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약 1만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첫인상은 단 몇 초안에 결정되는데 그 첫인상은 대부분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1만 가지 표정 중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느냐가 나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미술작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작품을 바라본 첫인상은 잊히지 않고 기억된다. 하지만 환경에 따라 색이 알아서 변하는 작품을 대한다면 어떨까?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에 있는 수호갤러리에서 11월 17일부터 26일까지 개인전을 갖는 주상민 작가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상호작용)한 작업을 한다. 환경에 따라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변화하는 작품을 만든다. 즉 주위의 작은 움직임이나 진동에도 작품이 움직이며 온도에 따라 작품의 색이 변하는데 이는 마치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인간의 감성과도 같이 바라봤기 때문이다. “작품들은 스스로 외부의 변화에 반응해요. 온도가 변하게 되면 지니고 있던 색이 사라지게 되고, 미세한 움직임이나 진동에도 움직이죠. 그것이 강해지면 같이 크게 움직이고 약해지면 고요해져요. 그 변화와 움직임의 주체로서 작품 자신이 중심에 있어요. 이것은 기존의 작가가 설정한 관객과 작품과의 작위적인 상호 소통의 관계 설정에서 벗어나, 보다 작품 자신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며 스스로 외부의 작용과 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작품은 일률적으로 바뀌는 기계적 변화가 아닌, 오늘과 내일이 다르듯 환경적인 요소를 접목시킨 작업으로 환경에 맞춰 바라봐야 한다. 이는 키네틱(kinetic·운동에 의해 생기는)을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낸 결과다. 그는 이를 마치 연극과도 같은 공연의 한 부분으로 비유하며 작품을 무대에 올려놓았을 뿐 연기는 작품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변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작품이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시키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면 외부적인 힘에 지배당하게 되기에 그의 작품은 천천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 작품은 온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시온 안료(온도 변색 안료)를 사용해 만드는데 평면에서 조각 그리고 입체 작업까지 다양하다. 시온 안료는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색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가 온도가 다시 내려가면 원래의 색으로 환원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작업은 디지털 프린팅 후 위에 안료를 바르기도 하고 페인팅을 해서 바르기도 한다. 움직임에 반응을 보이며 소리를 내는 작품 ‘서(序)’ 시리즈는 스테인리스로 만든다. 직접 용접하고 광도 내는데 일반 작업보다 10배 이상 힘이 든다고 한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을 보이는 스테인리스 작품은 빈 공간에서 나는 소리로서 부드럽고 청아한 울림을 준다. 무엇보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관객과 작품 사이의 관계, 작품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서 시리즈는 기존 스테인리스가 가진 고정적이고 단단한 물성에서 벗어나 미세한 떨림이나 공기의 흐름에도 스스로 반응하고 움직이는 특성과 성질을 가져요. 사각, 원, 삼각 등 자연을 이루는 기본 형태에서 출발한 각각의 작품들은 메스를 가진 부분과 덩어리를 해체한 부분으로 나뉘죠. 해체된 각각의 덩어리에서 존재하는 수직적인 무게와 얇은 스테인리스 판이 가지는 수평적인 좌우 흔들림의 대비는 조화로운 긴장감과 균형을 유발해요.” 관객의 움직임과 공기의 흐름(바람)에 의해 스스로 흔들리는 작품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과 관객 그리고 공간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한다. 기존의 작품 ‘신드롬’ ‘보호색’ ‘등 뒤의 시간’ ‘피노키오 신드롬’ 등도 모두 근본적인 맥락에서는 이와 같은 하나의 흐름을 가진 작품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존재하는 거짓말에 대한 질문들을 통해 진짜 사람,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피노키오 신드롬’은 이미지 및 얼굴이 온도 변화에 따라 변화하며 자신의 색을 잃거나 회복하는 과정을 보인다.
그의 초기 작업은 블랙라이트를 이용한 것으로 역시 인터렉티브한 작업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광선을 이용해 지켜봐야 볼 수 있는,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알 수 없는 작업이다. “작업의 출발은 이야기를 내가 지시하는 것이었죠. 함께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재료가 변화하는 것을 찾았고 환경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해나가고 있죠. 환경과 동화되기에 어떤 작품이 진짜라 할 수 없어요. 관람객도 그림과 환경과 나를 함께 생각하는 포용된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변화를 보며 수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앞으로 고정된 이미지를 넘어 더 많은 이야기를 펼쳐 보이려 해요.”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탐구해 작품에 철학과 노력을 담는 그는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현재 대학에 출강하며 조소 강의를 맡아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진정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견디며 그 과정 속 수많은 갈등과 고뇌 그리고 고민들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도 더욱 독창적이고 특화된 작품을 만들고 그 안에 깊은 이야기를 담아내겠다. 작업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겁다”며 다음에 나올 작품을 사뭇 기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