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편집국장 한국 TV를 처음 보는 외국인이 놀라는 점이 있다. “웬 식당 소개가 이렇게 많냐?”는 감탄이다. 특정 시간대에는 정말로 여길 트나 저길 트나 전부 맛있어 죽겠다고 난리다. 정말 밥맛 떨어지는 방송 내용이다. 미국 TV를 보자. 특정 식당이 “끝내준다”고 소개하는 방송은 정말 1년에 한두 번도 보기 힘들다. 물론 이런 건 있다. 음식 소개를 전문으로 하는 ‘푸드 넷웍(Food Network)’ 등의 케이블채널이 있고, 여기서 드물게 ‘미국 대도시의 유명 맛집’ 등을 소개하는 걸 보기는 했다. 중요한 사실은 음식 전문 채널이라도 주로 음식 조리법을 소개하지 “이 식당 한 번 가보셔”라고 소개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국 TV에 이렇게 맛집 소개가 봇물을 이루는 이유의 일부가 밝혀졌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는 김재환 감독의 영화 ‘트루맛쇼’에서다. MBC 교양PD 출신이라는 김 감독은 일산에 가짜 식당 ‘맛’을 개업하고, 이 식당이 맛집으로 전파를 타기까지의 ‘거래’ 과정을 몰래카메라로 찍고 영화로 만들었단다. 그 과정에서 몇 천 만원이라는 거금이 오락가락 하는 장면과 함께. 그러면 그렇지. 이런 뒷거래가 있으니 밥맛 떨어지는 맛집 소개가 그렇게 자주 나왔구나. 사실 기자 입장에서 가장 쓰기 힘든 기사 중 하나가 바로 식당 소개다. 필자에겐 이런 경험이 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식당 운영을 해온 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이런 저런 음식을 내놓겠다”고 약속했고, 더구나 그 식당 주인이 신문사 사장과 친구라서 내키지 않지만 내놓겠다는 음식 서비스를 기사화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부실한 식단에 항의가 잇달았다. 설사 음식을 제대로 내놨다 하더라도 사람의 입맛이 제각각인지라 식당 소개 기사는 위험부담이 크다. 한국의 메이저 언론사에선 이런 꼴도 봤다. 식당 소개로 이름을 날린 이른바 ‘음식 나그네’가 전국의 식당으로부터 향응을 받은 나머지 가보지도 않은 음식점을 소개했다가 망신을 당하고 곧 이어 펜을 꺾는 과정이었다. 미국에서 읽은 얘기가 있다. 뉴욕타임스가 식당 소개 섹션에 특정 식당을 소개하기까지 거치는 과정이란다. 식당 소개 담당 기자는 특정 식당을 점찍으면 최소한 세 번 몰래 방문한단다. 점심과 저녁, 주중과 주말에 맛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손님처럼 세 번을 방문해 ‘내 돈 내고’ 음식 맛을 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기사 게재 여부를 결정한단다. 이런 게 ‘언론의 상도덕’ 아닌가? 일본에는 이런 식당도 있단다. ‘취재 언론 출입 금지’를 내건 식당이다. 이유인즉 “식당 손님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아야 맛을 유지할 수 있는데, 언론에 나가 갑자기 고객이 늘어나면 맛과 서비스가 떨어지고, 기존 단골에게 폐를 끼치기 때문”이란다. 한국 TV, 그만 좀 하자. 지금 같은 한국 방송의 모습은 ‘상도덕’을 말하기 전에 그저 ‘양심에 털난’ 수준이다. 그리고 식당들도 반성 좀 하자. 이제 ‘TV 출연 맛집’이란 광고 문구에 입맛이 당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르나. 식당 소개 프로그램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지 그야말로 ‘안 봐도 비디오’인데, 이에 적극 동참하고 또 방관한 PD나 방송국 임원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트루맛쇼’까지 개봉되니 은근히 기대가 된다. 한국에도 저 일본 식당처럼 ‘KBS에도, MBC에도, SBS에도 절대로 안 나간다’며 뻗대는 식당이 나올 그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