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덕 기자 광주·전남 CNB뉴스 cnbnews@naver.com 17년 전 자본금 3000만원, 직원 5명으로 출발한 대광산업이라는 한 금형회사가 지금처럼 성공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이 작은 회사, DK산업(주)은 어느덧 세계적 대기업의 파트너로 성장해 성공 신화를 써가고 있다. 지난해 3천만 달러에 이어 올해 5천만 달러 수출, 연매출 1200억 원, 직원 300여 명과 해외 현지 공장을 갖춘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같은 성장 배경에는 대우중공업 생산직 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성실한 청년 김보곤(50)이 있었다. 그가 바로 DK산업(주) 신화를 일궈낸 장본인이다. 1975년 김보곤은 전남기계공고에 입학한다. 재학 당시 실습도구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해 자퇴서를 제출하고 방황했지만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김보곤은 고3 때 대우중공업 부평공장으로 실습을 나갔다가 성실함을 인정받아 졸업 후 곧바로 대우중공업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해, 83년까지 5년여 간 근무한다. 이후 84년 결혼과 함께 새로운 인생 설계에 들어간다. 자신의 전공인 기계분야의 창업을 꿈꿨던 것이다. 금형설계 분야 전문가를 꿈꿨던 그는 창업을 목표로 경영과 기술을 함께 익힐 수 있는 중소기업을 찾던 중 (주)동양정공에 입사해 금형 기술과 기업 경영에 관한 노하우를 쌓아갔다. "딱 10년만 근무한 후 창업을 하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목표가 뚜렷해지니 일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더욱이 (주)동양정공이 소기업이었던 탓에 기업 경영이나 사업 전체를 아우르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보곤은 당초 계획대로 10년 후인 1993년 주변사람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부장으로 근무하던 (주)동양정공에서 퇴사한다. 그리고 퇴직금 3천만 원을 밑천 삼아 금형 프레스 업체인 대광(大光)산업을 설립했다. “직원에 투자하면 좋은 조건 찾아 떠난다지만, 그렇다고 직원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직원도 남더라”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집안이나 친지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월급은 빚을 얻더라도 단 하루도 체불하지 않는다 △고객과의 약속은 최고의 품질로 반드시 지킨다 등이었다.
회사를 설립한 김보곤 대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인재 육성과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작은 부품 하나라도 고객의 요구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품질로 보답하려는 노력과 독창적인 기술력만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인재 육성과 기술 투자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초창기 작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인재 육성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르쳐 놓으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가 버리는 직원들에게 서운함이 있었지만 결코 인재 육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김 대표의 이러한 경영 철학과 꾸준한 기술 투자 덕분에 (주)DK산업의 거침없는 비상은 시작됐다. DK산업은 탄탄한 기술력과 인재력으로 회사 설립 후 1년 만인 1994년 5월 (주)삼성광주공장의 협력업체로 등록된다. 그 후 광주시로부터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선정’과 함께 기술력을 인정받고 공장 이전과 함께 확장에 들어간다. 1995년 생산기술연구원이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했고, 광주시의 ‘우수 중소기업인상’을 받았고 그 해 8월 (주)DK산업으로 법인명을 전환했다. 법인명 전환 후 97년 중소기업청 지정 ‘국가기술지도업체’로 선정되며 기술력을 국내에 알렸다. 이어 2000년 12월에는 벤처 기업에 등록했고, 이듬해 7월에는 국내 전자 기업의 해외 진출에 발맞춰 태국 현지에 종업원 250명 규모의 현지 공장을 설립해 프레스 금형, 가전 부품, 자동차 부품, 기타 프레스 가공 부품의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해외사업부 또한 인간 존중의 경영 철학과 독창적인 제품력을 바탕으로 설립한 지 채 1년여 만에 태국 삼성전자 협력사로 등록됐다. 그 후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투자에 힘입어 2003년 9월 도시바 태국(세탁기-냉장고 부문)의 협력사로 등록되는 등 외국 업체로부터도 탄탄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DK산업은 2005년 한국수출보험공사로부터 수출탑 상을 수상하고 2006년 삼성 냉장고 도어 라인(door line) 이설과 더불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금형 부분에서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07년에는 일본 기업 (주)오카야강기에 금형 부분을 직수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08년 경기불황 때 많은 기업들이 인원 감축에 나섰지만 DK는 당시 163명이던 직원을 250명으로 50% 이상 늘렸다. 수세적 경영보다 사업 영역 확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결정이었다. “금융위기 때 감원 한파 불었지만 DK산업은 오히려 직원을 1.5배로 늘렸다. 인간에 투자하면 반드시 과실 돌아온다” 김 회장의 이러한 경영 마인드는 일자리 창출 공로로 인정돼 지난해 노동부로부터 ‘산업포장’을 받았고 ‘인적자원 개발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DK산업은 이처럼 탄탄한 기술력과 김 회장의 경영 마인드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LG, 소니, 도시바 등 세계적 기업 11곳의 당당한 기술 파트너로 성장했다. ‘모범중소기업인상’ ‘수출유망중소기업’ ‘이달(2월)의 기능 한국인’ ‘5천만불 수출탑’ 등 각종 상을 휩쓸어온 DK산업(주) 김보곤(50) 회장을 만나기 위해 광주 광산구 평동공단 1번로에 위치한 DK산업(주)을 찾았다. -김 회장의 사업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인재 육성이었다. 초창기 작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인재 육성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중소기업 처지에 사원들에 대한 투자를 너무 많이 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르쳐 놓으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가 버리는 직원들을 두고 염려하는 말들이었다. 서운함도 있었지만 결코 인재 육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투자가 아깝고 직원들의 이직을 두려워한다면 사람을 키우지 못한다. 오랫동안 가르친 직원이 이 회사를 떠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친 사람이 반드시 내 회사 직원으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그 직원이 이직한다고 해도 내가 가르친 기술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빛을 발하고 있지 않겠나.”
-인재육성과 직원복지 차원에서 ‘3S정책’을 추구한다고 들었다. “3S정책이란 △노사 간 긍정적인 토론 문화를 추구하는 말(Say)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자는 머무름(Stay) △사원들에 대한 복지 지원을 뜻하는 봉사(Serve) 세 가지를 의미한다. 설립 당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직원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사내 직종 교육을 실시하고 한·일 협력재단을 통해 6개월 기술습득과 어학연수 등 직원 직무능력 향상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금형 산업 분야는 인력난이 고질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DK산업 홈페이지에는 구직자들의 구직 문의가 쇄도하는데? “제조업 가운데 특히 금형 프레스는 이른바 3D 업종이다. 산업재해도 잦고 급여 수준이 낮아 근로자들의 이직률이 무척 높다. 그런 탓에 노동 중심 기업으로부터 공부하는 회사, 인간 중심의 기업으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급여 수준은 동종 업계에서 중상위 수준이지만, 근로자들은 단지 보수만이 아니라 ‘나도 회사와 함께 성장한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 있어야 애사심이 절로 생겨난다. 근로자 스스로 평생 일하고 싶은 그런 회사, 경영자는 근로자를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들의 삶까지 함께 아우르는 형제나 자녀처럼 대하는 회사가 가장 이상적인 기업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노사가 윈윈(win-win)하는 회사만이 21세기 산업 현장에서 생명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족 같은 한마음으로 일하는 그런 회사를 만들어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고유가와 원자재 상승 등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현재 실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지금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만족스러운 가격과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꾸준한 혁신 활동으로 원가 경쟁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 경기는 어려울 때가 있으면 다시 회복되는 시기도 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인적 자원의 향상을 통해 어려운 시기에는 더 크게 교육훈련을 늘려 다가올 경기 회복 시기를 대비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금형 분야는 재해도 잦고 이직률도 높다. 급여는 중상위라도 ‘회사와 함께 발전한다’고 직원들이 생각하면 애사심 절로 생겨” -해마다 DK산업의 발전은 놀라웠다. 목표는 무엇인가? “근로자가 평생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 경영자는 근로자를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들의 삶까지 함께 아우르는 형제나 자녀처럼 대하는 회사, 그리고 노사가 함께 성장하고 윈윈 하는 회사, 그런 DK산업(주)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 싶다. 현재 김 회장은 사내 직종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사원 자질 향상과 성취감 고취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삼고 있다. 그 스스로 2004년 전남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해 졸업하는 등 만학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DK산업(주)에는 노조가 없다. 노사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한마음 협의회’라는 노사협의체가 있을 뿐이다. 김 회장의 '인재육성', '사원 중심' 경영철학에 따른 결정이다. DK산업(주)의 2011년 신묘년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