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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의 라틴현대미술 감상

로베르또 마따의 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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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4호 편집팀⁄ 2010.11.01 15:02:13

박종철 (평론가·큐레이터) 1911년 칠레 산티아고 출생인 로베르또 마따(Roberto Matta)는 미술사가들의 유럽 작가들에 대한 편중된 시각으로 인하여 우리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19세기 초현실주의 작가 중 최고의 역량과 개성을 가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31년 칠레 카톨릭 대학에서 건축학을 수학한 로베르또 마따는 1933년 유럽으로 이주, 파리에서 르 꼬르뷔제 아뜰리에에서 본격적인 작품 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런던으로 여행하면서 그로피우스(Gropius)와 모홀리 나기(Moholy Nagy)와 친분을 맺기도 하였다. 1937년 파리의 작품 생활 중에 여러 국제전에 참여하면서 마그리트, 피카소, 호앙 미로와 함께 작업하였고 살바도르 달리, 앙드레 부르통등의 작가들과도 교분을 가졌으며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 슈르 리얼리스트로서 본격적인 출발을 하였다. 특히 1938년에는 아방 가르드의 원조인 마르셀 뒤샹과 우정을 쌓아가며 갤러리 보자르(Breaux-Art)에서 슈르 리얼리즘 전에 참여 하였다. 로베르또 마따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고 장엄하고 숭고한 미학의 속성에서도 이탈하여, 인간도 다른 생물체와 같이 한갓 피조물에 불과하며 오히려 문명의 탈을 쓴 부조리의 군상들 뿐 이라는 다소 자조적이며 전위적인 사상을 갖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마르셀 뒤샹과의 우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전위예술이 갖는 반 도덕성, 기존의 미학에 대한 외면 등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체 군상이 미지의 생물들과 합성되어 인체인지 어느 동물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괴이한 형상들이 등장 되는데 이것은 인체를 왜곡, 변형, 단순화, 생략시켜 알 수 없는 형상으로 재생시키기 때문이다. 즉,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을 동격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인간도 우주 속의 일원이면서도 문명과 인습, 도덕성 등의 추출물에 예속되어 오히려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다소 역설적인 주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조롱과 희화적 표현을 통해서 인류 문명의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인 예시를 감지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와 전위예술의 접목이라는 미학의 방식으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1939년 2차 세계대전 때는 마르셀 뒤샹, 탕기와 함께 뉴욕으로 건너가 슈르 리얼리즘의 작품을 계속 발표함으로서 미국의 영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는 파리에서의 슈르 리얼리즘의 국제전을 필두로 런던, 뉴욕, 스톡홀름, 베를린,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페인 등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회고전을 가졌으며 1956년에는 유네스코 벽화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여타 슈르 리얼리스트들과는 다른 조형성 -그것은 비 장식적 이면서도 문학성이 있고, 때로는 순수 추상의 풍요로운 기법의 병용을 추구하는 것-을 보여 주었으며 1970년에는 칠레 대통령 아옌데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대중 벽화 제작에 참여하여 벽화미술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모국인 칠레 정부의 인정을 받아 예술부문 국가공훈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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