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남은 갈비 좀 싸주세요” 점심 식사 손님으로 북적이는 서울 광진구의 한 갈빗집. 점심 식사로 갈비를 먹은 강두희(28) 씨는 종업원에게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주문한다. 바쁜 점심 시간에 남은 음식을 싸 달라는 쪽은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싸줘야 하는 쪽도 귀찮아하기보다 당연하다는 반응. 종업원은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는 손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행운권을 건넨다. 보통 음식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진풍경은 그러나 서울시 광진구의 식당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광진구청은 2008년 10월부터 ‘남은 음식 싸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음식물 자원 낭비를 줄이고 처리 비용을 절감할 목적으로 구청에서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1만5000여 톤. 유통과 조리 과정에서 발생되는 식재료 쓰레기 57%를 제외하면, 하루 32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쓰레기 신세가 된다. 녹색성장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자원·에너지 낭비 등 경제가치 손실을 따져보면 2005년 기준으로 18조 원이나 되고, 2012년에는 2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20%만 줄여도 연간 5조 원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음식물 싸주기 운동의 장점은, 소비자는 남은 음식을 싸갈 수 있고, 식당 업주는 남은 음식 ‘재사용’ 유혹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때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남은 음식을 아껴서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고, 환경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광진구 직장인 김성근 씨 “전에는 시킨 음식을 억지로 다 먹었지만, 지금은 남으면 싸갈 수 있어 느긋하게 먹어요.” 그러나 식당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다. 중곡동 ‘장군갈비’의 정우성 지배인은 “처음에는 직원들이 귀찮다는 반응을 보이고 바쁠 때는 번거롭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전 직원이 익숙해졌고, 버리는 것보다 바쁜 게 백 번 낫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갈비를 팔아온 이 식당은 음식물 싸주기 운동에 동참하면서 반찬 가짓수를 6개에서 4개로 줄였다. 지금은 하루 평균 10회, 한 달 평균 300회에 이를 만큼 음식물 싸주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남은 음식을 싸주기 위해 직원들은 음식을 들고 주방을 들락날락거렸다. 위생상 문제 때문에 식탁에서 남은 음식을 포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직원들이 “일이 더 늘었다”고 불평했지만, 이제는 주방에서 손님들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낸다. 정 지배인은 “우리가 조금 더 움직이면 절약이 되기 때문에 이득”이라며 “음식물 싸주기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돼 남은 음식을 싸 달라는 손님이 미안해하거나 창피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 해물찜 식당 ‘선학’의 민상헌 사장도 음식물 싸주기 운동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업주 중 하나다. 그는 음식물을 남긴 손님에게 먼저 “싸가시라”고 권하는가 하면, 구청에서 준 포장 용기 외에 자신이 국물과 반찬통을 따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남은 음식을 싸준다. 민 사장은 “우리 식당의 반찬은 백김치와 열무김치 두 종류뿐”이라며 “반찬이 많은 상차림은 푸짐해 보여도 원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이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찬 가짓수가 많으면 당장 보기에는 좋지만, 젓가락이 가지 않는 반찬이 있게 마련이다. 차라리 반찬 가짓수를 줄여 질을 높이는 게 식당에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민 사장의 식당도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남은음식물 싸주기 운동에 참여하면서 쓰레기 처리 비용을 10%나 낮췄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와 처리 과정이 다르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값에 농장 사료 처리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 남은 음식을 농장에 갖다 주면 농장에서는 이를 가축 사료로 사용하는데, 이때 식당이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중곡동 한 갈빗집의 경우 한 달에 농장에 주는 돈만 50만 원이 넘었지만, 음식물 싸주기 운동을 시작한 뒤 35만원으로 줄었다. 해물찜 식당 주인 민상현 “음식물 싸주기 운동 뒤 반찬 가짓수 줄여 맛나고 신선한 반찬 내놓으니 칭찬받고, 쓰레기 처리 비용도 절반으로 줄어 좋아요.” 광진구에서는 정 지배인이나 민 사장처럼 ‘남은 음식 싸주기 운동’에 참여하는 음식점이 700곳에 이른다. 구청은 모범업소에 싸주기 용기 및 봉투를 지원하고 홍보 포스터 및 홍보물을 나눠준다. 남은 음식 싸주기 용기는 단단한 플라스틱 재질이어서, 음식을 먹은 뒤에는 가정에서 반찬통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용기를 담아 가는 봉투도 따로 만들었다. 광진구청 보건위생과 류경현 식품위생팀장은 “음식 담는 용기만 나눠줬더니 식당 주인들로부터 일부 손님들이 창피해한다는 의견을 받고 봉투도 디자인해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좋다. 김미영(광장동·32) 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만 남은 음식을 포장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아귀찜이나 낙지볶음·닭갈비 같은 한국 음식도 포장해주니 외식하다 남은 음식이 있으면 꼭 싸갖고 온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성근(구의동·38) 씨도 “그동안은 주문한 음식이 남을까봐 아까워서라도 억지로 다 먹었다. 지금은 웬만한 동네 음식점에서도 남은 음식을 싸주기 때문에 남겨도 걱정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물 싸주기 운동 전만 하더라도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말하기 창피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광진구는 건국대학교입구, 구의2가로, 자양4동 양꼬치거리 등 세 곳을 중심으로 남은 음식물 포장 용기와 봉투를 식당에 제공하고 있다. 구청 측은 식당의 신청을 받아 1년에 한번 용품을 지급한다. 또 용기를 지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도와 점검에도 나선다. 전담팀 10명이 5개 조를 이뤄 한 조가 한 달에 120곳을 살핀다. 용기와 봉투를 지급받고도 쓰지 않는 식당으로부터 용기·봉투를 수거해 필요한 음식점에 나눠준다. 이렇게 광진구 내 음식점이 손님들에게 남은 음식을 싸준 양은 월간 기준으로 2008년 12월 200개 식당 960kg에서 2010년 7월 657개 식당 5232kg로 늘었다. 2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실적이 5.5배로 늘어난 결과다. 같은 기간 포장해간 음식을 돈으로 환산하면 8371만 원 정도 된다. 쓰레기 처리비까지 생각하면 절약 금액은 1억 원을 훌쩍 넘어선다. 광진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음식물 싸가기 실천 고객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남은 음식을 싸간 고객이 식당에서 받은 행운권 번호를 입력하면 연 6회 짝수 달에 추첨해 당첨자에게 5만 원 상당의 상품권까지 준다.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을 쓴 사업으로 광진구청은 올 3월 서울시가 실시한 ‘2009년도 자치구 위생분야 종합평가’에서 우수구로 선정돼 포상비 1억 원을 받았다. 성공적 사업이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바로 예산 문제다. 재정자립도가 50%인 광진구가 음식물 싸주기 운동에 계속 예산을 투여하기란 쉽지 않다. 광진구는 서울시로부터 받은 포상금 1억 원 중 일부를 음식물 싸주기 운동의 용기·봉투 제작, 우수 업체 포상금으로 썼다. 그러나 내년에는 사업의 계속 여부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광진구는 원래 올해까지 3년 동안만 구청이 앞장서 음식물 싸주기 운동을 벌인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구청이 지원을 중단하면 구청의 예산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식당 주인들이 자체적으로 남은 음식 포장 용기나 봉투를 제작할지는 미지수다. 광진구는 올해 연말에 우수 참여 업소 60곳을 선정해 음식물 포장기 등을 인센티브로 제공하여 적극 동참을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 주도’ 행사로는 한계가 있고, 음식물 싸가기 문화가 자연스레 뿌리내려야 음식물 낭비와 쓰레기를 줄이는 ‘선진화된 식당문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