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명 “군대에 갔다가 학교에 오니 이 친구(배해선)가 있더라고요. 어찌나 귀엽던지…. 하하.” 배해선 “오빠(이건명)는 그때나 지금이나 허여멀갰어요. 딱 부잣집 아들 같은 느낌 있잖아요.” 뮤지컬계 단짝 이건명(39)과 배해선(37)은 서로의 첫인상을 이렇게 회상했다. 대학교(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학생들이 만드는 공연에서 부부 역할을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자주 호흡을 맞췄다. 남경주·최정원의 뒤를 잇는 뮤지컬계 2호 커플이라는 호칭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9월 1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에서 올라가는 연극 ‘국화꽃 향기(김하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첫 연극. 영화에서는 故 장진영, 박해일이 주인공을 연기했다.)’에서 두 사람이 맡은 역할 또한 서로를 몹시 사랑하는 부부다. 이건명은 첫눈에 반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승우를, 배해선은 승우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가장 행복할 시기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미주를 연기한다. 슬픈 사랑을 연기하게 될 두 사람을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 두 분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이건명(이하 이) “해선이는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말을 잘 듣는 여자입니다. 귀여운 데다 노래와 연기도 잘하고, 정말 모두에게 사랑받는 후배였어요.” 배해선(이하 배) “오빠는 어두운 구석도 없고, 뭐든지 긍정적이고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생 때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역할을 도맡았죠. 화내는 모습은 딱 한 번 봤어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며 평소에 절대로 빼지 않는 반지를 던진 거예요. 던질 땐 멋있었는데, 나중에 반지를 찾는 모습은 처량했죠(웃음).” 이 “금이었거든요(웃음).” - 요즘 들어 부쩍 연극 출연이 잦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배 “전 원래 연극으로 데뷔했어요. 오히려 뮤지컬 데뷔가 늦은 편이었죠.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줄곧 했는데, 뮤지컬을 열심히 하다 보니 연극을 할 기회도 별로 없고, 시간도 잘 맞지 않았어요. 오빠도 연극을 많이 했는데, 배우라면 장르 구분 없이 어떤 무대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두 분이 함께한 작품이 꽤 많은데, 기억하나요? 이 “대학교 때 부부 역할을 했고, 프로로는 졸업하고 10년 뒤 ‘맘마미아’에서 처음 만났어요. 이후 작품은 ‘아이다’인데, 해선이가 저를 무작정 사랑하는 역할을 맡았죠. 저는 학처럼 고고한 라다메스 역할이었고요(웃음).” 배 “결국엔 제가 라다메스를 죽여 버리죠(웃음).” 이 “‘갬블러’에서는 서로를 사랑하는 도박사와 쇼걸로 함께했어요. 또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에서는 헤어지는 부부 역할이었고요.” 배 “세어 보니 대여섯 개쯤 되는 것 같네요.” - 아무래도 관객들은 두 분에게 노래하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연극 출연 선택을 망설이게 되진 않나요? 배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연극과 뮤지컬은 나름의 매력이 있거든요. 연극은 깊이가 있고, 뮤지컬은 압축된 극을 노래로 푸는 장르로, 각기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어요. 특히 ‘국화꽃 향기’는 연극과 뮤지컬의 장점을 다 취할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노래하는 미주와 노래 동아리에서 만난 승우가 나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관객이 우리를 ‘뮤지컬 배우니까 노래하네?’라고 보지는 않았으면 해요. 이 작품에서 나오는 노래는 삶의 연장 선상일 뿐이거든요. ‘국화꽃 향기’가 뮤지컬이 아닌 연극으로 제작된다고 해서 굉장히 좋아했어요. 감정의 디테일을 표현하기에는 연극 쪽이 더 맞으니까요. 여기에 신지호 음악감독을 비롯한 뮤지션들의 좋은 음악을 작품 안에 함께 녹여낼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고요.” 이 “우리는 뮤지컬을 주로 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관객도 우리가 가끔은 연극을 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뮤지컬과 연극은 재질부터 다르니까요. 더욱이 ‘국화꽃 향기’는 노래가 조금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연극보다는 풍요롭죠. 공연과 연주, 음악 감상을 같이 하는 느낌일 겁니다.” - 승우는 사랑하는 여자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남자입니다. 자신과 얼마나 닮았나요? 이 “저는 실제로도 승우와 같습니다(일동 폭소). 사랑에 대한 몇 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예전에는 휴대전화 같은 게 없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인연이 끊어지기도 했잖아요. 그런 점에서 만남과 이별의 인연은 지금보다 예전이 더 끈끈했던 것 같아요. 미주를 무려 7년이나 기다린 승우를 표현하기 위해 저는 과거 연인을 기다린 저의 경험을 증폭시킬 생각입니다.” - 암에 걸린 여자 미주를 연기하는 데요, 어떤 모습에 주안점을 두고 있나요? 배 “미주의 아픔은 암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해주지 못해서 생기는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아픔을 가진 관객이라면 미주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실 겁니다.” - 친한 오빠 동생 사이인데, 애정 연기가 가능한가요? 배 “연습을 제대로 하기가 쉽진 않아요. 제가 웃음이 많아서 진지한 장면에서 많이 웃어 버리거든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무대에서는 오빠가 아니라 배역으로 보입니다. 뭐 그러다가도 순간순간 그 사람(이건명)이 보여서 오글거릴 때도 있지만요(웃음).” 이 “저는 뛰어난 연기자라 전혀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갖고 있거든요(웃음). 해선이와 저는 친해서 그 어떤 것도 받아줄 거라는 믿음, 기댈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로도 더 큰 시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평생 좋은 동료를 얻은 기분입니다.” - 끝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배 “이 더운 여름에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만드는 공연이지만, ‘국화꽃 향기’가 창작 작품이어서 관객의 마음을 200~300퍼센트 채울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관객들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창작 작품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어마어마하게 기대했는데 뭐야’하는 흑백(黑白)의 시선으로만 보지 말고, 보완해야 할 점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주세요. ‘국화꽃 향기’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게끔 많이 아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슬픈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저는 말랑말랑한 저의 가슴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이 가을,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즐겼으면 합니다. 저희가 두드리는 터치(touch)를 느낀다면 자신의 가슴이 어떻게 터치 당하고 움직이는지를 충분히 즐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