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0년 호랑이의 해가 두 달 남짓 남았다. 사람들은 다가올 2011년 토끼의 해에 대한 기대에 벌써 부풀어 있다. 호랑이와 토끼, 십이지신의 순서로 보면 가깝지만 막상 단어를 갖다 놓고 보면 연관성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북주 주성준 작가의 그림 속에서 호랑이와 토끼는 조화를 이룬다. 2010년 호랑이가 주가 됐던 그의 그림 속에서 토끼는 호랑이의 배 위에 앉아있고, 때로는 담뱃대를 들어주기도 하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는 토끼의 해를 앞두고 토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주성준이 호랑이와 토끼를 함께 그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예부터 달에서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의 선약을 절구에 찧는 동물은 토끼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사실 절구를 찧는 주인공은 호랑이라는 것. “중국 전국시대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굴원의 시에서는 달에 사는 동물을 호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에는 호랑이 토(菟)자가 등장하는데 이와 비슷한 토끼 토(兎)로 글자가 변하게 됐다는 이론도 있죠.” 달에 사는 동물은 호랑이라는 설 중국 고대신화와 한국 전래동화 ‘토끼와 자라’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토끼와 자라’에서는 병에 걸린 용왕이 불로장생의 약이라 일컬어지는 토끼의 간을 구하려 한다. 중국 고대신화에서는 하늘나라에 살던 항아라는 여인이 벌을 받고 지상으로 유배됐다가 후에 서왕모에게 받은 불로불사약을 먹고 달로 도망간다. 여기서 서왕모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전해지는 신선으로 서왕모에게 불로불사약을 먹은 항아가 달에 갔다는 것은 결국 달에 호랑이가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성준은 말한다.
그가 밝히는 토끼와 호랑이의 연관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 년의 시작을 알리는 음력 1월을 상징하는 동물은 호랑이고 2월은 토끼이다. 이에 2월이 1월을 떠받친다는 의미로 절에는 ‘이묘봉인도’가 전해오고 있으며, 호랑이와 토끼가 함께 그려진 벽화도 많다. “한반도의 모양도 토끼를 닮았다고 했다가 만주를 향해 발을 뻗은 호랑이 모양으로 바꿔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한반도는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토끼와 서왕모의 호랑이 전설을 연결 짓는 모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호랑이와 토끼의 연관성을 역설하는 그이지만 토끼 자체에 담긴 의미 또한 잊지 않는다. 튼튼한 뒷다리로 잘 뛰는 토끼는 나쁜 기운으로부터 잘 달아날 수 있다. 큰 귀는 장수, 백옥같이 흰 털은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갈라져 있는 입술은 여성의 음부를 표현하는데 이는 다산을 상징한다. 주성준은 토끼가 가지고 있는 이런 긍정적인 의미들을 그림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주성준의 그림 속 토끼들은 근심 걱정은 남의 일인 듯 유쾌, 상쾌, 통쾌하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는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이어오고 있는 발랄한 모토이다. 이전에 선보인 ‘해피 호야’(작품 속 호랑이 이름)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발랄하면서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다. ‘해피 호야’의 해피 바이러스는 토끼에게도 이어진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여운 토끼의 모습은 그림을 보는 이가 안고 있는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게 해준다. 특히 웃고 있는 토끼의 가지런한 치아가 눈에 띈다. “예로부터 이빨이 32개 넘으면 대인이라고 일컬어졌죠. 가지런하면서도 많은 이빨의 개수는 ‘건강’과 ‘운수’를 상징합니다.” 눈동자는 자시(子時)에 그려 에너지를 흡수 토끼의 눈, 입 꼬리, 콧대 등에도 세심한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두텁게 그려진 눈 부위와 올라간 입 꼬리, 바르게 서있는 콧대는 관상학적으로 행운을 불러오는 얼굴상으로 주성준은 그림에 행운까지 담고자 한다. 특히 눈동자는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자시에 그린다.
처음 그림을 봤을 때 인상도 그렇고 그림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으니 굉장히 전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주성준이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서양화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국 전통 사상에 대해 공부하며 이를 그림에 접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동양화로 눈을 돌리게 됐다. “아크릴로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제 그림을 서양화로 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하지만 재료가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재료로 서양화와 동양화를 구분 지을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사상을 봐야 한다는 것이죠.” 주성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림의 기능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것이다. 어떤 그림을 벽에 거느냐에 따라 집안의 분위기와 에너지의 흐름이 바뀐다는 것. 따라서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붓질 하나하나에 신중해진다. 호랑이를 그릴 때는 재물과 행복의 기운을 전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면서 집안에 화목함을 가져다주고자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항상 그림을 가져가고 보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림은 집에 행복을 가져다주죠. 이번 토끼의 해에는 ‘장수’와 ‘다산’, ‘아름다움’의 기운을 전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사랑과 자비 등 따뜻한 힘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유쾌·상쾌·통쾌한 ‘토끼 만세전(萬歲傳)’은 서울 인사동 가가갤러리에서 11월 17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