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저곳 길을 걷다보면 가끔씩 보이는 거리의 낙서들. 길가 담벼락이나 화장실 벽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래피티(graffiti)란 원래 낙서란 뜻이다. 이 같은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것이 그래피티 아트다. 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 자리를 잡았다. 일반 벽화보다 훨씬 색과 이미지가 강렬해 현대 젊은이들의 감성과 열정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다. 낙서처럼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예술성이 있는 작품들이다. 가끔은 홍보용으로 아예 아티스트를 고용해서 벽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으로서 실내에 그리기도 한다. 원색을 많이 사용해 화려하면서 눈에 잘 띄는 데다 인상이 강하게 남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쎄다’. 현대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와 쿨 얼이라는 서명을 남긴 인물들로부터 시작됐으며,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서 낙서화가 범람하면서 본격화됐다. 처음에는 반항적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들 같은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다.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그렸다. 이렇게 장난스럽고 상상력이 넘치는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바로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받는 장 미셀 바스키야와 키스 해링이다. 현대미술에서 그래피티 아트는 아직 위치가 크지는 않지만 그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으로 변화를 보이며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다. 국내에도 알게 모르게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래피티 작가들이 많다. 그런 그래피티 작가 13명(데칼, 레고, 반달, 산타, 스피브, 알타임 죠, 에라원, 제이 플로우, 진스BH, 찰스장, 코마, 홍삼, 후디니)이 한 자리에 모인 전시가 방배동 갤러리토스트에서 열리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그래피티 작가들에게서는 ‘열정’이란 단어가 느껴졌다. 거리의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와는 달리 갤러리 벽에 걸린 그래피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피티는 열정 그리고 삶” 상업성 배제한 순수 그래피티 지향하는 후디니 “어떤 일이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좋아서 해야 하며 열정이 있어야 해요. 특히 그래피티는 열정이 중요하죠. 그래피티는 힙합이면서 비보이고 랩이에요. 그 안에 그래피티가 있어요.” 후디니 작가는 그래피티 없이 살 수 없을 만큼 강한 열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1995년 처음 그래피티를 시작해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현재까지 그래피티 작가로 살아오고 있다. 1995년과 98년 사이의 빈 시간은 그가 군대에 있었던 시절이라고 한다. “외국 영화를 보면 뒷골목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배경이 많아요. 당시 멋있다 생각하며 지내던 중 친구가 가게를 오픈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스프레이를 이용해 가게 벽에다 그림을 그렸어요. 그때는 이런 그림이 그래피티라는걸 전혀 몰랐죠. 그래피티의 의미 자체도 몰랐으니까요.”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줄곧 그림도 그려왔다는 그는 옷 만들기도 좋아하면서 대학의 의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취업을 해서 일하는 동안에도 줄곧 그래피티를 병행했다. 하지만 그래피티에 더 관심이 많다보니 일에 집중이 안 돼 결국 퇴사하고 그래피티에 열중하게 됐다. “그래피티를 그릴 장소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아요. 일상 속에 지나치면서 보이는 장소들이 우리의 캔버스에요. 2000년 초반까지는 그래피티로 먹고 사는 건 걱정 없었어요. 하지만 점점 그래피티도 상업화가 되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됐죠. 그래서 2002년이 지나면서 상업성에 물들지 말자 생각을 바꿨어요. 그랬더니 사실 좀 힘들긴 했어요.”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타투였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은 독학으로 타투를 공부했다. 해외에는 그래피티 작가가 타투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그래피티와 타투의 소재가 서로 섞이며 그래피티에 타투의 기법이 쓰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레터(작품 속 글자를 지칭)와 함께 귀여운 캐릭터가 눈에 뛴다. 일명 이모티콘 보이다. 캐릭터의 얼굴에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터넷 상의 웃음표시(^^)가 돼 있다. 그가 중국에 있을 때 만든 캐릭터로 낙서나 대화 중 의사나 감정표현을 이모티콘으로 하는 것에 관심이 생겨서 그리게 됐다고 한다. “글자 폰트 디자인으로 시작된 게 그래피티에요. 점점 화려하고 멋있게 변하게 됐죠.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로 글자를 만들어요. 보통 자신의 태그네임(작가명)으로 디자인하죠. 글자 안에는 리듬감과 반복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해요. 일반적인 분들은 글을 읽을 수 없지만 우리는 서로 다 읽죠.” 처음에는 보여주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지만 이제는 평생하고 싶어서 한다는 의미로 그는 “그래피티는 내 생활이자 삶”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건축가와 협업해 건물 자체를 그래피티적으로 디자인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신나고 자연스런 그래피티 하고파” 자아표현으로 시작해 범위를 넓혀가는 홍삼 “그래피티는 자아표현의 도구에요. 길거리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삶과 문화가 담겨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개인미디어의 시초가 아닐까요? 그래피티 자체가 광고 효과와 자아표현의 융합이 아닌가 생각해요.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거죠.” 최근 그래피티 작품에는 레터(문자)뿐 아니라 각자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나타나는 추세다. 시대에 맞춰 변해가는 양상이다. 그래피티에 얼굴을 가린 후드티를 뒤집어 쓴 캐릭터가 보인다면 바로 홍삼 작가를 떠올리면 된다. 어린 시절부터 힙합을 좋아했다는 그는 힙합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그래피티라 말한다. 예고와 홍익대학교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한 그는 고교시절 축제 때 큰 현수막에 그래피티를 그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혼자 공부하다가 군대 제대 후 2006년부터 제대로 해보자 마음먹고 그래피티에 도전했다. “힙합을 배우며 그래피티를 함께 그려왔어요. 혼자가 아니라 주변 친구들과 함께 했죠. 하지만 함께 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어요. 그들은 재미로 할 뿐 열정이 없었어요. 그래서 잠시 휴학을 하고 고향에도 내려갔다오고 직장도 다니며 다른 일도 해봤어요. 그러다 복학해서 여전히 그래피티를 했고 졸업하고 지금도 하고 있죠.” 현재 후드티를 입은 캐릭터는 그가 게임 회사에 다닐 때 만들어낸 캐릭터다. 당시 회사 동료가 후드티를 입고 왔는데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람의 모습이지만 얼굴은 안 보이는 후드 차림이 내뿜는 기운이 좋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바로 홍대로 뛰쳐나가 그림을 그렸다. 그의 주 활동 무대는 바로 홍대였다. 이 같은 열정은 구로역 구름다리에 매달려 그리는 열성으로까지 이어졌다. 전공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흥미까지 잃어버릴 정도로 길거리 예술에 푹 빠졌다. ‘홍삼’이라는 태그네임은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 중 선배가 출석을 부르는데 “김홍삼(본명 김홍식)”이라 실수로 부르면서 시작됐다. 마침 2002년 당시 홍삼 제품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홍삼’이라는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져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개인전도 열었다. 2010년 4월 자비로 공간을 마련해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전시를 하는 동안은 너무 좋았지만 개인전 이후 공허함을 느꼈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며 혼자 고민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지금까지 왔다는 그는 그래피티는 미술적 관점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작은 사회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의 또 다른 모습 등 강렬한 자아표현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내가 찾고 있는 것보다 더 넓게 생각하고 표현하려 해요. 현대미술과 발맞춰 나가려는 생각이 필요하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인 만큼 다른 사람들에 맞춰가긴 싫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도 많이 했죠.” 그는 전통과 길거리 예술의 조화를 이루고자 개인적으로 디자인 관련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의미와 비슷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전통의 현대화는 전통을 멋지고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이어가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갤러리 전시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는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연스러운 그래피티를 하고 싶다”며 역사와 깊이가 있는 그래피티를 표현하고 싶다는 진정성을 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