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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웅, 붓으로 풀어낸 예술가의 힘

극사실주의 뛰어넘는 붓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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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1호 왕진오⁄ 2012.04.23 13:27:50

화면 가득 커다란 붓 한 자루가 눈을 사로잡는다. 마치 사진기로 찍은 듯 실감나게 먹물이 사방에 튀겨 있다. 그래서 더욱 생동감을 부여하며 동양적 멋을 뿜어낸다. 붓 털 하나까지 섬세하게 극사실화로 그려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동양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지에 유화로 완성했다. 서양화가 이정웅(49)이 그려낸 동양과 서양을 오가는 그림 세계다. 그는 아름다운 형체를 만들어 내는 붓을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정웅은 하얀 한지 위에 먹물을 머금은 붓을 던져 그 퍼짐의 흔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잘 알려졌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작업 초기부터 한국적 정서를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모색하던 작가는 1990년대 초 꽃과 과일 등의 정물에 주목하다가 2000년 이후 붓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 한지 위에 먹과 유화 물감으로 그려낸 그의 붓 그림은 소재와 기법, 주제 면에서 동양화와 서양화, 추상과 사실적 구상을 아우른다. 한지로 만든 캔버스를 바닥이나 벽면에 세워 놓고 붓을 던져서 남은 붓과 먹물의 흔적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자기 안에 잠재돼 있던 표현의 욕구를 불러내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대상을 마치 사진처럼 그려내는 작가만의 ‘귀신같은 묘사력’ 뒤에는 억눌린 작가의 무의식을 행위를 통해 해방하는 방식이 존재한다. “내 그림에는 극사실과 추상, 행위가 공존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그림은 여운을 준다. 커다란 붓으로 한지 위에 긋는 그의 내공은 가히 화룡점정을 가하는 화공의 모습처럼 의미심장하다. 먹은 동양적 사유의 깊이를 드러내며 그의 붓 그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 중에는 ‘카메라보다 잘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붓자국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씨는 “그의 그림은 도무지 인간의 손을 거쳤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하이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의 세계가 그려내는 극명한 사실성의 영역에서도 벗어나 있다”고 평했다. “붓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먹물의 튀는 힘을 상징하거나 추상적이면서 행위적인 표현을 담아 보려 했습니다”며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 그가 붓을 화면에 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여러 번의 실험을 한 후 2006년부터 작업의 주요 테마로 사용했다. 초기에는 꽃이나 과일 등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이외에 문방사우(文房四友)도 함께 그렸다.

“문방사우를 하나하나 그리다 보니 그 중 붓이 가진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에 매료되기 시작해서 붓만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붓을 처음 그릴 당시는 먹물이 튄 형태까지 직접 그려냈다고 한다. 그 느낌이 진짜 같았지만 역동적인 힘이 약해 보였고, 2007년부터 붓으로 먹물을 튀겨 사방으로 퍼지게 만들었다. “힘의 균형으로 조화를 이룬 먹물의 튀는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며 작가는 그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30여 종의 붓을 구입하고 중국산 붓도 사용해 봤지만 한국산 붓으로 작업하는 것이 자신의 심성에 맞는 것 같다고 작가는 말했다. 역동적인 먹의 퍼짐, 그 변화를 위한 은은함 한지 위에 붓을 던진 다음 유화물감으로 붓의 힘을 그려낸다. 공간이 없으면 답답하다는 그는 “내가 생각한 느낌대로 먹의 번짐이 안 나오면 힘이 든다”며 “한 번에 좋은 형태를 얻을 때도 있지만 안 나올 때는 어떤 행동을 해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붓을 놓으려 한 때도 있었다”고 밝혔다. 물질의 질감까지 선명하게 그려내는 그의 작업이 극사실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그는 “오해도 받았지만 절대로 사진이나 영사기를 이용해 그린 적은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즉 모든 작업에 들어 있는 붓의 이미지는 본인이 세필로 정성을 기울여 그려냈다는 소리다. 이정웅의 현재 작품 세계는 그의 두 번째 변신의 결과물이다. “작가로서 평생 작품의 변화를 네 번 정도는 주어야 한다고 본다. 관객이 요구할 수도 있고 스스로 게으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작가로서의 책임을 지는 의무가 아닌가”라며 그는 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은 자기 작품에 책임감이 없는 것 같고, 작품의 변화가 없는 작가는 생각을 하지 않는 작가”라는 지적이다.

그가 생각하는 다음 변화가 궁금해진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업의 실마리가 떠오른다. 그러면 그것을 실험해보고 완성하려 하지만 머릿속에서 정리가 아직 되지 않는다”고 말을 아꼈다. 이정웅 작가는 “요즘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단계에 들어 왔다. 조금은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차기 작품에 대해 운을 띄웠다. 그러나 그는 “한국적인 맛과 멋은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다음 작품에선 “먹물이 튀는 작업보다는 선과 면을 연구해 새롭게 선보일 생각”이라며 “내년에 준비하는 작품에는 같은 붓 시리즈이지만 선과 면을 강조한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화가 이정웅은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 2001년 대백프라자 갤러리, 2005년 인사아트센터, 2007년 이화익 갤러리, 2009년 가나아트 뉴욕, 갤러리 츠바키(도쿄)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또한 2008년 싱가포르 한국 현대 미술전, 2009년 갤러리 현대의 사물의 대화법, 인터알리아,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그룹전을 통해 작품 세계를 알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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