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담긴 자연풍경에서 힘찬 생명력이 느껴짐과 함께 오붓한 편안함이 온몸을 감싼다. 알 수 없는 묘한 이끌림에 시선이 고정되고 바라볼수록 그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내 난 자연이 되고 자연은 내가 됨을 느낀다. 강렬한 색감과 붓의 필치에서도 그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박남재 작가의 작품은 사물의 기본적인 형태를 넘어 본질 즉 내면을 꿰뚫고 있다. 이는 작업을 하면서 방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인격을 연마해 사물의 내면을 뚫어볼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의 마음가짐에서부터 비롯됐다. 이 같은 그의 철학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다. 인물화·정물화·풍경화 등 다양한 소재를 그리지만 그 대상이 무엇이건 그만의 방식과 직관을 가지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한 번에 짚어 그린다.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그려내기 때문에 작품에는 꾸밈이 없고 항상 맑고 소탈하다. 무엇보다 많은 소재 중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 “자연은 우리 인간의 생명력이고 언제나 우리를 편안하게 안아주므로 자연을 주 소재로 그리고 있다”며 “그 중 산은 요동치는 인간의 욕망을 안정시키고 가장 진실한 사색의 대상이기에 주로 산을 많이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경제적으로 극도로 피폐한 시기였던 1955년 미술에 입문했다. 당시 미술의 경향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독자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흐름으로 주로 이상화된 향토성이 주제가 됐으며 소재는 한국적인 풍경·기물·삶의 모습 등이었다.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당시 삶에 대한 애환이 묻어 있고 소박하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화폭에 그대로 담겨 있다. 미술평론가 오병욱은 “박남재의 작품들은 그의 꾸준한 추구를 보게 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나 더욱 멋들어지고 노련한 필치를 발견하려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러한 무변화에 가까운 그의 화경은 너무나 쉽게 변하고 최신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좇는 시대적 풍토와는 상당히 다르다. 40년 동안 같은 자세로 그림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어 “박남재의 예술에서는 머물고 싶을 때 더 멀리 과감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이 그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시도 쉬지 않고, 다른 데 눈을 빼앗기지도 않고 정진하는 자세가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작 태도와 방법은 그의 세대가 갖는 보편적 특수함이다. 실제의 삶과는 유리된 듯한 낭만적 열정과 이상화된 소재의 추구. 이는 현실보다는 향상에의 희망에 매진했던 그가 속한 세대의 모습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언제나 식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만의 작업을 추구하는 그는 최근 소재면에서 바다나 파도 풍경이 많아졌다. 그의 그림 속 파도는 정말로 차갑게, 꽃과 들판이나 자연풍경은 따뜻하고 정겨움이 물씬 느껴지는 등 보는 순간 그 에너지가 전달되는 듯 짜릿하다. “같은 소재를 다루어 오기는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는 사물의 외형적 표현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살아 있는 사물의 내적 세계를 깊이 탐구해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재에 따라 그 내용과 느낌은 각자 다른 것이기는 한데, 용솟음치는 파도를 통해 정지되고 위축된 구속으로부터 생명력 넘치는 정열을 표현하고자 했고, 꽃과 들판 같은 전원풍경화에서는 평화로운 안식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자연에 대한 탐구적 열정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오랫동안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작품세계를 진작시켜 왔다. 풍경화 영역에서 특유한 개성적 향취를 자아내는 그의 작품은 어디까지나 자연이라는 소재적 대상세계에 기초하며 또한 거기에 귀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풍경화가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미술평론가 김인환은 “박남재를 단순히 풍경화가로만 치부하는 것은 잘못일지 모른다. 사실 그는 풍경뿐만 아니라 정물이나 인물영역에서도 자유롭게 기량을 발휘해 온 편이다. 회화 입문의 수련기에 탄탄하게 다진 데생의 기본기가 근간이 되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몇 점의 기록화를 통해서도 괄목할 만한 묘사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그의 작품세계의 진면모는 자연소재의 작품으로 모아진다”고 말했다.
꾸준히 미술인생을 걸어오며 긴 시간 작품 활동을 해 온 그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및 학장까지 역임했지만 여전히 시간은 자신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작업에 몰두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화가 자신의 성실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하나하나의 작품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화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는 오랜 세월 미술인으로 살아온 전북미술계의 거목 박남재가 아닌 친근하고 인간다운 화가 박남재로서 여전히 우리 생활 속 편안한 안식과 활력을 전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