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미술을 주로 전시하던 덕수궁미술관에 뉴미디어로 불리는 영상작품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고풍스러운 공간에서 낯선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시작품도 4개 공간에 작품 10여점 만이 선보이고 있어서 미술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느끼게 해준다. 이는 모두 10월 18일부터 12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소통의 기술 : 안리 살라, 함양아, 필립 파레노, 호르헤 파르도’전 이야기이다. 이번 전시는 ‘소통’을 주제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안리 살라(Anri Sala), 함양아, 필립파레노(Philippe Parreno),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 4명의 대표 작품이 전시장 공간을 하나의 구역을 나누어 설치되었다. 전시작품들은 뉴미디어, 필름, 설치, 디자인 등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장르의 성격을 띠며, 작가들이 직접 구성한 4개의 전시장에서 소통에 관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알바니아 출신의 안리 살라는 평양처럼 음울한 알바니아 수도에서 소통을 위해 색채를 선택한다. 그는 무채색의 도시에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의 페인트를 입혀 도시풍경을 변화시켜 사람들의 삶이 변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예술은 사회적 상상력이며, 전쟁이나 도시를 통해 언어적 소통의 장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작품을 통해 작가는 색이 칠해진 도시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며, 예술로 인해 조금 더 나아지는 삶을 기대한다. 색채로 가득찬 활기찬 도시는 알바니아의 정치적·사회적 변화의 동인이자 변화의 과정을 상징한다. 예술이 지닌 일상적인 낯설음과 숨겨진 삶의 모습을 유목민의 삶으로 표현하고 있는 함양아(43) 작가는 서울과 암스테르담, 이스탄불 등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글로, 혹은 이미지로 서술해 내려가는 담담하고 건조한 다큐멘터리 속에서 미처 소통하지 않았던 낯선 사회의 구조적 불안을 우스꽝스럽게 혹은 진지하게 드러낸다. 개인적인 일상과 사회적 메시지, 예술 간의 소통을 말하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선보이는 함양아의 ‘버즈 아이뷰(Bird's Eye View, 2008)’는 비둘기의 시선으로 서울 구 역사를 촬영한 작업이다. 작품은 감상자의 시선이 닿는 높이의 3면에 설치된다. 가득한 먼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이 보여주는 어지러운 화면은, 함께 하지만 소통하지 않는 인간과 비둘기의 관계이자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작품 ‘영원한 황홀(2011)’은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만이 알 수 있는 ‘읽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작품이다. 말벌들의 싸움과 서울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커다란 스크린 2개와 스크린들이 겹쳐지는 부분에 조그많게 등장하는 광고판 스크린의 3채널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전히 은유적 기법을 사용한다. 좁은 공간에 갇힌 말벌들이 서로를 찔러 죽이듯이 한정된 자원과 공간을 두고 대도시에 갇힌 인간들은 경쟁하고 싸운다. 인간은 함께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현실세계에서의 소통과 공유는 차갑고 뼈아픈 일상에 기반을 하고 있다. 알제리 출생의 필립 파레노는 예술의 순수한 환상, 주변을 구성하는 현실적 공간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그는 덕수궁 미술관 2층 전시장 천장에 금색 말풍선들을 가득 메우는 작품을 설치했다. 이 설치작품은 감상자의 상상력이 부풀어 오르는 공간으로서의 전시장을 상징한다. 차마 다 내뱉지 못한 말들과 머릿속을 맴도는 말들은 노란빛이 도는 환한 공간 안에 펼쳐져서 금빛 천장을 가득 메운다. 예술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건축과 디자인으로 보여주는 쿠바 출생의 호르헤 파르도는 색채와 빛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오브제들을 꾸며놓는다. 특히 일상의 오브제들은 이들이 태어난 사회적 맥락과 배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전시장에 설치한 ‘불고기(2010)’작업은 작가가 살고 있는 LA의 한인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LA는 한국인들이 특히 이민을 하여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쿠바 출신의 작가가 그러하였듯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한국인들이 나름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한인타운을 형성하고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나갔음을 표현한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의 예술을 통해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를 보여준다. 미술관에 들어온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거나 미학적 기준을 재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향해 간다. 그러한 점에서 현대미술과 소통하는 데에 미술사적 지식이 아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과 뜻밖의 순간에 다가오는 자기성찰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들 작가들이 사회와 소통을 하는 방식은 다양하며 동시에 개인적이다. 특히 작가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뿌리와 경험은 작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통의 기술’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적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미학적 관점이 모이는 시점과 한국의 사회가 교차하는 지점 끝에는 닿을 듯 닿지 않는 소통의 방식이 존재한다. 문의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