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풍미한 걸그룹 SES 출신의 뮤지컬 배우 바다(본명 최성희)가 9월 29일~11월 21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여주인공 페기 소여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브로드웨이의 중심 42번가에서 무명의 코러스걸 페기 소여가 브로드웨이 스타로 성공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그리고 있다. 2003년 창작 뮤지컬 ‘페퍼민트’로 뮤지컬 배우 변신에 성공한 바다는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 ‘미녀는 괴로워’ 등 여러 뮤지컬 작품을 소화하며 핑클 출신 옥주현과 함께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 1호로 자리매김했다. 가요계에서 SES와 핑클이 라이벌로 비교됐듯, 뮤지컬계에서도 바다와 옥주현의 경쟁은 이어졌다. 특히 바다가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맡은 페기 소여는 지난해 옥주현이 먼저 연기해 호평을 받은 역할이기도 하다. 바통 터치를 받은 바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이유다. 9월 28일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 ‘브로드웨이 42번가’ 미디어콜에서 바다는 지난해 옥주현이 취재진 앞에서 선보인 하이라이트 무대를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큰 키와 성악을 주 무기로 한 옥주현과, 아담하지만 보이시한 외모, 국악으로 단련된 목청을 내세운 바다는 분명 같은 페기 소여가 아니었다. “옥주현이 했던 역할이어서 부담이 되냐고요? 솔직히 잘할 자신 있어요. 관객들이 ‘최성희가 하니까 저런 느낌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 생각입니다. 또 옥주현과 같은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더 재미있을 거예요.” 무대 위에서 페기 소여가 돼 화려한 탭댄스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뽐낸 바다는 미디어콜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옥주현 때문에 부담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서도 ‘자신 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지난해는 옥주현과, 올해는 바다와 호흡을 맞추는 도로시 브록 역의 박해미 역시 함께 공연 중인 바다의 손을 들어줬다. 그녀는 이날 “이미지가 페기 소여에 더 잘 어울리는 바다가 옥주현의 연습량까지 이겨낸다면 더 월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기 소여는 어떤 인물입니까? “브로드웨이 최고의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브로드웨이에 와서 코러스 걸부터 시작해 결국 꿈을 이루는 시골 소녀입니다.” -이 작품에 출연한 이유를 듣고 싶어요. “사실 작년에 이 작품이 초연됐을 때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음반 준비 때문에 못 해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올해 출연 제의 연락이 왔을 때 기뻤어요. 제작진이 저의 라이프 스토리를 보고 페기 소여 역에 제가 적역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저 역시 꿈 많은 페기 소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답니다.” -페기 소여는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 1호 옥주현 씨가 지난해 연기한 역할인데요, 그래서 부담되진 않나요? “(옥)주현이 한 역할을 제가 못할 이유도 없고, 제가 한 역할을 주현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주현의 조언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탭댄스가 부담스러웠는데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가 많은 주현이 ‘즐겁게 했다’고 해서 부담이 줄었거든요. 선배들도 많이 가르쳐주고 주현의 정보까지 들을 수 있어서 시작이 좋네요. 배우 황정민 씨의 수상 소감처럼 저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거죠.” -탭댄스가 어렵지 않았나요? “탭댄스는 아주 오래 전에 배운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빡빡하진 않았죠. 요즘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연습하는데요, SES 데뷔를 준비할 때 이후로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옛날 고생이 페기 소여를 연기할 때 도움이 됩니까? “극 중 페기가 데뷔하기 전에 기차역에서 도로시 브록을 밀었다는 오해를 받고 극단에서 퇴출당하는데요,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페기에게 줄리안 마쉬가 설득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을 연기할 때 과거의 일이 떠오르더군요. 저 역시 SES 준비가 어려워 포기하려고 했었거든요. 당시 회사에서 지어준 좋은 집도 마다하고 허름한 저의 시골집으로 내려가려고 했었죠. 그때 이수만 선생님이 저를 설득했고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당시를 생각하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요.” -감정이입이 때론 배역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나요? “그래서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한 것 같아요(웃음). 저는 긍정적인 스타일이어서 무대에서 필요한 행동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답니다.” -이 뮤지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요? “브록이 자신의 역할을 페기에게 양보하고 진심으로 응원하면서 손을 잡아주는 장면이에요. 눈물도 났어요.” -트리플 캐스팅인 방진의-정명은 씨와의 경쟁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정명은 씨는 몸의 라인이 예쁘고 탭댄스를 기가 막히게 춥니다. 방진의 씨는 연기력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얼굴은 뮤지컬을 하기에 좋답니다. 전형적인 미인도 아닌 보이시하고 시원한 마스크가 뮤지컬에선 장점이 되더라고요.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해를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배우가 아닌 남자로 좋아진 배우는 없나요? “멋있는 분이 절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함께 공연하고 싶은 남자 배우를 꼽는다면? “대학교 동기인 조승우 씨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제가 연기자의 꿈이 있다는 사실을 승우 씨도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SES로 활동 중이었고 승우 씨는 영화 ‘춘향전’으로 데뷔했죠. 처음 꿈을 나눈 조승우 씨와 무대 위에서 다시 한 번 꿈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친구인 조정석-김무열 씨와도 연기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친한데 한 작품에서 연기한 적은 없거든요. 정석 씨와는 코믹스러운 작품을, 무열 씨와는 강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어떤 마음을 갖길 바라나요? “누구나 한 번쯤 꿈을 꾸다가 좌절을 하는데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꿈에 대한 동기부여를 주는 작품입니다. 원래 저의 꿈은 뮤지컬 배우였지만 가수로 먼저 데뷔했고 인지도도 생겼어요. 하지만 이 인지도 때문에 뮤지컬 배우로 넘어오기가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제가 ‘꿈꾸는 먼지’였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바다 씨는 가수와 뮤지컬 배우 중 어느 쪽으로 살고 싶나요? “호를 바다로, 이름은 최성희로 살고 싶어요. 가수 바다로 인사드렸지만 최성희란 사람으로 매듭짓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