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을 느끼기 좋은 4월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옷차림이다. 한낮의 거리 또한 새봄의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갈아입었다. 걷기 좋은 계절, 바쁜 일상을 떠나 눈과 마음으로 봄을 느낄 수 있는 나들이로 그림 감상은 어떨까. 지역별로 화랑가를 산책하는 ‘그림따라 길따라’ 시리즈는 1. 통의동-효자동-사간동 2. 북촌-삼청동에 이어 이번에는 강남의 청담동, 신사동에서 강북의 평창동으로 이어진다. 명품 상가 속 갤러리들이 모인 청담동, 쇼핑거리가 된 가로수길의 신사동 그리고 한적한 주택가 골목 속 평창동은 그 느낌도 각각 크게 다르다. 명품 거리 ‘청담동’, 그림 감상은 부담 없이 강북과 달리 강남은 높은 빌딩과 많은 자동차들로 삭막하기 쉽다. 그래도 각종 명품 매장이 즐비한 청담동 거리는 오히려 사람이 드문 편이라 걷기에 나쁘지 않다. 청담동이란 이름은 청담동 105번지 일대에 맑은 못이 있었고 134번지 일대의 한강 물이 맑아 ‘청숫골’이라고 불렸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청담사거리를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속속 자리 잡고 있다. 큰 대로변보다는 골목골목으로 넓게 포진해 있어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림 감상이 목적이라면 꼭 둘러봐야 하는 지역 중 하나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 인근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에서 청담사거리 방향으로 걸어 올라간다. 가장 먼저 오른쪽으로 갤러리아순수가 보이고 그 앞으로 트리니티 플레이스 빌딩이 있다. 이곳 지하 2, 3층에 PKM 트리니티 갤러리가 있는데, PKM는 강북과 강남에 각각 전시공간을 하나씩 운영해 오다가 현재 강북 PKM갤러리는 오피스로 전환했기 때문에 청담동 갤러리에서 전시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는 4월 19일부터 5월 31일까지 덴마크 출신의 설치미술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이 열린다. 엘리아슨은 일찍이 북유럽의 신비한 풍광에 매료돼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아왔다. 그는 과학자, 색채학자, 건축가 등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건축, 기하학, 과학적 원리를 응용한 현대 미술 작품을 제작해 왔다. 트리니티 플레이스 건물을 끼고 왼쪽 골목으로는 2010년에 외관과 내부 전시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재개관한 쥴리아나 갤러리가 있다. 길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홍대에서 청담동으로 2011년 이전한 텔레비전12갤러리와 박영덕 화랑이 있다. 더 내려가면 기존 카이스갤러리가 있던 자리에 천안과 서울 삼청동에 이어 2011년 청담점을 새롭게 오픈한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청담이 있다. 이곳에선 3월 8일부터 4월 22일까지 극사실 기법으로 고서와 여행가방, 카메라 같은 골동품을 그리는 이진용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는 도자기를 주제로 완성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길 따라 대로변으로 나오면 건너편으로 한 건물에 많은 갤러리가 모여 있는 네이처포엠 빌딩이 보인다. 이 건물 1층에는 넓게 자리 잡은 오페라갤러리가 있고 2층과 3층에는 조현화랑 청담, 갤러리 소, 백남준 미술관, 마이클슐츠 갤러리, 박여숙 화랑, 갤러리 미, 갤러리2, GYM프로젝트, 비전아트 갤러리 등이 있다. 네이처포엠 뒤 골목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송은아트스페이스, 봄 갤러리, MC갤러리, 청담아트센터와 유아트스페이스, 갤러리원, 갤러리엠을 만날 수 있다.
다시 청담사거리를 기준으로 프리마호텔 방향으로 2011년 사간동에서 청담동으로 이전한 UNC갤러리가 있다. 4월 12일부터 5월 8일까지 8년째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창민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메타상상우화’ 전을 선보인다. 강렬한 붓 터치와 독특한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그의 작품은 한편의 우화 같은 장면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현재 이창민 작가는 독일의 저명한 컬렉터들의 수집 대상이 되는 등 독일에서 확고한 작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갤러리현대 강남에서는 박민준 개인전이 4월 5~22일 열린다. 삶, 죽음,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신화적 줄거리를 작품에 담는 박민준은 특유의 고전적 화풍과 풍부한 내러티브를 담은 작품 세계로 국내외에 충성도 높은 팬 층을 확보했다. 이밖에도 갤러리 세인, 갤러리 포월스(뉴욕 뉴워크, 4월 6일~5월 12일), 청화랑, 필립강 갤러리 등이 있다. 청담동은 명품 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어 골목길이라도 사람보다 차가 더 많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림 감상만큼은 부담 없이 편하게 할 수 있다. 갤러리는 다 어디에? 쇼핑거리 된 가로수길 청담동과 함께 강남에서 갤러리가 밀집한 지역 중 하나였던 신사동. 그 중 일명 가로수길을 오랜만에 찾아가봤다. 가로수길은 데이트코스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이제 가로수길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아기자기한 옷가게와 먹을거리로 사랑받던 가로수길 풍경을 이제 대형 브랜드 매장들이 채우면서 풍경을 바꿔 놨다. 길거리에는 쇼핑객이 넘쳐나고 외국인도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신사동이란 동명은 이 지역에 있던 한강 새말과 사평리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새말은 한남대교 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고, 사평, 즉 모래벌은 한강변에 모래가 펼쳐져 붙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로수길은 2000년대 초반 화랑과 디자이너 숍이 많았던 소호거리였다. 여기에 다양한 카페와 액세서리점, 개인 의류점이 유명해지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개인 가게는 사라지고 대형 패스트패션 의류 브랜드가 거리를 점차 점령하고 있다. 가로수길로 접근하는 방법은 많지만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한다면 신사역 8번 출구로 나와 그대로 올라가면 J타워가 나오고 그 앞 골목길부터가 가로수길이다. 신사동에는 사실 이제 갤러리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각종 상업매장들과 현란한 간판들이 거리를 뒤덮어 갤러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가로수길을 따라 쭉 들어가다 보면 흰색 건물로 된 어반아트를 만난다. 이곳 3층에 카페갤러리 형식으로 운영 중인 드로잉11에서는 유진숙 작가의 개인전이 3월 27일부터 4월 12일까지 열린다. 연탄재를 주재료로 독특한 질감과 분위기를 나타내는 유진숙의 작품은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와 음울한 꿈 속 이야기로 관람자를 매료시킨다. 건너편으로 미술계의 오랜 터줏대감인 예화랑과 2011년 새롭게 개관한 갤러리 거락이 있다. 그 뒤 골목으로 그림도 감상하고 와인과 음식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제지마스, 얼갤러리, 갤러리SP가 있다. 신사동에서 압구정 사이에는 도자기 작품을 전시하는 우리그릇려, 유엠갤러리, 청작화랑, 갤러리LVS 등이 운영 중이다.
가로수길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지만 갤러리 입장에서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실제 전시를 보러 가로수길을 오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에서 만난 한 갤러리 대표는 “가로수길 상권이 인기를 끌면서 비싼 집세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과 대형 프랜차이즈만 생존이 가능하게 됐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턱없이 올리니 갤러리와 개인 매장들은 문을 닫거나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문화와 패션의 거리였던 가로수길이 이제는 그냥 쇼핑 거리로 퇴색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제는 옛 가로수길의 꿈과 낭만을 찾아볼 수 없으며 가로수길이 가졌던 아기자기한 고유의 멋과 맛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생각에 발길을 강북으로 옮겨본다. 모든 길이 산책길인 평창동 복잡한 도심 속에서도 자연과 가까운 동네가 있다. 고급 단독주택들이 즐비해 부촌이라고 불리는 평창동은 정말 조용하다. 주택가라서 그렇지만 사실 볼거리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렇기에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대화를 나누며 걸을 수 있어 데이트코스로도 좋다. 평창동은 서울시 종로구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선혜청의 평창(군량 창고)이 있었기에 평창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북한산 줄기가 뻗어 내려오는 지역이므로 평창동에는 평지보다 계곡과 산이 많다.
평창동의 한 갤러리 관계자는 “평일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지만 주말에는 봄을 맞아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한다”며 “등산 뒤 갤러리에 들르는 사람도 많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관람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동에는 국내 대표 갤러리 중 하나인 가나아트센터가 있다. 가나아트센터 주변은 평창동 골목길 관광 5코스 중 3코스에 해당된다. 가나아트센터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2011년 새롭게 개관한 갤러리아트유저와 맞은편으로 2011년 12월 사간동에서 평창동으로 이전해온 갤러리 반디트라소가 있다. 라틴 미술 전문인 갤러리 반디트라소에서는 이전 개관전으로 ‘2012 라틴의 현대미술을 보다: 옵-키네틱아트, 마디’ 전이 4월 1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린다. 옵-키네틱아트의 거장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와 추상미술 운동 마디를 보여주는 윌리암 바로보사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라틴의 추상 미술을 만나는 기회다. 바로 위쪽으로 미술경매 회사인 서울옥션과 함께 가나아트센터가 있다. 가나아트센터에서는 생기 넘치는 역동적인 작업들로 친숙하면서도 간결함을 나타낸 이스라엘 출신 조각가 데이비드 걸스타인 전시가 4월 6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다. 걸스타인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소재로 삶의 여러 조건들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믿음 등을 다룬다. 밝고 쾌활한 느낌을 주는 화려한 색상의 붓 터치에 리듬감이 가미돼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가나아트센터를 나와 오른쪽 골목길에 바로 토탈미술관이 있다. 길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김종영미술관이 보인다. 본관에서는 곡선전(2011년 12월 6일~2012년 5월 30일)과 신관에서는 낙우조각회 50주년 기념전(4월 6~26일)을 열고 있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위쪽으로 갤러리아폴로와 갤러리세줄을 지나면 키미아트(베리 임포턴트 페인팅전 3월 9일~4월 25일)가 있다. 한적한 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가인갤러리가 나온다. 가인갤러리에서는 김철유-이수진 두 작가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갤러리 내부와 외부 공간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개인전 형태의 프로젝트 기획전이다. 이밖에도 평창동 및 부암동 지역에는 자하미술관, 화정박물관, 환기미술관 등이 있다. 북한산자락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평창동 길은 자연과 예술이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