울병원 내과 교수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 4명 중 1명이 당뇨병 위험 지대에 놓여 있다. 10명 중 한 명은 벌써 당뇨병 환자이고, 비만 등으로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15%나 되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은 ‘불신지옥’을 말하지만 의사들이 ‘당뇨지옥’을 말하는 이유다. “한국인 4명 중 한 명은 ‘당뇨지옥’에 처한 상태에서 돼지 췌도를 이식하는 원숭이 실험 성공하면 2012~13년에는 당뇨병 완치도 가능해질 것” 당뇨병은 크게 1형과 2형 두 가지로 나뉜다. 1형은 선천적으로 인슐린을 생산 못하는 병이고, 2형은 후천적 요인으로 인슐린의 생산·수용 등에 문제가 생기면서 혈당이 올라가는 병이다. 박 센터장은 “한국인의 경우 1형도 아니고 2형도 아닌 1.5형 당뇨병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도는 정상적으로 존재하지만, 인슐린 생산 능력이 떨어져 필요한 양의 30% 정도밖에 공급하지 못하면서 당뇨 증세가 일어나는 환자들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돼지의 췌도를 이식해 주고, 다른 동물의 장기가 인체 속으로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면역거부반응만 막아줄 수 있으면, ‘당뇨지옥’에서 전원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 박 센터장의 설명이다. 돼지 췌도를 원숭이에게 이식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실험은 이미 미국에서 꽤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에모리대학 연구진이 강한 면역억제요법(다른 동물의 장기가 이식됐을 때 일어나는 면역반응을 줄이는 치료법)을 적용하면서 돼지 췌도의 원숭이 이식 실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미국 연구진의 실험은 상당한 한계도 갖고 있다. 너무 강한 면역억제요법을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 서울대병원 영장류연구센터 연구진은 더 약한 면역억제요법을 쓰면서 돼지 췌도를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식한 뒤 25일 정도가 지난 상태를 관찰하고, 추가로 60일이 더 지나도록 돼지 췌도가 정상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안전성이 확인되면, 다음 단계로 인체 이식 임상시험에 돌입할 수 있다. 돼지의 각막·췌장을 이용한 이식 실험이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 축적 때문이다. ‘무균돼지’로 불리는 실험실용 돼지를 세계 연구진이 만들어내 사람에게 안전한 유전형질을 갖춘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무균돼지의 장기 크기는 사람의 장기와 비슷하므로, 돼지의 각종 장기를 원숭이 실험을 거쳐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게 되면, 낡은 장기를 안전한 돼지 장기로 바꿔치기하면서 인간은 더욱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고장난 장기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방식으로는 동물 장기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도 ▲줄기세포를 이용해 아예 새 장기를 만들어내는 방식 ▲인공심장처럼 기계로 새 장기를 만드는 방식 등도 있다. 그러나 큰 기대를 모았던 줄기세포 관련 연구가 아직은 초기 단계이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높은 편이다. 인공장기 역시 최초의 인공심장이 시도된 시기가 1960년대이니, 그동안 숱한 도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만족할 만한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원숭이를 이용한 동물 장기 이식 연구는 가까운 시일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어 기대를 모으며, 이런 측면에서 서울대병원 영장류연구센터 역시 관심의 초점이 된다. 박 센터장은 영장류연구센터의 향후 진로에 대해 “수천 마리씩 원숭이를 기르며 실험하는 미국·일본 수준을 따라가려면 아직 할 일이 많다”며 “현재 주로 중국에서 원숭이를 수입해 사용하는데 중국산 원숭이의 품질이 대체로 낮은 편이기 때문에 한국 자체적으로 좋은 원숭이를 만들어내는 노력도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원숭이는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품질’이 아주 중요하다. 잘 생산한 실험용 원숭이는 연구진의 여러 실험을 잘 따라오고, 시술을 해도 잘 참는다. 그러나 품질이 안 좋은 원숭이는 연구진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실험을 어렵게 만든다. 박 센터장은 “우리가 품질 좋은 원숭이를 생산해내 우리 자체 실험에 사용하고 또 해외로 수출할 수 있도록 한다면 수익을 올리면서 각국의 장기 이식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