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나의 작업들은 찢어지기 위하여 그려진다

신성희展 아뜰리에705 3.3~30

  •  

cnbnews 제211호 편집팀⁄ 2011.02.28 13:21:07

그리고 찢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질문이며, 그것이 접히고 묶여지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 공간은 나로 하여금 평면을 포기하게 한다. 포기해야 새로워진다는 것을 믿게 한다. 포기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 나의 그림이다. 찢겨진 그림의 조각들은 나의 인식과 표현의 대상들이 죽었다는 것의 증거물이다. 나의 두 손은 이 증거물들을 다시 불러일으켜 바람이 오가는 빈 공간의 몸에 예측할 수 없는 신경조직을 새롭게 건설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그림의 조각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곳 마다 매듭의 세포들을 생산해 낸다. 묶여진다는 것은 결합니다. 나와 너, 물질과 정신, 긍정과 부정, 변증의 대립을 통합하는 시각적 언어이다. 색의 점, 선, 면, 입체가 공간의 부피 안에서 종합된 사고로 증명하는 작업. 평면은 평면답고, 입체는 입체 답고, 공간은 공간다운 화면에서 일하기 위하여, 나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 작품을 만들 때 동원되는 화구들, 그리고 생활에서 쓰이던 사물들, 나의 작업에 헌신하였던 오브제들은 그 시간이 오래된 것일수록 낡아지고 허물어져간다. 이제 나는 그들의 봉사에 감사함으로 구석진 자리에 놓여있던 오브제들을 하나 둘씩 불러내어, 종이 작업에 주인공으로 삼는다.

예술이 보물찾기 하듯 하나의 발견이라면 내 종이 작업에 필요한 재료와 방법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현을 꿈꾸던 붓, 그것을 표기하던 가위 공간을 되돌려주던 거울, 생각이 겹쳐지는 팔레트, 자녀들의 성장을 촉진시키던 장난감 등등. 이들을 입방체의 별자리에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오브제들은 나를 상상력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실험과 탐구의 대상들이었다. 종이는 담겨지기 위하여 혹은 찢어지기 위하여 생산되는 평면이다. 오브제는 그 크기가 작은 것이라 하여도 공간을 필요로 하는 입체이다. 차원을 달리하는 이들을 그 속성에 맞게 그리고 서로 절충하여 통합시켜주는 일이 나의 오브제 작업이다. 종이는 100여장 겹쳐주기를 원했고 오브제는 그 부피의 안으로 파고들어가기를 희망하였다. 자기의 체구에 맞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의 집을 혹은 종이들이 오브제의 몸 둘레를 감싸며 옷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종이들을 이미 평면의 경계선을 넘고, 오브제는 자기의 몸을 감추는 반 입체라는 이름으로 타협을 하였다. 친애하는 나의 오브제들이 사는 집들, 내 이름이 새겨진 그 안에서, 나보다도 더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일 이것이 바로 나의 즐거운 일이다. (신성희, 2001년)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